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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MMA 파이터 '락커정신' 김형균, 그가 복싱 감독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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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MMA 파이터 '락커정신' 김형균, 그가 복싱 감독이 된 이유
  • 정성욱 기자
  • 승인 2022.12.01 18:4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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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균 Ⓒ정성욱 기자
김형균 Ⓒ정성욱 기자

[랭크파이브=일산, 정성욱 기자] 1세대 종합격투기 파이터 '락커정신' 김형균(BOX-1)은 이제 복싱인이다. 젊은 시절 무술의 강함을 추구하여 여러 종목을 수련했고 한국 최고 이종격투기 대회 KPW와 최초 프로 이종격투기 대회 '스피릿MC'에도 출전했다. 그랬던 그가 세월이 흘러 이제 복싱 관장으로 변신해 복싱을 사랑하는 수련인에게 종목의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종합격투기 선수에서 복싱 관장으로 변한 김형균을 랭크파이브에서 만났다. 그가 복싱이란 종목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앞으로 그가 복싱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직접 만나 들어봤다.

Q : 소개 부탁드린다.
- 지금 일산에서 BOX-1이라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형균 감독이라고 합니다. 

Q: 종합격투기, 아니 2000년대 초반 '이종격투기' 1세대다.
- 맞다. 우리나라에 격투기 대회를 유치한 분들이 0세대라고 하면 내가 1세대가 맞다. 0세대들이 유치한 대회가 KPW다. 그 대회 1회를 기점으로 해서 스피릿 MC도 열리고 했다. 내가 거기서 활동하기도 했다. 

Q: 격투기 체육관을 열기도 했다.
- 2001년부터 선수로 활동하다가 2004년에 은퇴하고 2004년부터 체육관을 잠시 열기도 했다. 

Q: 당시 시대에 대해 좀 이야기해줄 수 있는지?
- 명칭으로 갈린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MMA(Mixed Martial Arts, 종합격투기)라는 말을 쓴다. 당시에도 MMA라는 말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와닿던 말이 무규칙 격투기(No Hold Barred), 혹은 이종격투기(異種格鬪技, 다른 종류의 격투기가 맞붙는 개념)이다. 여러가지 말이 혼용되어 쓰이다가 이종격투기라는 말이 기류를 탔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언론에선 MMA보다 이종격투기라는 말을 더 한다.

하나 더 기억나는 건, '이종격투기 카페'라고 있지 않나? 사실 그 보다 먼저 '쌈박질 클럽'이라는 카페가 먼저 생겼고 인기도 많았다. '이종격투기 카페' 주소를 보면 싸움질(ssaumjil)로 돼 있다. 쌈박질 클럽은 쌈박질로 돼 있고. 결국 남은 건 이종격투기 카페다. 네이밍을 정말 잘했던 것 같다. 

Q: 지금 MMA야 룰도 있고 선수 보호에도 매우 신경쓰고 하지만 당시에는 매우 거칠었던 걸로 알고 있다. 
맞다. 내가 활동하던 시절은 말 그대로 '무규칙'이었다.그때 당시에는 격투기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도 없었다. 그러니까 '거친 싸움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나는 좀 별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무술을 배웠고 '종합적인 것'을 지향했다.

이를테면 태권도장에 가서 '왜 저 사람을 자빠뜨리면 안 되지?' 아니면 유도장에 가서 '왜 쟤를 때리면 안 되지?'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사고 방식 자체가 잘못 된 건 맞다. 왜냐하면 태권도 룰이 있고 유도 룰이 있고 이런 스포츠라는 관점에서 벗어났으니까. 근데 나는 무술적인 관점에서 무엇이 강하냐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다. 

Q: 그런 청년에게 이종격투의 시대가 왔다는 것은 기뻤을 듯 한데.
- 나에겐 좋은 기회였다. 내가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할 당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선택지가 많았다. 실제로 내가 이긴 경기들은 상대가 좀 못하는 것을 공략했다. 예를 들어 그라운드를 못하는 타격가에겐 그라운드로, 그라운드를 잘 하는 그래플러에겐 타격으로 공략했다. 그 당시 나는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종합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나는 웰라운드를 추구했던 거다.

이종격투기 선수 시절 김형균
이종격투기 선수 시절 김형균

Q: 맞다. 당시에 기술을 혼합한다는 개념 조차 하기 힘든 시대였다.
- 당시 내가 이긴 경기 서브미션 목록 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용한 기술이더라. 스피릿MC에서 썼던 기술이 니크로스 암록이다. 그 기술도 아마 우리나라 격투기 대회에서 제일 먼저 했었을 거다.

또 2003년 KPW 결승에서 썼던 기술도 그랬다. 당시 나는 노게이라가 누군지도 잘 모를 때였다. 그 해가 효도르가 프라이드 세계 챔피언이 되던 해인데 나도 KPW에서 우승했던 때이기도 하다. 결승전에서 상대에게 암바를 걸었다. 상대가 내 허벅지를 쳐서 탭친줄 알았는데 때린 거라고 하더라. 살짝 느슨해진 틈을 타 이 사람이 빠져나가려고 할 때 삼각조르기로 바꿔서 탭을 받아냈다. 그 경기 이후 노게이라 노게이라 하길래 나중에 노게이라의 경기를 보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다. 당시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Q: 무엇보다도 당시는 이종격투기의 시대라 종목 vs 종목의 대결이 어떻게 결론이 나냐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 그렇다. 그게 실제화 됐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시절이 지금보다는 확실히 캐릭터성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것들을 다시 잘 활용을 한다고 하면 다시 격투기 붐업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Q: 이렇게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을 하다가 어떻게 복싱으로 전향하게 됐는지?
-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돈 벌려고 복싱이라는 종목을 선택했다. 선수 생활 은퇴 후에 종합격투기 동호회를 여러 차례 운영했다. 마지막으로 운영했던 게 'MMA 격'이라는 동호회였다. 이 동회를 운영하면서 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고 깨달은 것이 있다.

MMA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MMA 룰로 스파링을 하는 게 너무 한정적이더라. 동호회 안에서도 한 두 명 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에는 많은 동호인들이 어떤 운동을 하냐 보니까 비교적 안전하고 덜 다칠수 있는 복싱, 그래플링 스파링 위주로 가게 되더라. 

그때 알았다. 이럴 거면 복싱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돌고 돌다 보면 가장 가성비 좋은 로망을 찾지 않을까? 복싱이 약간 그 언저리에 있는 스포츠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일반인을 공략하기 위해선 '다이어트'를 빼놓을 수 없는데 '복싱=다이어트'라는 공식이 이미 널리 알려진 때였다. 그러다보니 복싱을 선택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 

Q: 들어본 이야기로는 기존 복싱체육관과는 여러모로 다르게 운영한다고 하던데.
- 기존 복싱계에 없었던 것들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 이를테면 도장문화가 그렇다. 복싱 체육관은 '방치문화'가 강하다. 줄넘기만 시키는 등의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이 아니라 관원들이 충분히 소통하고 재밌게 익혀 나가게 하는 것이다. 또한 관원간의 교류를 통해 '스파링' 문화를 정착시키기도 했다. 

Q: 새로운 복싱 문화라고 이야기를 했다. 기존의 복싱은 어떠했고 본인은 어떻게 바꾸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예전 한국 복싱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한국 프로 복싱이 엄청난 부흥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복싱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체육관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선수하려는 사람이었다. 당시 복싱을 해서 성공해 세계 챔피언이 되면 강남의 집 두 채 정도를 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도자 입장은 어떠했을까? 관장은 백 명의 지망생이 찾아오면 그들 모두를 선수로 만들 수 있나? 불가능하다.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일종의 근성 테스트를 만든 거다. 예를 들어 링에 바로 올려서 '일단 몇 대 맞고 시작하자'. 버티는 놈, 이 악 물고 싸울 놈 그런 놈만 키우는 거다. 줄넘기도 그런 거다. 당연히 줄넘기 안 했던 사람들은 체력도 없을 거고. 거기서 조금 떨어져 나가고. 줄넘기 10라운드 할 정도 되면 이제 스텝 뛰는 거 배워보자. 이런 식의 단계가 있었던 것 같다.나는 그 시절이 지나서 복싱으로 재입문을 한 케이스라서 내 경험은 아니지만 당시에 들렸던 풍문이나, 복싱이 망하게 된 계기를 스스로 되짚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되더라. 

그리고 지도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이 식는다. 사실 선수를 키우는 것이 큰 돈도 안 되고. 그렇다보니 복싱 암흑기가 찾아왔고 세계 챔피언 조차 없는 상황이 됐다. 이젠 영웅들의 명망도 사라졌고. 그나마 복싱이 다시 한 번 부흥이 된 계기가 연예인 이시영 배우의 발굴이 크다고 본다. 

이시영 배우를 계기로 복싱이 다시 떠올랐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미트 교육을 너무 맹신하게끔 지도한다라는 거다. 미트 교육이 아니면 관원들이 교육을 받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거다. 지도자들이 각성해야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미트에 대한 맹신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근데 미트 교육이 최고라는 것을 맹신하게 만들어 놓고는 아무 때나 와서 운동하게끔 해놓으면? 미트까지 안 잡아주면 관원이 방치가 되는 거다. 이건 헬스장이 아닌데 헬스장처럼 운영을 하면서 미트까지 안 잡아주니까 관원들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거다. 돈은 헬스장보다 많이 내는데 왜 미트는 안 잡아줘?라고 생각하게 만든 거죠. 미트 잡아주는 걸 권리라고 만든 겁니다. 

외국만 해도 '미트 교육'이든 아니면 '지도 개인 교육'이든 이게 모두 PT(개인 트레이닝) 개념으로 들어갑니다. 돈을 따로 내야 되는 프로그램이죠. 외국에선 복싱 체육관이 우리나라 헬스장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게 비싸진 않아요. 근데 무엇을 특별히 배우거나 미트를 치거나 스파링을 한다고 하면 별도의 결제가 일어난다. 

근데 한국은, 특히 격투기 쪽 지도자들은 '희생 교육'을 한다. 미트, 스파링이 희생 교육이다. 예를 들어 헬스 트레이너는 교육에 있어서 몸에 데미지가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수영 트레이너들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지언정 외상을 입지 않는다. 

근데 격투기 지도자들은 몸이 상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사실상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열정이 식어도 계속 할 수 있는 업종이다. 근데 그거를 아무 때나 와서 아무 때나 미트를 잡으니까 지도자도 점점 엉망으로 가르치게 되는 거다. 게다가 많은 이들의 미트를 잡아야 하니 사람의 특성에 맞게 지도도 못하고 천편일률적이며 오랜 시간 잡아주지도 못하는 거다. 이런 식의 운영은 사실상 잘못된 운영이다. 

근데 이런 것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지도자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체육관을 내기 때문이다. 자기가 체육관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뛰어든다. 나는 열정이 있으니까 젊으니까 막 몸으로 희생을 한다. 사실 나는 이런 경우 1년 안 간다고 본다. 실제로 1년이 지났을 때 지도자들의 생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데 다들 몸이 망가지니까 다 마음도 열정도 식었고 다른 방식으로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이럴 바에는 차라리 시스템을 잘 만들고 교육 인프라를 잘 만들어 놓으면 지도자가 그렇게까지 희생하지 않아도 관원들끼리 운동 잘할 수 있고 배울수 있게 된다. 유도, 주짓수 같은 그래플링 종목은 파트너십 개념이 되게 좋다.복싱도 충분히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잘 짜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냥 관원들이 아무 때나 오니까 관원과 관원끼리 연결이 안 되고 스파링 문화로 이어지지도 않죠. 서로 모르는 사람이 스파링을 하게 되면 사고로 이어집니다. 저희 체육관은 그런 일이 없죠.

저희 체육관은 전국에서 아마 가장 많은 스파링을 합니다. 스파링은 따로 영상으로 담아서 계속 피드백을 해줘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상 미트 훈련이나 이런 거에 집착할 필요 없이 관원들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관원들이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전국대회에 나가서 세 번 연속으로 종합 우승을 시킨 것입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선수단 구성에서 특별히 더 훈련도 하고 했지만 제가 특별히 미트를 더 잡았거나 그런 적은 없다.  그게 또 아이러니한 거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를 깨버린 거니까. 

Q: 새로운 복싱 문화에서 '매칭'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어떻게 생각 해낸 것인지?
- 우리 체육관의 지도자가 되려면 전체를 관장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지도력은 당연히 기본적인 거다. 우리 체육관은 요일별로 다양한 훈련을 한다. 지도자는 관원들이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파트너를 잘 짜줘야 한다. 내가 지도자 연수를 통해서 이런 노하우들을 같이 공유해준다. 여기에 사실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파트너와 잘 맞지 않다보면 트러블이 날 수도 있다. 때문에 그런 문제를 빨리 알아내서 파트너를 교체해 훈련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제가 옛날에 유도를 했는데 거기서 도움을 받았다. 같은 시간에 와서 하니까 스파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서로 얼굴도 익힐 수 있고, 드릴도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관점이 생긴 거다. 복싱도 그렇게 바꾼 거다. 이 이제 혼자 하던 운동에서 같이 하는 운동으로 바꿔버린 거다. 이렇게 되니 관원이 할 게 엄청 많아진다. 실제로 혼자 오면 샌드백, 섀도 복싱 밖게 할 게 없다. 이러면 재미없다. 이 훈련 말고 나머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지도자들이 생각을 안 하는 거다.

그리고 아무 때나 오라고 하면 사람들 심리는 아무 때나 와서 자율 운동해야 되는 거다. 학교도 학교도 아무 때나 오라고 안 한다. 배우러 오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 클래스를 선택해서 오는 게 맞고 그런 문화를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복싱판이 커진다. 그렇게 키우려면 지도자들이 생각하고 연구해야 이 판이 커지는 거다. 

물론 아무 때나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다. 아무 때나 와서 운동 알아서 하는 건 선택이니까.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교육 시간 외에는 지도를 안 한다. 근데 이것도 그 사람을 존중하는 거다.

2004년 화랑무예원 운영 당시 김형균 관장(우측 끝) Ⓒ정성욱 기자
2004년 화랑무예원 운영 당시 김형균 관장(우측 끝) Ⓒ정성욱 기자

Q: 왜 존중하는 것인지?
- 어떤 관원이 클래스 외 시간에 왔다. 그건 그 사람이 자율 운동하고 싶은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것도 사실상 잔소리가 된다. 이러한 경계를 명확하게 잡아주면 단원들도 많이 다 따라오고 또 자기가  꽂혀서 자기가 운동할 게 생긴다.

어떤 운동이라도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또 필요하다. 가르쳐줬다고 바로 쓰는 거 아니니까. 연습할 시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는 거다. 나는 그것도 잘 지켜본다. 정말 연습을 잘하고 있고 조언이 필요할 것 같으면 툭 던지듯이 이야기해준다. 사실 긴 얘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긴 얘기가 필요한데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도 복싱의 언어를 알기 때문에 짧아도 잘 알아듣는다. 물론 그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하면 1대1 PT를 한다.  

방치가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그냥 혼자 연습할 시간이 좀 있어야 된다는 거다. 왜냐면 클래스에서 충분히 가르쳐주고 있고 배우는 사람은 그 시간에 집중한다. 나머지 시간은 관원들이 농담 따먹기를 하기도 한다. 자율과 규율이 적절한 것 같다.

Q: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우 신선하다. 복싱, 킥복싱 등의 스포츠는 스파링 이외는 혼자 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뭔가 다른 느낌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유도, 주짓수 수련 같은 느낌도 들고.
- 기존의 관념을 깰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종합격투기를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무술과 고리타분한 시절을 겪었다. 이종격투기 시절에는 서로 싸울 수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태권도 하던 사람이 유도하는 사람이랑 사실은 싸울 수가 없었는데 싸운 거 아닌가. 그러다보니 룰이 깨지는 것을 경험했다. 기존 관념을 깨는 연습이 되었던 것 같다. 

복싱이 사실은 그렇다. 되게 고리타분하다. 처음 복싱으로 전향해 원정 스파링 같은 걸 몇 번 다녔었는데 그때마다 느낀 거다. 체육관마다 통일성도 없고 어디는 뭐 관원들끼리 그냥 파벌이 형성이 돼서 지들끼리 알아서 스파링 하고 또 어디는 그냥 막 무조건 줄넘기 안 하면 지도를 안 해주고. 

뭔가 되게 약간 왕국 같은 느낌이다. 지도자들이 이런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은데 그러지 못한다. 사람을 가르치다 보니까 자꾸 사람을 아래로 보는 습성이 있다. 저도 2004년에 체육관 하고 망한 게 다행인 거다. 왜냐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스스로 반면교사로 삼고 이번에 체육관 할 때는 절대 그러지 말자고 생각했다. 

복싱의 고리타분함을 복싱인들이 모르고 있다. 그 안에 만 있으니까. 외부에 한번 나와보면 여러가지를 보고 경험할 수 있다. 그저 자기네들이 아는 수준에서만 알려주고 그게 자꾸 이어지는 거다. 외부로 한번 나와서 다른 운동을 좀 경험하면 확실히 다른 것을 느낄수 있는데 말이다. 복싱이라는 게 보수적이고 왜 발전이 여기서 멈췄을까라는 게 좀 보인다. 내가 복싱을 하게 됐을 때  그걸 되게 많이 느꼈었고 내 것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확실히 방향을 잡은 거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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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구 2022-12-02 00:43:37
무엇을 가르치던 지도자의 마인드가 중요한것같네요.기존 안좋은 방식을 새롭게 바꾸는게 쉽지않고 참 힘든일인데 김감독님은 참 멋진분이네요.앞으로 복싱계가 감독님을 계기로 많이 변화되길 바랍니다

유성재 2022-12-01 22:25:30
오랜시간 고인 문화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말씀 안에 그간의 고민과 열정이 보이네요.
더욱 번창하셔서 노력에 결실이 크게 맺어지길 기대합니다!

White 2022-12-01 20:19:12
좋은 철학을 가지고 체육관을 운영하시는 것 같아서 관원분들 좋으시겠어요~

백은지 2022-12-01 20:54:47
외국복싱선수들은 스폰도 많이받고 스타성도 있는데 유독 한국복싱은 옛날에 머무르는 느낌이 강했는데 속시원한 인터뷰 내용에 감동받았네용

GangMo 2022-12-01 20:09:32
체육관 문화도 그리고 운동을 배우는 시스템도, 김형균 관장님 말씀대로 변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싱을 좋아하는 1인으로써 김형균 관장님 체육관이 오랫동안 크게 번창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