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실 KBJJF 총재, 장순호 KJJA 회장, 이승재 KBJJF 회장(좌측 부터)
지난 5월 1일 하나의 소식이 한국 브라질리안주짓수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일명 ‘유러피안 주짓수’로 알려진 대한주짓수협회(회장 장순호, Korea Ju-Jitsu Association, 이하 KJJA)와 대한브라질리안주짓수연맹(회장 이승재, 총재 강성실 Korea Brazilian Jiu-Jitsu Federation, 이하 KBJJF)이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이다.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던 KJJA와 KBJJF은 보도자료를 통해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단체가 밝힌 협력의 내용은 ① 인적교류를 통한 교육 ②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자격에 대한 합의다.
KBJJF와 ‘인적교류를 통한 교육’으로 KJJA 선수들은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KBJJF를 통해 BJJ 룰과 기술 등을 교육받게 된다. 또한 KJJA와 ‘국가대표 자격에 대한 합의를 통해 KBJJF는 소속 선수들을 2018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주짓수’에 출전시킬 자격을 얻게 됐다.
두 단체는 합의를 통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KBJJF 관계자는 “KJJA는 KBJJF와의 인적교류를 통해 주짓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KJJA 내부 선수 육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또한 KBJJF는 KJJA와 협의를 통해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대표선수 선발전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유러피안주짓수의 성장 및 KJJA와 KBJJF의 협력 과정
이렇듯 큰 파장을 몰고 온 유러피안주짓수는 과연 무엇인가? 유러피안주짓수를 대표하는 단체 주짓수국제연맹(JU JITSU INTERNATIONAL FEDERATION, JJIF)는 1977년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3개 국가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단체인 유러피안주짓수연맹(EUROPEAN JU-JITSU FEDERATION, EJJF)를 기원으로 둔다. 10년 후인 1987년, 주축 맴버들이 EJJF를 세계적인 단체로 성장시키기 위해 JJIF를 발족하고 EJJF는 지역산하 단체로 두게 된다.
주짓수국제연맹 JJIF의 로고
KJJA는 JJIF의 산하 단체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2014년부터다. KJJA는 국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 단체 및 체육관과 접촉을 시도, 브라질리안주짓수와 교류의 물고를 틀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큰 실패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 지도자들이 유러피안주짓수의 정통성을 부정해서다. 승급 체계의 차이가 컸다. 약 10여년 동안 수련을 거쳐야 블랙벨트가 될 수 있는 브라질리안주짓수와는 달리 1~2년 수련으로 블랙벨트가 될 수 있는 유러피안주짓수를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계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KJJA의 한 관계자는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협회들과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가짜’ 취급을 받으며 무시를 당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유러피안주짓수의 위상이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JJIF는 아시아연맹인 JJAU(Ju-jitsu Asia Union)를 설립한 이래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됐고, 2015년 1월에는 유러피안 주짓수가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이는 아랍에미리트주짓수연맹(UAE Jiu-Jitsu Federation)의 압둘무넴 알사예드 알 하시미(Abdulmunem Alsayed M. Al Hashmi) 회장이 아시아연맹 회장에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되어왔던 사실이었다. 알 하시미 회장은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의 집행위원으로, 주짓수의 아시안게임 가입에 큰 힘을 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4월 만남을 가진 압둘무넴 알 하시미 JJAU 회장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출처: www.jjau.org
유러피안주짓수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에 협조를 구해왔던 KJJA측은 반대로 브라질리안주짓수측으로부터 수많은 연락을 받아왔다는 후문이다. KJJA측은 “결국 ‘아시안게임 출전권’ 때문이 아니겠냐”고 귀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던 단체는 강성실 본부장의 사단법인 국제브라질리안주짓수협회(International Brazilian Jiu-jitsu Federation of Korea, IBJJFK)였다. 3월에 IBJJFK에서 대한주짓수협회라는 명칭을 사단법인으로 등록시켜 KJJA와 잡음이 있긴 했으나, IBJJFK는 이승재 대표의 한국주짓수연맹(KBJJF)와 합병을 통해 대한주짓수협회라는 명칭을 버리고, 대한브라질리안주짓수연맹(KBJJF)라는 협회를 발족시킴으로서 사건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이후 KJJA와 KBJJF는 협상을 이어나간 결과, 지난 1일 발표된 내용으로 MOU를 맺게 된다.
▶KBJJF를 제외한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의 움직임
사실 KJJA가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갖게 되면서 IBJJFK 뿐만 아니라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계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KJJA를 인정하지 않는 국내 분위기에서 인맥을 통해 KJJA를 거치지 않고 직접 JJAU와 접촉을 시도한 세력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KBJJF를 제외한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 단체 및 체육관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KBJJF가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를 대표하게 된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 관계자들이 모여 ‘평의회’를 조직한 것. 평의회에는 국내에서 커다란 조직을 갖고 있는 브라질리안주짓수 체육관을 비롯해 다양한 브라질리안주짓수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평의회측은 “현재 많은 체육관 관장들과 접촉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정 인원이 모이는 대로 정식으로 발족을 발표하고 행동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크게 전일본주짓수연맹(Jiu-jitsu Federation of Japan, JJFJ)과 일본브라질리안주짓수연맹(Japan Brazilian Jiu-jitsu Federation, JBJJF)으로 나뉜다. 일본 주짓수계의 양대 산맥이다. 일본의 두 거대 주짓수 단체의 경우 국제 대회에 대한 권한을 서로 나누어 갖고 있는 형태다. JJFJ는 직접 유러피안주짓수와 접촉을 통해 일본지부 자격을 득한 상태이고, JBJJF는 국제브라질리안주짓수연맹(International Brazilian Jiu-jitsu Federation, IBJJF)과 협의를 통해 2006년 아시아 오픈 주짓수 챔피언십(Asian Open Jiu-Jitsu Championship)을 개최한 이래로 IBJJF와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모습이다.
전일본주짓수연맹과 일본브라질리안주짓수연맹의 로고
일본에선 유러피안주짓수와 브라질리안주짓수의 국제대회와 관련된 권한이 두 단체에 분명히 나뉜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KJJA, KBJJF 두 단체 협의체에 쏠려있는 상황이다. 유러피안 주짓수 한국지부의 권리를 갖고 있는 KJJA와 IBJJF 대회 개최권을 갖고 있는 KBJJF가 협력한 상태가 만들어짐에 따라 대한체육회를 위시한 제도권으로 들어갈 확률은 더욱 높아진 상태다. 이는 자칫하다간 KBJJF를 제외한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 협회 및 체육관은 KBJJF에게 일방적으로 이끌려 갈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평의회측은 “불가항력적으로 특정 단체의 의견이나 명령에 이끌려가는 일 없이, 보다 능동적으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자구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를 한 곳에 모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조만간 평의회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합종연횡 한국 주짓수, 그 미래는?
KJJA와 KBJJF의 협약 발표가 큰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이후 한국 주짓수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전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현재 난립해 있는 브라질리안주짓수 단체들이 KBJJF로 서서히 편입되는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KJJA와 KBJJF의 협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육성, IBJJF 대회의 지속적인 개최로 대한체육회 가입까지 진행된다면 대다수의 브라질리안주짓수 체육관이 공신력을 얻은 KBJJF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다.
한 전문가는 “KBJJF에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 단체와 체육관이 불만을 품고 잠시나마 거부의사를 밝힐 수는 있겠지만, KJJA와 KBJJF 두 협회가 안정화에 들어설 시점이 되면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 체육관이 KBJJF 아래로 하나 둘 모이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더욱 많은 단체가 난립하여 혼란상황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별, 형태별 다양한 협회들이 만들어져 분열이 가속화 된다는 전망이다. 대한체육회에선 주짓수의 대한체육회 등록을 위해선 통합을 권고하고 있으나 분열이 가속화되면 대한체육회 가입 또한 요원해진다. 합기도의 경우 2008년 1월 잠시나마 대한체육회 ‘인정단체’가 되었으나 단체의 통합이 진행되지 못해, 곧 대한체육회 인정단체 지정이 취소되었다.
한 브라질리안주짓수 체육관 관장은 “KBJJF가 열린 마음으로 시작하여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를 껴안은 형태로 이번 협약이 진행되었으면 했지만, 이번 협약은 먼저 발표하고 알아서 따라오라는 꼴”이라며 “열린 자세에서 모두를 끌어안는 형태로 국내 브라질리안주짓수계에 접근하지 않는다면 통합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욱 기자 mr.sungch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