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크5=성우창 칼럼니스트] 11월 9일 전라남도 여수에서 열린 로드FC 56번째 대회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해 전체적으로 대회 수준이 올라갔다는 로드FC의 대회들 중에서도, 이번 전남 여수 흥행은 꽤 준수한 경기들을 보였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모든 선수가 열심히 싸웠으며, 직관 온 관중들만이 아니라 모니터 너머 시청자들에게도 그 열의가 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개중 필자가 특별히 인상 깊었던 매치들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코멘트로 남기고자 한다.
권아솔 vs 샤밀 자브로프
매 흥행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만들며 개중에는 대회사가 흥행을 위해 인위적으로 끌어다 만든 스토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권아솔(33, 프리)과 샤밀 자브로프(35, 러시아)의 경기는 지난 첫 칼럼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꽤 특별한, 라이트급 100만 불 토너먼트의 후일담 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시합 양상 자체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1라운드 중반까지 이어진 탐색전이 끝난 후부터 3라운드까지 권아솔은 내내 샤밀 자브로프의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컨트롤에 특별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판정패했다. 바닥에 깔린 권아솔의 표정은 2라운드부터 체념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시합 후 인터뷰와 표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샤밀 자브로프에게 그리 고된 경기는 아닌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권아솔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권아솔답지 않은 지난 만수르 전의 어색한 파이팅 스타일과는 다르게, 이번엔 콤비네이션 타격가라는 자신의 장점을 확실히 살리려 적극적으로 견제를 내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대 샤밀 전략으로 선택한 끝없는 앞차기를 통해 테이크다운 거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모습과 미들킥, 로우킥의 사용은 그가 킥커로의 전업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이 같은 전략이 전혀 통하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못한 것, 특히 철창에 기댄 그라운드 탈출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 모습은 앞으로 권아솔이 레슬링에 익숙한 해외 파이터들을 상대로 얼마나 재기할 수 있을지 걱정거리로 남게 되었다. 어느새 서른 중후반의 노장 베테랑 파이터가 얼마나 발전된 기량을 보일지 의문이지만, 적어도 경기 후 자조한 것처럼 자질미달의 파이터가 아님을 스스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
샤밀 자브로프 또한 그라운드 컨트롤은 압도적이었을지언정 결국 끝내기를 내는 결정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것이 파운딩이든 서브미션이든, 권아솔의 필사적인 방어에 샤밀의 뜻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 후 권 선수의 어깨 부상 소식이 알려졌다. 빠른 쾌유를 빈다.
김민우 vs 장익환
주짓수에 상당한 강점이 있는 챔피언 김민우(26, 모아이짐)와 타격의 화려한 기술과 경험을 보유한 도전자 장익환(32, 팀파시)의 대결. 각자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양상이 보이리라 생각했지만, 1라운드 킥 캐치 테이크다운이 실패한 뒤로 오히려 챔피언 김민우가 타격에서 맞불을 놓는 양상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그 타격에서 장익환을 이겼다.
킥이 드문드문 나오긴 했으나 결국 이 매치는 종합격투기식 복싱시합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래도 1라운드에 장익환의 얼굴에 커팅이 난 데서부터 승부가 갈렸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몸을 웅크리고 카운터를 노리는 가운데 벨트를 지키는 챔프는 여유로운 운영을 보였으며, 뺏어야 하는 처지인 도전자의 무에타이 킥은 아무런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일방적인 양상은 아니었지만 팬 대부분 김민우의 우세을 점쳤음에도 심판이 정규 라운드 직후 판정을 내지 않고 연장전을 선언한 것은 의외다.
김은수 vs 황인수
황인수(25, 프리)가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국내 대회 최고의 핀포인트 타격가라 생각하는데, 1라운드 3분대에서 잽으로 김은수의 턱을 잡아놓고 눈보다 빠른 훅으로 결정짓는 모습은 우리가 기대했던 황인수의 모습 그대로다. 수많은 입식격투기 및 종합격투기 전적으로 타격거리 싸움에 이골이 난 김은수(36, 위너스멀티짐)가 다운 직전 철창에 몰리며 원투 거리를 내준 모습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노장 김은수도 불붙은 후배의 공세에 밀리지 않으며 길었던 경기 텀에 비해 기대할 수 있는 훌륭한 경기를 보여줬다. 특히 본인의 체육관, 그것도 유소년반까지 운영하며 이번 시합을 완벽히 준비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경기 후 백스테이지에서 쾌활하게 황인수 선수에 말을 걸며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은 모범적인 선배 파이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지난번 초살 패배와 뒤이은 논란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황인수지만 이번 멋진 복귀로 다시 로드 미들급 타이틀 전선을 혼란에 빠뜨릴 예정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대회 전 황 선수가 팀 매드에서 나와 무소속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팀 매드에서 한솥밥을 먹은 고석현과 윤창민이 그의 세컨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압구정 팀 매드 김동현 관장도 최근 황인수 선수 인스타그램에 따뜻한 댓글을 남긴 만큼 모두가 걱정할 만한 큰 불화는 없는 것 같다.
이은정 vs 박지수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평의 여성부 경기지만 로드 여성부 최단 초살 KO가 박지수(19, 두잇멀티짐)의 손에서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난타전에서 제대로 자기 거리를 잡고 정석적인 원투와 킥으로 받아친 박지수의 타격에 결국 이은정(25, 팀피시니)이 무릎을 꿇었다.
이은정 선수의 패착에 의한 졸전이라 볼 수 있지만 역시 박지수의 침착한 타격 스킬과 콤비네이션이 돋보였고, 특히 본 매치가 로드 메인이벤트가 아닌 영건스 시합이었다는 점에서 여성 격투기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만하다고 본다.
오일학 vs 이호준
개인적으로 로드 무제한급 매치를 좋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명백히 함량 미달인 선수들이 속해있으며, 로드 비판의 주요 논지가 되는 이슈 몰이용 서커스 매치가 숱하게 열렸던 체급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명 ‘무고통 파이터’ 이호준(30, 팀파시)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시합만큼은 오일학(17, 팀 스트롱울프)과 이호준 모두 좋은 시합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오일학이 거리를 컨트롤하며 치고 들어오면 이호준이 살벌한 훅으로 맞받아치는 양상을 보였다.
이호준은 정타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치 UFC의 데릭 루이스를 연상케 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킬을 자신의 한방을 믿고 전진 훅으로 부딪히는 것으로 메꿔 나갔으며(맷집은 오히려 데릭 루이스보다 나은지도 모르겠다), 타격 맞불을 놓은 오일학이 쉽게 끝내기를 내지 못하고 매번 철창에 몰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만 경기 중 체형을 감당하지 못해 흘러내린 트렁크를 심판이 올려줘야 하는 모습은 팬들이 더 이상 격투기시합에서 기대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오일학은 로드 FC 무제한급 수위에서 꼽힐 만한 정돈된 타격, 날렵한 스텝으로 정타를 벌어갔으며, 결과대로 주심은 그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좋은 조건의 피지컬로 체급 내 기대주라 꼽을 만 하지만 비교우위의 기술을 보유하고도 피니시나 압도적 판정승을 내지 못한 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레슬링만큼은 오일학에게 남겨진 숙제로 보인다.
많은 매치 중에서 단 5경기만을 꼽았지만 모든 선수가 훌륭한 시합을 보였으며, 이번 대회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그 열의가 여실히 느껴진다. 이정영에 도전을 신청한 김세영, 재일교포 김성오, 압도적 KO의 엔히케 시게모토, 화려한 입식 전적을 기반으로 로드 첫 승리를 거둔 박하정 등 다른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도 다음 기회에 다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올해 단 한 차례 남겨놓은 로드의 마지막 대회에서도 이를 넘어서는 명경기가 쏟아지길 팬으로서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