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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 피버 피치] Ep.01 홍콩의 힐 훅 장인 Leung Hok 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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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 피버 피치] Ep.01 홍콩의 힐 훅 장인 Leung Hok Lai
  • 송광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13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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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ung Hok Lai 선수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오기진(본사이 코리아), 정지홍 (팀루츠) 선수
Leung Hok Lai 선수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오기진(본사이 코리아), 정지홍 (팀루츠) 선수

[랭크파이브=송광빈 칼럼니스트] 대회를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대회를 치르며 가장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언제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참가 선수 모집이 안될 때”라고 대답할 것이다. 접수 마감 기한이 다가오며, 가장 평균적인 체급과 벨트에서는 참가자가 몰려 주최사의 스트레스는 줄어들지만. 적은 수의 인원이 신청한 부문 참가자들은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단독 출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참가 인원이 더 들어올까요?” “참가 부문의 신청자가 없으면, 저를 윗 체급으로 변경 해줄 수 있나요?” 하는 문의가 끊임 없다. 혹여나 그런 문의를 하는 분들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오시는 분이라면, 그분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이됨을 느낀다. 큰 마음 먹고, 멀리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내가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데, 매칭을 못해드리거나 초라한 자리를 만들면 어찌하나. 제발 이 참가자들이 신청한 부문에 한 명이라도 더 신청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된다.

 필자가 SGAA 라는 작은 대회를 운영하며, 2017년 세 번째 노기 주짓수 대회의 참가 신청란을 열었을 때 일이다. 대회 공식 SNS를 통해서 한 외국인이 메세지를 보내왔다. 과거에 주최한 행사에 정체불명의 외국인들에게 메세지를 종종 받곤 했는데. 대부분이 격투기 용품을 제작하는 공장들의 영업이거나, 본인이 참가자를 많이 모아서 한국에 가려고 하는데 비자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둥(저런거에 응하면 큰일납니다! 출입국관리소에 불려갈거에요!)  안 읽는게 나을뻔한게 압도적으로 많았다.

새벽 세 시에 날아온 메세지
새벽 세 시에 날아온 메세지

다행스럽게 이 메세지는 대회 참가를 희망한다는 내용이다. 본인은 홍콩 여권을 소지한 사람인데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지, 참가비 입금 방법과 대진표 공개시점 등 여러번 메세지가 오가다가 뒤늦게 이 참가자가 한국거주 홍콩 국적인이 아니라, 홍콩 거주 홍콩 국적인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비행기표를 사야한다는 이야기에 비록 한 사람이지만 ‘외국에서도 우리 토너먼트를 알고 참가 하고 싶어한다는' 이 사건에 흥분이 되면서도. 동시에 ‘모집 스트레스'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라도 참가하고 싶다는데… 해당 부문 참가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부담되기 시작했다. 참가자도 그점이 염려스러운지, 단독 출전시에 환불이 되는지 체급 변경이 되는지 하며 자주 메세지를 보냈다. 염려 말아라, 해당 체급은 한국에 선수가 많다고 설명해줬으나. 속으로 쫄려왔다. 

 이 선수의 이름은 Leung Hok Lai. 소속은 Boom ‘피트니스'. 신청 부문은 ‘프로페셔널 -66kg’ 였다. SGAA의 프로페셔널 부문은 ADCC의 규정을 그대로 채용하여, 힐훅이 가능한 국내 유일의 대회로 말그대로 프로 선수급 숙련자가 아니면 참가하지 않는다. 참가 모집 스트레스와 함께,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외국에서 왔는데 혹시 크게 다치면 어쩌지… 첫 경기에 지면 허탈해서 어쩌려나… 참가자 한 명 한 명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다행스럽게도 해당 체급은 6명이 모였다. 이제는 대진표 작성의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차례다. 대진표를 보고 항의를 하거나 공정성을 문제 삼는 이들은 생각외로 많다. 6강전은 2명의 부전승자가 있다. 이 두 사람을 누구로 택해야 하는가. 혹여 친밀한 관계라고 유리한 대진을 짜줬다고 말이 나오지 않을까. 어떠한 기준으로 부전승자를 지정해줘야 하는가. 항상 햄릿처럼 고뇌한다. 그래도 나름의 기준은 있다. ‘멀리서 오는 사람'은 대진에서 부전의 기회가 생긴다면 배려를 해주자. 그 기준이라면 Leung 선수는 1경기 부전승자로 배정하는데 그 이유가 차고도 넘쳤다. 선수 본인은 한 경기라도 더 뛰고 싶었는지 몰라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참가하는 이 선수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는 이것이 전부였다.

2017년 SGAA NO-GI 3 대회 대진표
2017년 SGAA NO-GI 3 대회 대진표

대회가 진행되면 현장은 분주하게 돌아간다. 선수를 목놓아 부르며 찾고, 경기가 있는 매트로 모셔 와야 하고, 매트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경기가 밀리지는 않았는지 모든 매트를 돌며 상황 파악을 해야 한다. 심판의 판정과 스태프의 운영에 항의를 하는 사람들을 받아줘야 하고. 심각한 부상자가 생기면 케어를 해줘야 한다. 이렇게 번잡한 상황에 어느 한 사람만 마음 써주고 챙겨주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와중에 홍콩에서 온 Leung은 신경이 쓰였다. 틈이 나서 Leung 선수의 경기를 보러갔다.

Leung은 가드 플레이어였다. 나비 가드를 하고 버티고 앉아, 두 손의 상대의 패스 시도를 차단하고 있었다. 밀고 들어오면 손을 뻗어 막고, 상대가 Leung의 발목을 잡아 패스를 하려고 하면 암드래그를 시도하며 공격적으로 막아냈다. 끊임 없이 암드래그를 노리는 것을 보아 상대를 잡아 끌어 백을 잡는 백쵸커이거나 틈을 봐서 길로틴 쵸크를 하는 스타일인가 했다. 상대 김태윤 선수는 Leung의 가드를 뚫지 못하자, 움직임이 커진듯 했다. 보폭을 넓게 해서 빠르게 돌다가 Leung 선수의 클로즈 가드에 잡혀 버렸다. 하지만 Leung은 클로즈 가드로 묶어둘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내 가드를 풀고 다리를 크게 회전 시키는 동작이 암바를 노리는 줄 알았으나, 그의 다리가 휘감은 것은 김태윤 선수의 다리였다. 클로즈 가드에서 바깥쪽 50/50 포지션을 만들고 삼각 그립으로 잠근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김태윤 선수는 장외로 탈출 했으나, 룰에 따라 포지션을 유지한 채로 중앙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포지션 탈출을 위해 재빠르게 돌았으나, 다리가 묶여 있는 것은 여전했고. 오히려 발뒤꿈치가 잡혀 Leung의 힐 훅에 탭을 치고 말았다. Leung은 처음부터 힐 훅을 노렸던 것이다.

사실은 Leung이 홍콩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보다 수준이 낮지 않을까 되려 짐작하고, 소속팀도 외국의 네트워크를 내세우지 않고. 피트니스 센터 한 켠에 매트를 설치해서 작게 곁방살이를 하는 곳 같아 보여 걱정도 했었지만. 그는 뜻밖의 실력자였다. 곧, 아시아 단체를 지향한다는 뜻의 SGAA라는 이름을 쓰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그래플링 실력을 선입견으로 낮추어 본 자신을 반성했다. 

Leung은 부전승을 받은 덕에 한 번의 승리로 결승전에 올라갔다. Leung의 결승전 상대도 1경기 부전승을 받은 본사이 코리아의 오기진 선수였다. 

SGAA가 채용한 ADCC 룰은 사실 레슬러에게 유리하다. ADCC는 정확하게 노기 주짓수 대회가 아니라 서브미션 레슬링 대회다. 공격적인 레슬러가 점수를 받도록 기획되었다. 가드 패스가 된 포지션으로 테이크 다운이 된 경우 ‘클린 테이크 다운’이라고 하며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인 4점을 받게 되어 있고. 주짓수 시합에서는 점수로 인정되지 않는 뒤집기를 ADCC에서는 스윕으로 인정해 점수를 받게 했다. 그리고 태클을 무기로 하는 레슬러에게 유리한 장치를 하나 더 심어두었는데, ‘결승전'에서는 ‘셀프 가드'를 하는 사람에게 감점을 하는 규정이 그것이다. 한국의 우수한 가드 플레이어들이 결승전에서 점수가 깎이고, 탑 플레이어의 교묘하게 가드에 들어가는 것을 회피하며 시간을 끌다 다급해진 가드 플레이어가 일어서면 테이크 다운 점수를 따내는 방식으로 우승을 빼앗겼다. 즉, SGAA 프로페셔널 부문이나 ADCC에서 가드 플레이어들이 우승을 하려면 무조건 서브미션 승리를 노려야만 한다. 

Leung 선수는 결승전에서 시작과 동시에 셀프 가드로 가고 말았다. 시작부터 손해를 안고 가는 것이다. 오기진 선수는 빠르게 더블 언더를 파고 들며 패스 압박을 해왔다. Leung은 무릎을 세워 막으며 여차하면 트라이앵글 쵸크를 걸 수 있다는 암시를 주어 패스를 막아냈다. 한 발 물러섰던 오기진 선수는 재차 더블 언더 패스를 시도했고 이번엔 Leung은 나비 가드로 버티며 상대가 머리를 박으며 밀고 들어오는 압박을 손으로 저지하거나 더블 언더를 시도하는 손목을 잡거나 뜯어내며 패스를 무산시켰다. 하지만 끊임 없는 더블 언더 패스를 무릎을 들어 막기 급급했는데, 오기진 선수의 팔을 뜯어내며 무릎을 올리는 행동을 자주해서 트라이앵글 쵸크를 노리는 걸로 착각했다. 그러나 Leung이 노렸던 것은 또다시 50/50 포지션을 만드는 것이었다. 더블 언더가 잠시 풀리는 순간 양발을 휘져으며 가드를 했다가 전광석화와 같이 원하는 레그락 포지션을 잡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장외로 나갔지만, 포지션을 유지한 채로 중앙에서 경기가 재개되었다. 오기진 선수는 압박을 하며 하위 포지션의 Leung 선수를 납작하게 눌러둘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하체가 불안정해서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었다. 좀 더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무릎을 살짝 펴서 일어나려고 했던 것이 패착이 되었다. Leung이 50/50 포지션을 삼각그립으로 잡은 구조로 오기진 선수를 밀어내며 중심을 흔든 것이다. 무릎이 완전히 펴지며 바닥으로 떨어진 오기진 선수는 그대로 발목을 잡혔고, Leung은 힐 훅을 완성시키며 서브미션 승리를 해냈다. Leung은 힐 훅 장인이었다. 그래서 그가 힐 훅을 허용하는 SGAA에 참가하고자 홍콩에서 부터 날아온 것이었다. 

SGAA 라는 노기 전문 대회사를 운영하며, ‘힐 훅 허용’이라는 규정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힐 훅이 있으니까 참가를 해야겠다는 선수와. 힐 훅으로 부상 입을까봐 무서워서 이 대회는 못 나가겠다는 선수가 있다. 사실 프로페셔널 부문이라고 이름을 걸었지만, 프로 선수에 걸맞는 대접은 필자의 대회사에서 해드리지 못했다. ADCC 처럼 큰 상금을 줄 수 있는 대회도 아니고. 참가비를 내고 시합을 뛰는 ‘생활 체육 오픈 토너먼트' 였기에, ‘보상’이 적은 대회에 ‘부상’이 걱정되어 참가하지 않겠다는 여론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단지 자신의 기량을 시험해보고 싶은 선수들의 열정에 기대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열정의 끝을 보여준 선수가 Leung Hok Lai 였고. 힐 훅을 허용하는 대회에서 두 번의 힐 훅으로 우승하여 본인의 열정을 증명하였다. 그가 부상 없이 우승하고, 그와 상대한 선수들도 힐 훅에 크게 다치지 않고 경기가 마무리 되자. ‘홍콩여권을 가진 선수’를 접수하며 받기 시작한 모든 스트레스가 일소되었다. 일면식도 없지만 멀리서 온 선수가 좋은 결과를 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Leung 선수는 가장 낮은 체급의 선수여서 그런지 무제한급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여자 친구가 한국 여행을 겸해서 함께 찾아온 모양이었는데. 본인의 경기가 끝났지만, 여자 친구와 끝까지 대회장에 남아 프로페셔널 부문 무제한급에서 조준용 선수가 우승하는 것을 지켜보고. 벨트 챔피언 결정전인 마크 부조빅 선수와 김재웅 선수의 수퍼파이트까지 지켜봤다. 이후 그와 메세지를 몇 번 더 주고 받으며 좋은 대회였다고 칭찬을 하며 다음에도 참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다음해에 대회 공지가 올라갔을 때, 노기 대회가 아니라 도복 대회임을 확인하고 찾아오지 않았고. 다음해엔 홍콩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시국에 홍콩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 달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또 그 다음해엔 판데믹 시대가 찾아왔다. 이 암울한 시국이 잘 정리가 되어, 다시 큰 경기장을 빌려서 노기 대회를 열게 되었을 때. Leung이 다시 한 번 찾아왔으면 좋겠다. Leung과 같이 뛰어난 아시아권 선수들이 많이 찾아와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고. 또 한국 선수들이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며 한국을 찾아왔던 선수들과 교류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굳이 작은 대회를 열면서 이름은 거창하게 “서브미션 그래플링 아시아 단체 - SGAA” 라고 이름 붙인 연유엔 이런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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