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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일본 주짓수 대회 탐방기 –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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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일본 주짓수 대회 탐방기 – 下
  • 성우창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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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해
후쿠오카시 종합체육관 전경
후쿠오카시 종합체육관 전경

[랭크5=성우창 칼럼니스트]혹시라도 일본 주짓수 대회에 참가를 고려하고 있는 분들은, 특히 그곳이 내 도착지 후쿠오카시 종합체육관(福岡市総合体育館 TERIHA SEKISUI HOUSE ARENA)처럼 도심에서 동떨어진 외진 곳이라면 여유 있을 때 사전에 답사를 해보라 권하고 싶다. 구글 맵스 등 우리나라에서 이용할 때처럼 자세한 실시간 노선 정보가 나와 있지만, 필자가 겪은 것처럼 일시적이고 급작스러운 노선 변화로 생판 타지 길 한복판에 내팽개쳐진 신세에 처하기 싫다면 말이다.

교훈 1. 사전답사로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라

제일 큰 문제는 몸이 아파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마음마저 무너져 버린 동료였다. 그냥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졸랐지만, 내내 그를 달래며 짧디짧은 일본어로 목적지로 갈 버스를 물어물어 찾는 그때 내 심정은 이미 대회에서 이긴다 어쩐다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시합장에는 가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천운이 도왔는지 버스 예정표상 시간을 한참 넘겨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고, 결국 계체 시간에 가깝게 시합장에 도착했다. 덕분에 우리는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르고 계체를 마친 뒤 워밍 업과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는 등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후술하겠지만 만약 앞서 맥없이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면, 나중에 얻게 될 조그맣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교훈 2.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대회장에 도달해라

제13회 JBJJF 큐슈 주짓수 챔피언십 시합장과 참가자들
제13회 JBJJF 큐슈 주짓수 챔피언십 시합장과 참가자들

매트는 총 4개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시합장인 후쿠오카 종합체육관 내의 크기는 아담했다. 참고로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일정 이상의 대회는 대개 이 곳에서 잡히며, 유튜브에도 시합영상이 많이 있으니 이쪽으로 대회 원정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답사 삼아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계체는 각 매트에서 시합할 선수들끼리 해당 매트에 모여 하는 일괄 계체 방식, 내가 속한 3번 매트는 흰 띠와 파란 띠 시합이 배정되어 있었다. 이때 도복 검사까지 실시하는데, 내가 입은 타타미 도복에는 아무런 패치가 붙어있지 않았으나 허리 뒤쪽에 조그맣게 붙어있던 기본 태그가 규정 위반이 아닌지(고작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였는데도!) 타 매트의 심판까지 불러 무언가 속닥거렸다. 결국 통과했지만, 일본 심판들이 대회에 임함에 있어 얼마나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소매통과 띠 길이 등 나머지 요소들도 철저히 검사하는 것은 기본이다.

교훈 3. IBJJF 도복규정을 철저히 신경써라

개회식, 나카이 유키 회장(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회색 정장)

시작에 앞서 심판들이 모여 공정한 주관을 할 것을 선서하고, 뒤이어 일본 주짓수의 전설 나카이 유키가 짤막한 연설을 하고 직접 훌륭한 성적을 거뒀던 모 남녀 선수에 표창장을 선사하는 등 자리가 마련되었다.

내가 속한 마스터1 블루벨트 대회는 참가인원이 세 명으로, 한 명은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대신 1차전 패자에게는 그 부전승자와 다시 한번 겨룰 기회가 주어졌다. 그 당사자가 바로 나였으며, 첫 상대는 순하지만 어딘가 강인한 인상의, 탄탄한 몸을 가진 남성이었다.

처음에는 탑에 비교적 자신이 있던 나의 플랜에 맞게 그가 먼저 가드를 당겨 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힘과 기술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묶인 클로즈 카드를 도저히 패스할 수 없었고, 잡힌 소매나 목깃을 뜯기는커녕 시도하는 초크를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 시합 준비 전 몇 개월간 주짓수를 수련할 수 없었던 공백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만약 돈 내고 보는 관중이 있었다면 화를 내며 환불을 요구했을 6분간의 지루한 싸움 끝에 0-0으로 종료가 선언되었으나, 그나마 가드 상태에서 계속 초크를 시도한 상대방에 어드밴티지가 주어지고 나의 패배가 선언되었다. 관중과 심판을 향해 인사를 한 후 승자는 외국에서 온 나에게 괜시리 미안했던지 다가와 ‘힘이 정말 강하시네요’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도 그런 타국인의 친절에 감사하며 짧은 일본어로 시종일관 ‘감사합니다, 좋은 초크였습니다.’만 되풀이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다행히 내겐 곧 두 번째 시합이 있었고, 이 시국에 멀리 일본까지 온 내게는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두 번째 상대는 첫 상대보다 피부도 희고 뭔가 유약해 보였던 인상이었기에 마음 한구석에 방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콤바치가 선언되고 스탠딩에서 대치한 상황, 나는 준비했던 레슬링식 태클로 밀고 들어갔다. 상대방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으나 아쉽게도 장외.

중앙 복귀 후 나는 패착을 두고 만다. 첫 태클이 반쯤 성공한 데 고무되어 그대로 똑같은 태클을 시도하고 만 것이다. 상대방은 두 번은 안 당한다는 듯 훌륭한 타이밍의 스프롤로 대응했으며, 준비라도 한 듯한 능숙한 동작으로 암바로 연결해 곧 탭을 칠 수밖에 없었다.

참담한 심정에 눈앞이 캄캄했고, 너무나도 낙담한 나머지 승패 선언부터 인사를 마칠 때까지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중에 영상을 확인해보니 상대방 선수에게 다소 실례인 듯한 태도여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다시 한번 반성한다. 그런 내 심정을 상대방도 잘 아는지 모르는지, 먼저 청한 악수에 응한 후 가볍게 포옹을 해줬을 뿐 다른 긴말은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교훈 4. 상대방 선수에게는, 특히 타국 선수에게는 매사 예의를 갖추자

우승자와 함께, 왼쪽 성우창 칼럼니스트

그렇게 나는 세 명 중 꼴찌를 기록했으며 나를 이긴 두 상대 중 승자, 즉 1위는 1차전에서 어드밴티지로 나를 이긴 바로 그 분이었다. 시상식, 참가인원이 셋 밖에 되지 않았기에 나는 나카이 유키로부터 동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는데, 직후 내 1차전 상대이자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오셨나요?”

“네 맞습니다.”

“서울인가요? 저도 근처 인천에 있던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어요.”

“아, 제가 그 인천에서 삽니다.”

“아, 그렇습니까.”

내 일본어가 서툴러 그리 심도 있는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런 시국’에도 불구하고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동질감, 작은 우정을 느낄 수 있는 대화였다.

“저, 이 길로 한국에 돌아갑니다. 즐거웠습니다.”

“아 예,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또 다시 봅시다.”

무제한급 출전은 사정상 불참하게 되었기에 그렇게 내 첫 해외 주짓수 대회 원정기가 마무리되었다. 0승 2패, 커리어 첫 승 또한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탐방기를 쓴 이유가 뭐냐고? 큰돈을 들이고 떠난 원정에 별 성과가 없어 누군가는 무의미하달 수 있겠지만, 대회가 끝날 때쯤에는 적어도 탐방기 상편에서 예상했던 쪽팔림, 창피함은 느끼지 않았다.

교훈 5. 조그마한 성취라도 충분하다. 용기내 도전하라.

시상자 나카이 유키와 함께

승리 없이 얻은 동메달이나, 적어도 나는 타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대와 싸워 후회를 남기지는 않았다. 내가 만일 애초에 대회참가를 고사했더라면, 혹은 대회 직전 길을 잃었을 때 참가를 포기했더라면 이와 같은 조그만 성취감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와 나눈 짧지만 깊은 교감마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내년, 혹은 내후년이 되더라도 국내는 물론 해외 시합에 다시 한번 출전해볼 생각이며, 탐방기를 씀으로서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바도 이것이다. 매번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대회까지 나가 우승하는 대단한 선수들도 있지만, 나와 같은 일반 생활체육인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출전해 나름에 최선을 다하고, 얼마든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매사에 소극적인 나에게 이는 소중한 깨달음이었으며, 또한 운동을 함으로써 얻은 수많은 소중한 것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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