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칼럼] 패배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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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정성욱 기자

[랭크5=정성훈 칼럼니스트] 지난주 열린 문디알(월드 주짓수 챔피언십)에서 10회 월드 챔피언 기록을 갖고 있는 압도적인 챔피언 브루노 말파시니가 마이키 무스메시에게 준결승에서 패했다. 2013년 카이오 테라에게 포인트로 패한 이후 6년 만의 패배였다. 문득 마이키 무스메치가 어린 나이에 벌써 3번째 월드 챔피언이 된 것보다도, 거의 10년의 세월을 최강자의 세계에서 군림했던 브루노 말파시니가 무슨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결승에서 불과 십여 초 만의 서브미션으로 우승한 무스메치. 공교롭게도 브루노 말파시니의 현재의 입장이 바로 과거 브루노 말파시니가 펠리페 코스타에게 승리를 거두고 신구를 교체하던 그 시기의 두 사람과 묘하게 교차한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펠리페 코스타는 말파시니에게 처음 승리한 이후 단 한차례도 말파시니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계속해서 서브미션을 허용하며 더욱 격차는 벌어져만 갔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그것도 라이벌로 불리던 카이오 테라의 제자인 무스메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활약해 나갈 가능성이 크지만, 말파시니의 나이는 어느덧 한국 나이로 34세, 점차 노장의 반열로 다가서고 있다.

이번 경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말파시니의 태도로 문제를 삼았다. 악수를 거절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다시 한번 마이키가 손을 내밀었을 때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하다가 머리를 쓰다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이는 몇 번을 다시 봐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다만 뭔가 알 수 없는 브루노의 뻘쭘한 표정에서 손을 내밀고 난 후에 “아차 내가 지금 악수를 받아주면 안 되지” 같은 묘한 느낌을 읽을 수는 있었다.

이번 글 제목의 “패배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읽어보면 마치 우리가 패배를 했을 때 취해야 하는 자세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나와 상대의 패배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주짓수는 승패가 갈리는 경쟁의 운동이다. 특별한 이벤트 매치가 아닌 이상 토너먼트로 싸우게 되며, 매트에 오르는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매트에서 다시 내려오는 순간 한 명은 승자, 한 명은 패자가 된다.

패배의 기분이라는 것은 복잡 미묘하다. 알 수 없는 해방감과 동시에 허무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아쉬움이 남아 아직 잘 떨어지지도 않는 손가락의 테이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하물며 브루노의 심정은 어땠을까? 내 생각에 브루노는 분명히 이번에도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출전했을 것이며, 비록 마이키가 라이트 페더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본인의 왕국인 루스터 체급에서조차 그 강력함을 발휘할 것이라고는 상상했을 것 같지 않다. (특히 작년 결승까지 나온 브루노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브루노에게는 지난 10년의 군림을 되돌아볼 만한 충격적인 패배의 순간이었고,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의 폭풍에 휩싸여 있을 때 마이키는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일본의 에이스 하시모토 토모유키를 제압하는 말파시니

마이키가 손을 내밀었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최선을 다한 상대에게 경의를 표시할 수 있다. 다만 굳이 그 타이밍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관중들의 야유를 유도했어야만 하는가 하는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개입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므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쉬운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트에 오른 나도, 상대도 패배할 수 있다. 그러나 매트에서 내가 승리했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워준 상대가 없었더라면 그런 승리의 기쁨은 있을 수 없다. 매트 위에서 마지막 악수를 청하며 다시 한 번 상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자.

pivada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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