[랭크5=유하람 기자] 대회사라면 으레 그렇듯, 종합격투기에서도 연말이벤트가 가지는 위상은 상당하다. '대목'인 만큼 올스타로 대진을 채우기 때문이다. 로드FC도 마지막 대회에 항상 공을 들였고, 이번에도 언더카드 격인 영건스가 없는 사실상 더블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답게, 15일 그랜드 힐튼 서울에서 열린 로드FC 051은 약간 아쉬워도, 한국 종합격투기의 축제가 됐다.
메인이벤트 : 함서희 VS 박정은
"'강해진' 박정은, '원래 강한' 함서희"
- 준비로 커버할 수 없는 경험치, 하지만...
평점 : ★★★☆
아직 한국에선 트래시토킹이 환영받지 못한다. 그나마 해외 선수면 그러려니 하고 보지만 한국 선수, 특히 어린 선수가 패기가 있으면 "선배에게 감히..."라는 말이 자연히 따라온다. 박정은(22, 팀 스트롱울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충분히 세계 랭커 함서희(31, 팀 매드)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는 실력자임에도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냉랭했다. 하지만 차가운 반응을 뒤로하고 박정은은 눈이 즐거운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 비록 경험부족을 커버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테크닉, 특히 타격스킬이 세계 정상권에서도 경쟁할만 하다는 걸 증명해냈다. 정작 챔피언은 도전자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그럼에도 함서희 뒤를 이을 재목이 등장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예지 VS 이수연
"방심은 금물"
- 이예지, 커리어 최대 굴욕
평점 : ★★★
이예지(19, 팀제이)는 절대 마냥 못하는 선수가 아니다. 분명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줬고, 승패와 무관하게 쌓인 경험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제 데뷔하는 선수한테 질 정도는 아니었다. 상대만 제대로 파악했다면. 확실히 초반 보여준 기량 자체는 이예지가 위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이수연(24, 로드짐 강남 MMA)에게 난전을 강요하며 자기가 원하는 싸움을 만드는 모습은 그래도 그간 치른 경기가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자기 피니시 능력을 과신한 건지 이수연을 얕잡아본 건지 너무 오버페이스로 일관했고, 4년 선배가 체력관리 실패로 역전을 허용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역전극을 보는 맛은 있었지만, 이예지를 기준으로는 너무나 아쉬운 경기였다.
심유리 VS 스밍
"매 앞에 장사 없다"
- 심다레이 실바, 화끈한 니킥쇼!
평점 : ★★★☆
로드FC가 밀어주는 젊은 선수 중 기량으로 돋보이는 선수는 아무래도 심유리(24, 팀 지니어스)다. 숙적 ‘우슈 공주’ 임소희를 그래플링으로 제압했을 때도 그렇고, 웰라운더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동갑내기 프렌차이즈 스타 스밍(24, 중국)은 상대도 안 될 만큼. 자기가 원하는 전장을 만들고 약점이 보이면 집요하게 물어뜯는, 파이터로서의 기본소양을 심유리는 잘 갖추고 있었다. 특히 상대 목을 제압하며 니킥 연타로 무너뜨리는 모습은 과거 반다레이 실바를 연상케 했다. 박정은과 더불어 다음 경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퍼포먼스였다.
김영지 VS 로웬 필거
"선배의 굴욕 2.0"
- 투혼으로 대어를 낚은 필거
평점 : ★★
1승 3패지만 요시코를 잡았다. 이제 김영지(25, 팀제이)가 본격적으로 여성 최고체급에서 활약하리라 기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급하게 대체 출전해 데뷔전을 치르는 로웬 필거(29, 로드짐 원주 MMA)에게 곧바로 1승을 헌납하고 말았다. 아직 그레코 레슬링 하나 밖에 없지만 투지로 경험을 커버하는 필거가 인상적이었다. 이와 별개로 경기는 그렇게 재밌지 않았다.
홍윤하 VS 백현주
"승리, 당했다?"
- 최선을 다한 홍윤하, 너무 심각했던 백현주
평점 : ★☆
홍윤하(29, 송탄MMA 멀티짐)의 별명 '악녀'에서 '악'자는 '악당'보단 '악바리'에 가깝다. 그만큼 근성과 성실함으로 정신무장한 바람직한 파이터다. 그리고 성장세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너무 심각했다. 백현주는 정말 단 한 가지 강점도 보여주지 못하고 탭아웃, 커리어 전패 기록을 이어나갔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왜 아무 것도 안 하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미첼 페레이라 VS 최원준
"진지한 곡예사, 초살승!"
- 남은 건 황인수와 라인재 뿐
평점 : ★★★★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케이지의 곡예사’ 미첼 페레이라(25, 브라질)는 로드FC에서 적수가 없는 듯하다. 나름 미들급 기대주인 최원준(30, MMA 스토리)은 겨우 2주 전 세르비아 무명 대회에서 1라운드 KO를 당한 페레이라에게 단 41초 만에 나가떨어졌다. 날카롭고 시원한 페레이라의 타격스킬과 결단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핫한 로드FC 미들급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하는 회의도 자연히 들었다. 이제 남은 보루라곤 황인수와 라인재 뿐이다.
박형근 VS 신승민
"꼬박 4년이 걸린 승리"
- 근자감 파이터의 귀환
평점 : ★★
부진이 너무 길었다. ‘근자감 파이터’ 박형근(32, 싸비MMA)은 기본기도 좋고 스타성도 있지만, 오랜 시간 경기장에서 크게 위축돼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신예 신승민(25, 쎈짐)을 2라운드 종료 3-0 판정으로 꺾으며 값진 1승을 거뒀다. 2014년 이후 4년 동안 이어지던 무승 행진(2무 3패)을 드디어 끊어낸 것이다. 내용이 아주 알차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기기 위해 보여줘야 하는 모습은 모두 보여줬다.
난딘에르덴 VS 여제우
"클래스는 영원하다"
- 여전한 로드FC 타격 폭군 난딘에르덴
평점 : ★★★☆
숨막혔다. 로드FC의 전통 강호 난딘에르덴(31, 몽골)은 2승 무패의 신예 여제우(27, 쎈짐)를 아주 스무스하게 잡아먹었다. 얼추 비슷해보이는 상황에서 날카롭게 빈틈을 찾아 턱을 돌려버리는 능력이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의 자격. 난딘에르덴은 그럴 능력이 충분했다.
라이트급 장정혁 VS 맥스 핸다나기치
"장정혁의 가능성과 한계"
- 강하지만 부실했던 장정혁, 노련하기만 했던 핸다나기치
평점 : ★★☆
장정혁은 젊고, 빠르고, 단단하며, 우직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된다. 쿵짝이 맞는 상대와는 명승부 끝에 싱싱한 턱으로 버티고 이기지만, 좀 노련한 상대를 만나면 속절없이 경기가 꼬인다. 이번에도 핸다나기치가 앞손을 내주는 족족 안면을 내주며 후반 가서 경기가 이상해졌다. 결국 무승부. 핸다나기치가 파워가 강한 선수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클래스가 높은 선수였으면 그대로 지는 그림이었다. 장정혁은 분명 훌륭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선수로 대성하고 싶다면 큰 변화가 필요해보인다.
김지훈 VS 김태인
"문제의 복서, 2% 아쉬운 데뷔전"
- 마지막은 좋았다
평점 : ★★☆
1라운드까지만 해도 '무패 복서'의 위용은 없었다. 오히려 스탠딩에서까지 카운터를 연달아 허용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2라운드 승부수를 띄워 50초 만에 KO를 따내는 모습은 '그래도 복서의 저력'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직 보여줄 게 많지만, 적어도 시작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총평
"축제(-2%)"
- 눈 감아줄 만한 흠, 훌륭한 대회
평점 : ★★★★
이러나저러나 로드FC는 한국 최고 메이저 종합격투기 단체다. 이런 빅이벤트에서조차 빼지 않는 기준미달 파이터가 가끔 시청을 힘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굵직한 매치업과 수준 높은 경기를 꾸준히 뽑아낼 수 있는 단체는 역시 로드FC뿐이다. 그리고 연말 빅이벤트라는 명분에 맞게 로드는 장장 4시간이 넘는 시간을 눈이 즐거운 경기로 꽉꽉 눌러담았다. 100% 만족은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훌륭했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XIAOMI ROAD FC 051 XX]
[12월 15일 그랜드 힐튼 서울 / 오후 7시 SPOTV 생중계]
[아톰급 타이틀전 함서희 VS 박정은]
– 함서희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아톰급 이예지 VS 이수연]
– 이수연 2라운드 종료 판정승(2-1)
[아톰급 심유리 VS 스밍]
– 심유리 2라운드 4분 8초 TKO승(니킥)
[무제한급 김영지 VS 로웬 필거]
– 로웬 필거 2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아톰급 홍윤하 VS 백현주]
– 홍윤하 1라운드 1분 44초 서브미션 승(리어네이키드 초크)
[XIAOMI ROAD FC 051]
[12월 15일 그랜드 힐튼 서울 / 오후 4시 30분 SPOTV+ 생중계]
[-86kg 계약체중 미첼 페레이라 VS 최원준]
– 미첼 페레이라 1라운드 41초 KO승(펀치)
[페더급 박형근 VS 신승민]
– 박형근 2라운드 종료 판정승(3-0)
[-72kg 계약체중 난딘에르덴 VS 여제우]
– 난딘에르덴 1라운드 2분 41초 TKO승(펀치)
[라이트급 장정혁 VS 맥스 핸다나기치]
– 2라운드 종료 무승부(1-1)
[라이트헤비급 김지훈 VS 김태인]
– 김태인 2라운드 50초 TKO 승(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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