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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파이터] ⑩ ‘도깨비 파이터’ 키스 자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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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파이터] ⑩ ‘도깨비 파이터’ 키스 자르딘
  • 유 하람
  • 승인 2018.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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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스 자르딘 페이스북

[랭크5=유하람 칼럼니스트] 한국에서는 스포츠 토토가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이며 통제도 엄격한 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경기 결과에 배팅하는 문화가 잘 자리 잡았다. 경기 승패를 예측하고 배당률을 책정하는 ‘도박사’라는 직업이 분석 능력에 있어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을 정도다. 도박사의 예상이 대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돈을 걸고 경기 결과를 예상하기 때문에 한낱 팬심이나 주변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승부에는 언제나 예상을 뒤엎는 변수가 있다. 특히 스타일이 독특하거나 컨디션에 따른 기복이 심한 선수는 도박사가 아무리 애를 써도 경기 결과를 맞히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선수는 단순히 한두 번 이변을 터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커리어 전체에 걸쳐 들쭉날쭉한 성적을 내곤 한다. 이들은 ‘도박사의 적’ 내지 ‘도깨비 파이터’로 불리며 컬트적인 인기를 얻곤 한다. 오늘 소개할 키스 자르딘은 바로 이 ‘도깨비 파이터’ 류의 정점에 서 있는 선수다.

- 시작은 이상했으나 끝은 더 이상하리라

자르딘은 커리어 시작 전부터 절대 평범하지는 않았다. 뭇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그렇듯 고교·대학 레슬링 경력이 있기는 했지만, 그가 졸업 후에 선택한 길은 다소 색달랐다. 그는 개인 트레이너·미식축구 코치 등 전공을 살린 정상적인(?) 일을 하기도 했지만, 광부·소방관에 심지어는 현상금 사냥꾼까지 직업으로 삼았다. 특히 현상금 사냥꾼 시절은 자르딘 특유의 살벌한 외모와 더불어 종합격투기 팬덤에서 자주 회자됐다.

한동안 야인으로 살던 그가 종합격투기 선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 시점은 2000년 경 명문 팀 ‘잭슨 윙크 MMA 아카데미’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잭슨 윙크 MMA 아카데미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코치 중 하나로 꼽히는 그렉 잭슨이 이끄는 팀으로, 특정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고 선수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스타일을 만들어 주기로 유명하다. 특정 종목에서 성과를 내기는커녕 수련 기간도 길지 않은 야인 키스 자르딘과 선수를 ‘마개조’시키는 그렉 잭슨이 만나자 그 시너지는 가히 기묘했다.

미군 기지에서 그래플링 강의를 선보이는 키스 자르딘

당시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대개 레슬링·복싱·주짓수 등 분명한 베이스를 가지고 케이지에 올랐다. 로리 맥도날드 등 종합격투기 자체가 베이스인 선수들이 2010년 전후를 기점으로 메이저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훗날 일일뿐더러 베이스가 없는 케이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르딘은 잭슨 휘하에서 베이스 무술이 없는 희대의 변종으로 재탄생한다. 특히 알통을 자랑하듯 들어 올린 괴이한 가드, 고양이 앞 손 휘두르듯 한 펀치는 자르딘 표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 도박사의 적에 등극하다

얼핏 보면 근본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더 근본 없는 이 스타일로 자르딘은 승승장구한다. 마이너 무대에서 9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TUF 시즌 2에서 4강에 오르며 2005년 그는 UFC에 입성한다.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가진 재능과 피지컬은 준수해 무난히 승수를 쌓았던 마이너와 달리, 모든 면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마주하면서부터 그는 본격적인 도깨비 행보를 펼친다. 어딘가 ‘아다리’가 맞지 않는 자르딘 스타일이 사고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TUF 1 준우승자 스테판 보너에게 판정으로 패했을 때만 하더라도 시청자 대부분은 이변이라기보다 자르딘이 한계를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 8개월 뒤 그가 TUF 1 우승자 포레스트 그리핀을 기막힌 어퍼컷에 이은 폭풍 난타로 1라운드에 KO 시키자 팬들은 술렁였다. 이후에도 갓 UFC에 데뷔한 신인 휴스턴 알렉산더에게 48초 만에 실신하고는 방금 챔피언에서 내려온 척 리델에게 기가 막힌 역전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 척 리델에게 완봉패를 당하며 경쟁력을 상실했다던 반다레이 실바에게 36초 KO패를 당하더니, 헤비급에서 내려온 신성 브랜든 베라를 제압해버릴 때쯤 그는 이미 승패를 예상할 수 없는 선수가 돼있었다.

척 리델이라는 대어를 낚았던 UFC 76. 이 경기를 기점으로 그의 파이트머니는 7배 가량 뛴다.

‘도박사의 적’, ‘랭킹 파괴자’, ‘도깨비 파이터’ 등 그에게 따라붙던 수식어는 당시 그가 가진 위상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승패승패 행진을 멈추고 연패에 빠졌을 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도박사는 그가 연패 중일 때 오히려 ‘이번에는 이기겠지’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듯 그를 탑독으로 선정했으며, 자르딘은 역시 이 기대를 깨고 패배했다. UFC에서 퇴출당한 이후에도 그는 무명 선수에게 판정으로 패하고는 스트라이크포스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게가드 무사시를 상대로 일주일 준비하고 나가 무승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 어쩌면, 그냥 ‘그때 그 사람’

이후 2012년까지 자르딘은 2패를 더 기록하고 종합격투기에서 사실상 은퇴한다. 언제든지 복귀할 의사는 있다고 하나 본인부터가 2009년도부터 시작한 연기 커리어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단순히 부업 수준이 아니라, 나름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당장 구글에 ‘Keith Jardine’을 검색하면 직업란에 ‘종합격투기 선수’가 아닌 ‘배우’로 뜰 정도다. 지금도 작년 11월 시작한 넷플릭스 시리즈 ‘Godless(한국명 ’그 땅에는 신이 없다‘)’에서 ‘Dyer Howe’ 역으로 열연하고 있다.

AMC에서 방영한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에 카메오로 출연한 자르딘

그리고 현 시점에서 올드팬이 아닌 이상 그를 거론하는 이는 많지 않다. 간혹 그의 이름이 언급될 때가 있다면 ‘가장 기복이 심했던 파이터’ 정도로 회자되는 정도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자르딘은 종합격투기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중소단체에서도 챔피언 벨트 한 번 들어본 적 없으며, 하다못해 타이틀전도 치러보지 못한 선수가 큰 의의를 갖기란 매우 어렵다.

파이팅 스타일도 굉장히 독특하긴 했으나 미르코 크로캅·호드리고 노게이라처럼 업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롱런한 선수도, TUF 원년 멤버들처럼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한 사람도 아니었다. 성적도 업적도 그저 그랬던 그가 격투계를 사실상 떠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화제가 된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리라. 이런 점을 본다면 종합격투기에 있어 그는 어쩌면 그냥 ‘그때 그 사람’ 정도일지도 모른다.

- 평범하기에 더욱 평범하지 않은

하지만 그럼에도 감히 말하건대, 그는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다. 종합격투기 역사를 논할 때 그가 차지하는 위치가 초라할지언정, 선수로서 키스 자르딘은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을 가진 선수였다. 자르딘은 분명 육체 자체가 정상급에 견줄 선수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로지컬로 일정 부분 커버 가능한 그래플링 방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으며, 로우킥 하나만큼은 초일류라는 말을 들을 만큼 확실한 필살기도 갖췄다. 여기에 특유의 기묘한 타격리듬까지 더해 상식적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꺾고 체급 내 랭킹 10위 안에서 한동안 군림했다. 기술연마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스타일과 전략으로 잠시나마 한계를 뛰어넘는 그의 모습은 신기함을 넘어 어딘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키스 자르딘을 모델로 내세운 탭아웃(TAPOUT)사의 포스터

돌이켜보면, 시대를 스쳐 지나간 숱한 B급 파이터 중 자르딘은 유독 큰 사랑을 받으며 기억된 선수 중 하나다. 자르딘은 리 머레이나 찰스 베넷처럼 링 밖에서 기행을 저지르던 선수도 아니었고, 묵묵히 싸우기만 했지만 경기력이 유달리 뛰어나지도 않았다. 피범벅이 돼서도 꾸역꾸역 싸우는 투혼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돋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유명 MMA 의류 브랜드인 탭 아웃(TAP OUT)을 비롯해 여러 업체에서는 그를 모델로 밀어줬으며, UFC에서도 재계약 이후 5만 달러에 가까운 파이트머니를 지급했다. 경기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그는 ‘도깨비 파이터’였다.

이 모든 이변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종합격투기 선수로 바로 서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는 조용한 노력과 개성 강한 퍼포먼스라는 기본 덕목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 잘 이해한 영리한 선수였다. 그를 단순히 ‘기행 파이터’ 정도로 분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자르딘은 위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모든 파이터가 챔피언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매력적인 선수였다.

유하람 칼럼니스트 droct8969@naver.com

키스 자르딘의 격투기 전적

프로 복싱 전적
4 전 3 승 0 패
KO 1 0
판정 2 0
무승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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