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크5=성우창 칼럼니스트] '길거리 싸움의 강자가 링 위에 오르면 어떻게 될까?'라는 국내 격투기 팬, 호사가의 단순한 의문을 풀 기회는 무산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입식 격투기 챔피언 명현만, 그리고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모 지역을 대표하는 주먹꾼으로 이름을 날린 위대한의 기획 스파링이 대회사의 만류로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명현만 스스로가 일반 개인이 아닌 프로로써 여러 이해관계에 맞물려 있고, 위대한과의 싸움에 어떠한 명분을 찾기 어려웠던 탓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해프닝의 과정과 결과만을 지켜보는 팬 입장에서야 상황이 돌아가는 것만 지켜보면 될 일, 게다가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국내 격투기 이슈가 전무했던 시점에서 이 싸움은 큰 화제와 관심을 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체 그와 굳이 스파링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격투가라면 일상생활에서도 싸움 좀 한다 하는 사람에게 셀 수도 없이 시비가 걸려오기 마련이며, 그런 사람을 일일이 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 때문인지 따지고 보면 위대한의 시비로 인해 촉발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명현만에게 ‘관심종자인 것 아니냐’라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결국 ‘정식으로 격투를 배우지 않은, 그러나 길거리 싸움은 강하다는 일반인이 링 위에 오른다면 어느 정도일까?’라는 원초적 궁금증에서 촉발되었고, 귀결된다. 동서를 불문한 모두 공통된 의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데 다행히 참고할만한 괜찮은 사례들이 있다.
다만, 길거리 싸움이라고 해서 킴보 슬라이스나 호르헤 마스비달과 같은 사례를 드는 것은 다소 불합리할 것이다. 우리가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은 단순 ‘길거리 싸움 출신’이 아니라 그 힘을 불합리하게 약자에게 휘둘렀던 도덕적 일탈자, 그 중에서도 진지한 격투기 수련이라는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링 위에 오른 사례로 한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첫 손을 꼽아보자면 역시 ‘불리 비트다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전 UFC 선수 ‘메이햄’ 제이슨 밀러가 MC를 맡았던 이 프로그램은 미 전역 깡패, 특히 약자들을 괴롭히는 ‘불리’들을 직접 현역 격투기 선수와 대결시키는 것을 메인 콘텐츠로 한다. 1만 달러를 미끼로 총 2라운드를 싸우게 되는데, 한번 탭이나 KO가 나올 때마다 1천 달러씩 감산 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돈을 따간 불리도 있지만 한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은 1만 달러를 모두 잃게 된다. 이를 보는 관중이나 시청자들도 불리의 승리를 바라고 보는 것이 아닌 일종의 권선징악, 정의의 응징을 보는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서이며, 오히려 불리가 선전하는 에피소드의 인기가 적은 편이다.
동양에서는 일본 종합격투기 단체 RINGS의 하위 대회 ‘디 아웃사이더’를 빼놓을 수 없다. 수장 마에다 아키라가 당초부터 ‘불량’을 컨셉으로 잡은 이 대회는, 초기부터 일본 각지 내로라하는 불량아들을 집합 시켜 링 위에 올린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본 폭주족들의 잔인성과 단결력은 꽤 유명한 편인데, 초기 대회에서는 싸움에서 진 ‘선수’를 대신해 그 패거리들이 링에 난입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불량아만이 아니라 일반 선수들도 디 아웃사이더에 참가할 수 있다.
불리 비트다운과 마찬가지로 이 디 아웃사이더에서 불량아의 결과물은 딱히 그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불량아 출신으로 성공한, 혹은 유망한 선수가 눈에 띄질 않는다. 물론 이 대회 출신 스타 아사쿠라 미쿠루, 카이 형제 역시 소년원 이력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진즉 손을 씻고 격투기에 뜻을 품어 대회 참가 전부터 장기간 도장에서 기술을 수련했다는 점에 살짝 핀트가 다르다. 최근에는 이 대회 출신 선수 하나가 국내 대회 아잘렛에 출전했으나 썩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패했다.
국내에선 역시 '주먹이 운다'에서 화제가 된 몇몇 선수를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그 중 한 명이자 위대한의 친구로 알려진 박현우가 디 아웃사이더즈에 출전하여 불과 2분 만에 불량아 두 명을 때려눕힌 사실은 꽤 흥미롭다. 그러나 국내의 객관적 기준으로 한정하자면 박현우는 물론 싸움꾼 출신 파이터 중 현시점까지 그리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야쿠자 출신 파이터로 유명한 김재훈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일반인에게 큰 위협이 되는 ‘싸움꾼’ 역시 숙달된 격투기 선수를 상대로는 이기기는 커녕 호투를 펼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며, 이 사실은 위와 같은 고증을 거쳐 더욱 확실해진다.
일본 종합격투기 단체 라이진에서 활약하는 아사쿠라 미쿠루와 디 아웃사이더 출신 시바타의 대결. 아사쿠라 미쿠루를 '약한 벌레'라고 조롱했지만 경기결과는 처참하다.
당시 아사쿠라 미쿠루는 라이진 연말 대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경기는 8분 30초부터 시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궁금증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선수=선, 불량배=악이라는 구도에서 권선징악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고자 하는 욕구의 발로가 아닌가 필자는 생각한다. 격투기 팬들 대부분은 역시 선량한 일반인이고, 대개 그런 불량아로부터의 불의의 위협을 당해온 피해자 입장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관객의 마음속에는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으며, 법을 떠나 자신들을 대신해 그들에게 사적 제재가 내려지길 바라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번 명현만 대 위대한 사태를 봤을 때 다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일방의 요청에 의한 단순 복싱 스파링이었다고는 하지만 주목도를 봤을 때 사실상 명분 없는 이벤트 매치에 가까웠던 만큼, 페어플레이에 의한 스포츠화를 지향하는 격투기의 방향성에 그리 좋은 일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필자의 주관일 뿐일까. 과연 선수가 선수가 아닌 '불량배'를 스파링에서 때려눕힌다 하여 정의사회 구현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시합을 무산시킨 맥스 FC의 결정을 존중하며, 링에 오르는 자들은 각자 그간 갈고 닦은 자신의 기량을 겨루기 위함이지 일방적인 제재의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님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