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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 디에고 산체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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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 디에고 산체스의 선택
  • 성우창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2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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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반칙에 의한 경기 중단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일까
디에고 산체스와 미첼 페레이라 경기 포스터
디에고 산체스와 미첼 페레이라 경기 포스터
[랭크5=성우창 칼럼니스트] 요즘 전체적으로 UFC의 대진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평이다. 작년 하반기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부었기 때문일까, 지난 칼럼에서도 이 점을 비판했지만, UFC의 사정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 뿐 곧 팬들의 흥미를 끌 매치메이킹을 다시금 선보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주 UFC 또한 그런 평이었지만, 그래도 국내 격투기 팬이라면 코메인 이벤트에 조금은 눈길이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격투기 오디션의 시초, TUF 1회의 기념비적 우승자 디에고 산체스(38, 미국)와 국내 로드FC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린 미첼 페레이라(26, 브라질)의 대결이다.
 
뚜껑을 열고 나니 경기는 일방적. 1, 2라운드는 물론 3라운드 초반까지 미첼 페레이라가 경기를 지배했다. 레슬링이 장기인 디에고 산체스의 태클을 여지없이 차단했고, 오만가지 타격기술로 그를 압박한 것이다. 쇼타임 킥과 더불어 여유 있는 노가드(No-guard) 같은 퍼포먼스는 물론, 매너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상대인 디에고 산체스를 쳐다보지도 않는 노룩(No-look)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건은 3라운드 막바지에 일어난다. ‘갖고 놀기’를 그만두고 피니시를 노리던 미첼 페레이라가 그만 3점 니킥으로 디에고 산체스의 두부를 강타했다. 닥터 체크까지 포함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심판이 디에고 산체스의 의향을 물어보고 나서야 반칙승을 선언한다. 미첼 페레이라는 그렇게 다 이긴 경기를 내버리고 2연패를 달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 시합 후 팬들의 반응이다. 미첼 페레이라에 대한 비웃음과 비난도 문제였지만, 엄연한 반칙의 피해자인 디에고 산체스에게도 비슷한 반응이 쏟아졌다.
 
‘다 진 경기를 얻어터져서 이겼다’
‘전사의 심장이 없다’
‘그의 팬을 그만두겠다’
 
과연 이것이 디에고 산체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나아가, 철저한 반이성적 비난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3점 니킥은 선수의 안전을 위해 제정한 명백한 반칙이며, 이를 조심하지 못해 받은 반칙패는 오롯이 미첼 페레이라의 잘못이다. 이로 인해 디에고 산체스에게 난 두부 컷팅은 한눈에 보더라도 지혈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었으며, 그대로 시합을 속행했다면 다시 출혈이 시작될 뿐 아니라 상처가 더 벌어질 것은 누가 보더라도 뻔했다.
 
한눈에 심각성을 알 수 있는 눈 찌르기라던가, 파울컵이 있으며 웬만한 경우 곧 데미지가 회복되는 로블로와는 전혀 다른 경우다. 인간이 가하는 가장 강한 타격기술 중 하나인 니킥, 그것도 무릎 위치에서 머리에 가격한 니킥인 것이다. 당연히 충격에 따른 뇌내 출혈 등의 가능성을 걱정해야 한다.
 
케이지에서 내려가는 순간까지 디에고 산체스가 외견상으로는 멀쩡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복싱 경기에서 있던 적지 않은 사망사고에서도 사망자들은 충격 직후에는 정상처럼 보였다. 두부 충격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오히려 심판 측은 디에고에게 속행 의사를 물을 것이 아니라 곧장 경기를 중단해야 했었다고 본다. 머리에 가해진 충격으로 제대로 정신을 붙잡고 있었을지도 의심이 가는 피해자에게 속행 의사를 다그치듯 묻는 그 모습은 너무나 잔인했으며, 또한 UFC가 그에게 모종의 책임을 떠넘긴다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제대로 된 선수라면, 그것도 오랜 선수 생활로 데미지가 누적된 베테랑이라면 그 상황에서는 당연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경기를 중단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까.
 
반칙이 일어나고 심판이 시합 일시 중지를 선언할 때 디에고 산체스는 미첼 페레이라의 양다리를 붙잡은 채로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려 애쓰고 있었다. 반칙승이 선언되는 순간까지도 그의 표정에는 기쁨이 아닌, 이런 식으로 경기를 끝낼 수밖에 없었던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 있었다. 어쩌면 그의 심중에는 자신을 응원한 팬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무모한 ‘전사의 심장’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팬 개인의 이기심만이 고려된 잔인한 요구가 아닐는지, 이미 경기 후 그의 SNS에는 상술한 바와 같은 팬들의 비난을, 국내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런 반응을 엿볼 수 있었다.
 
해외 격투기 언론 MMA Junkie와의 인터뷰에서 디에고 산체스는 비록 심판이 어느 정도 회복 시간을 주긴 했지만, 실제 머리에 가해진 충격 등을 고려할 때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의 이번 경기내용과 현실적인 기량, 남은 선수 생활과는 별개로, 선택은 사실 당신의 몫이 아니었다고 개인적인 위로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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