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크5=유하람 기자] 10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UFC 234는 처음부터 끝까지 밍밍했다. 메인이벤트 미들급 타이틀전이 당일 취소돼 김새고 시작했고, 주요 대진은 그저 그런 경기가 펼쳐졌다. 자국 챔피언과 UFC다운 스케일을 기대했을 호주 팬에게 괜스레 미안해지는 대회였다.
[미들급] #6 이스라엘 아데산야 vs #15 앤더슨 실바
"늙은 전설과 기대 이하의 신성" - 댄스배틀은 그만 보고 싶습니다, 실바씨 평점 : ★★
앤더슨 실바(43, 브라질)가 경기력이 심각해진지는 꽤 오래 됐다. 크리스 와이드먼 2연전 이후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선수가 됐다. 오펜스 레슬링은 원래 없었고 정강이 골절 이후 킥은 봉쇄됐으며 필승전략이었던 도발 후 카운터 펀치는 안 들어가면 그만인 잡기로 전락했다. 마지막 남은 필살기인 원거리 스나이핑 펀치를 어떻게든 써먹으려 댄스에 가까운 도발을 시전하지만 선수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그저 찔끔찔끔 포인트만 따면 이길 수 있는 실바에게 모험수를 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스라엘 아데산야(29, 나이지리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아는 대로 경기를 이행했다. 적절히 댄스배틀에 응해주며 야금야금 점수만 따며 승리를 가져갔다. 타격가의 자존심인지 겪어보지 못한 리듬에 당황한 탓인지 실바의 타격전에 응해주다 몇 차례 저격당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지지는 않았다. 비록 경기력은 저질이었고 그나마 흥을 돋우던 댄스 배틀도 후반 들어서는 잠잠해졌지만.
늙고 큰 부상까지 입은 베테랑이 분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더구나 막강한 신예와 접전을 펼치며 경기 후엔 맞절까지 한다면 그보다 훈훈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경기 후에 커뮤니티에서 실바에게 쏟아진 호평은 안 그래도 유쾌하지 못한 뒷맛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약물을 두 번이나 걸리고도 결백을 주장하며 경기력마저도 처참한 실바가 아름답게 도전하는 전설로 포장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과연 종합격투기에 정의를 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라이트급] 란도 바나타 vs 마르코스 로스
"이기긴 했다" - 생존엔 성공한 바나타 평점 : ★★
란도 바나타(26, 미국)만큼 옥타곤에서 확실한 임팩트를 남긴 선수는 많지 않다. 당시 완전 무명이었던 바나타는 대체출전으로 옥타곤에 입성, 체급 최강자 중 하나로 꼽히는 토니 퍼거슨과 혈전을 벌였다. 얼굴도 모르는 선수가 챔피언급 강자를 KO 직전까지 몰고 가는 모습에 전 세계 팬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나타는 가장 각광받은 직후 급격한 하락세를 겪었다. 공격일변도 스타일은 박수만 받을 뿐 승리를 안겨주지는 못했다. 최근 전적 2무 2패. 꼬박 2년 2개월 동안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그래도 강렬한 모습을 기억하는 주최측은 그를 계속 중용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어부지리로나마 준메인이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쯤 되자 일단은 이겨야 하는 상황이 됐고 그 바나타도 '안전빵'을 선택했다. 마르코스 로스(32, 브라질)를 상대로 평소의 공격성을 죽이고 레슬링을 앞세운 상위 압박으로 1라운드 4분 55초 기무라 승리를 거뒀다. 이렇게 생존한 선수가 스타일을 잃어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바나타라면, 일단은 지켜봐야할 듯하다.
[밴텀급] #15 하니 야히야 vs 리키 시몬
"가능성만 보여준 시몬, 베테랑의 저력을 보여준 야히야 - 특별해지려다 만 경기 평점 : ★★
3경기 밴텀급 매치에서는 레슬라이커 스타일의 리키 시몬(26, 미국)이 랭킹 15위 하니 야히야(34, 브라질)를 꺾었다. 주짓수가 강한 상대에게 그라운드는 철저히 피하는 전략으로 시몬은 3라운드 종료 3-0 판정승을 거뒀다. 초반에는 시몬의 레슬링과 타격능력이 눈에 띄었고, 후반 갈수록 야히야의 노련한 추격전이 볼 만했다. 다만 판정은 다소 아쉬웠다. 한 주심이 채점한 대로 시몬에게 30-25가 나올 경기는 전혀 아니었다.
[여성 플라이급] #14 몬타나 델 라 로사 vs 나디아 카심
"왜 이래 난 실력파야" - 실력차만 확인한 '미녀 대결' 평점 : ★★☆
외모로 주목받는다는 게 본인 주가에는 좋을지 몰라도 선수로서는 사실 자존심 상해야 할 일이다. 실력이 외모만큼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뜻이니 말이다. 몬타나 델 라 로사(23, 미국)가 이 점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미녀 파이터' 프레임을 깨버리는 데 성공했다. 풋내기에겐 주짓수면 중분하다는 듯 나데야 카심(23, 호주)를 그래플링만으로 요리해버렸다.
[라이트헤비급] 샘 앨비 vs 짐 크루트
"앨비씨, 억울해하지 마세요" - 과욕이 부른 참사 평점 : ★★☆
오프닝매치는 아마추어스러운 장면아 자주 연출됐다. 짐 크루트(22, 호주)는 마크 헌트식 쿨가이 세레머니로 다운을 따놓고도 경기를 그르칠 뻔했다. 샘 앨비(32, 미국)는 무리한 전진으로 본인의 장기인 카운터를 맞고 쓰러졌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말린 심판을 탓했다. 경기는 화끈했지만 다소 우스운 부분도 있었다.
총평
"싱거운 맛" - 김 새고 설익고 평점 : ★☆
단언컨대 이번 호주 대회는 2019년 UFC 전체 대회 중 하위 10% 안에는 든다. 앞으로 열릴 대회를 포함해서 말이다. 김새고 시작해서 뜨뜻미지근한 경기의 향연으로 마무리되기까지. 어떻게 칭찬할 구석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나마 본국 파이터 짐 크루트가 확실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정도가 전부다. 그 이상 할 말이 없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UFC 234 경기 결과 – 2019년 2월 10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
[미들급] #6 이스라엘 아데산야 vs #15 앤더슨 실바 – 이스라엘 아데산야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라이트급] 란도 바나타 vs 마르코스 로스 – 란도 바나타 1라운드 4분 55초 서브미션승(기무라)
[밴텀급] #15 하니 야히야 vs 리키 시몬 – 리키 시몬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여성 플라이급] #14 몬타나 델 라 로사 vs 나디아 카심 – 몬타나 델 라 로사 2라운드 2분 37초 서브미션승(트라이앵글암바)
[라이트헤비급] 샘 앨비 vs 짐 크루트 – 짐 크루트 1라운드 2분 49초 TKO승(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