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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흥'이란 말이 무색…제대로 된 ’링’ 조차 마련 안 한 프로레슬링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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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흥'이란 말이 무색…제대로 된 ’링’ 조차 마련 안 한 프로레슬링 단체
  • 이무현 기자
  • 승인 2022.11.04 09:5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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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칼럼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랭크파이브=이무현 기자] 거구의 선수가 있는 힘껏 상대를 들어 매치고, 로프 위에 올라가 몸을 던진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연출이 눈앞에서 펼쳐지면 관중석 곳곳에서 감탄사가 들린다. ‘사각의 링에서 불가능은 없다’는 모토는 프로레슬링이 오랜 기간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러한 연출이 가능한 데에는 여러 가지 비밀이 있다. 고도의 훈련으로 단련된 선수들의 역할도 크지만, 과학적으로 설계된 사각의 ‘링’에 그 이유가 숨겨져 있다. 링의 중앙에는 커다란 스프링이 중심을 받히고 있어, 선수가 바닥에 부딪히는 시간을 길게 만들어 충격을 대신 흡수한다. 겉보기에는 얇고 헐렁해 보이는 로프도 실제로는 두꺼운 철제 와이어로 이뤄져 거구의 선수들도 무리 없이 공중 기술을 시전하도록 돕는다. 

지난 30일 서울 도봉구 올스타디움에서 열린 신생 프로레슬링 단체 AKW(전한국프로레슬링)의 ‘The Invasion(디 인베이션)’ 대회에서도 프로레슬링 링의 중요성이 여실 없이 드러났다. 

AKW 디 인베이션은 아프리카 TV와의 협업과 WWE 출신 호호룬을 비롯한 PWS 선수들의 참전 등 다양한 시도로 프로레슬링 팬들의 흥미를 끈 대회다. 실제로 일요일 저녁에 열린 흥행이었음에도 불구, 약 200여 명의 팬이 현장을 찾아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막상 대회장에 도착하자 가장 기본이 돼야하는 링의 상태가 위험해 보였다. 선수들이 안전하게 시합을 하려면 충격을 흡수하는 탄성 있는 링이 필수인데, 스프링 없이 설계된 복싱링에 매트리스 한 겹을 추가한 게 전부였다. 커다란 공업용 스프링이 중심을 받히고 그 위로 널빤지와 매트리스가 올라간 프로레슬링 링과는 달랐다. 주변을 감싸는 로프도 프로레슬링 로프와 소재가 달라 끊어질 위험이 있다는 의견을 준 선수들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크게 드러났던 경기는 메인이벤트인 범솔과 호호룬의 챔피언십이었다. 평소 파워 슬램, 스파인 버스터 등 상대를 들어 던지는 기술에 특화된 실력을 보였던 범솔은 이 시합에서 온전한 기량을 선보일 수 없었다. 링 바닥이 딱딱한 탓에 장기인 슬램류 기술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멋진 경기 끝에 승리하며 챔피언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그는 “정상적인 링에서 시합했다면 더 좋았을거다”고 아쉬워했다. 

각종 무기 사용이 가능했던 브라이언 레오와 김미르의 경기에서도 레오의 등에 너무 많은 압정이 꽂히는 장면이 연출됐다. 보통의 프로레슬링 링이었다면 레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스프링이 움직이며 등에 찍히는 압정의 양을 줄여줬겠지만, 탄성이 없는 링 바닥 탓에 그는 온몸으로 박히는 압정을 꼼짝없이 받아내야만 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선수도 “링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이외에도 몇몇 선수들이 위험한 로프와 단단한 바닥 때문에 3단로프 공중기를 사용하지 못했고, 방어적인 경기를 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장외 난투극과 체인 레슬링이 경기에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대회가 끝나고 기자와의 인터뷰에 익명을 요청한 한 선수는 “링 교체가 시급하다. 레슬러들의 몸이 아무리 튼튼해도 이번 대회와 같은 링에서 경기하다 보면 부상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링이 딱딱해서 하드코어 매치에 의존하게 되는 점도 AKW가 대회사로 성장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거다”고 지적했다.

다른 선수도 “아직 두 번째 대회이고 발전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링 바닥에 떨어질 때 받은 충격은 맨바닥에 매트 한 장을 깔아 놓은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로프 역시 일반적인 프로레슬링의 로프보다 소재가 얇아 불안했다”고 토로했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타 단체 소속의 선수 역시 “영상로만 봐도 프로레슬링을 해서는 안 되는 링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정식 링이 없는데 외국인 선수를 초빙했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로 인해 외국에서 한국 프로레슬링에 대한 불신이 생기지는 않을까’는 염려가 든다”며 우려를 표했다.

AKW는 단체 창단과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의 변화‘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처럼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정식 링조차 마련하지 않으면서, 한국 프로레슬링의 변화와 부흥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지나친 모순으로 생각된다. 

전 세계 대부분의 프로레슬링 단체가 매 대회 5~6t의 트럭을 빌리고, 링 설치에만 2~3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결코 이유 없는 행동이 아니다. 국내 프로레슬링 대회사 PWF와 PWS도 흥행을 열기 위해 거금을 들여 프로레슬링 링을 우선으로 마련했다.

프로레슬링은 엄연한 스포츠다. 각본이 있지만, 링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프로 선수들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스포츠는 경기력으로 말한다. 좋은 시합이 뒷받침돼야 팬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이다. 

AKW가 대회사로의 행보를 더 이어가려면 선수들이 제대로된 기량을 선보일 수 있게 도와야 하며 안전하게 시합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장점을 보여줄 수 없는, 부상의 위험이 큰 환경에도 최선을 다해 경기한 선수들의 ’분전‘을 무위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한편, 기자는 단체 측의 입장을 듣고자 AKW 헤이든 대표에게 전화 연락과 메시지로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랭크파이브는 반론권을 보장합니다. 반론할 내용이 있을 경우 즉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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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이 2022-11-05 09:34:49
좋은 기사입니다. 지킬 건 지켜야 선수들 건강도 지켜지는 것이고, 선수들도 조금이나마 더 좋은 경기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같은 시기에 안.전 관련 기사가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링 위도 어찌보면 선수들의 일터입니다. 기본적인 것은 당연히 지켜져야합니다.

ㅇㅇ 2022-11-04 23:17:46
기자님 응원합니다

ㅇㅇ 2022-11-04 21:17:07
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링이 바뀐다고 경기 퀄리티가 극적으로 높아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부상은 당하지 말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