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앤 뮤직] ‘보스’가 되기 위해 지불한 8년, 그리고 더스틴 포이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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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스틴 포이리에 인스타그램

[랭크5, 하야로비 공동] 마이클 비스핑이 챔피언이 되던 때를 기억하는가. 옥타곤을 처음 밟은 뒤 장장 10년을 살아남아 은퇴를 앞둔 순간 끝내 벨트를 차지하는 영화 같은 이야기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만만치 않게 오래 기다려 정상에 오른 파이터가 하나 있다. 바로 14일 라이트급 잠정 챔피언에 오른 더스틴 포이리에(30, 미국)가 그 주인공이다.

젊고 강한 이미지에 가려졌을 뿐 포이리에 역시 수난과 기다림으로 얼룩진 커리어를 걸었다. 타이틀전 문턱에서 넘어진 횟수가 4번이며 햇수로 따지면 8년을 돌아왔다. 워낙 어릴 때 데뷔해 베테랑 대열에 들어선 지금도 서른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나이에선 짐작할 수 없는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보스가 되기 위한 비용을 지불했다(Paid the cost to be the boss)’는 입장곡을 고를 때만 해도 그 값이 그렇게 비쌀 줄은 몰랐으리라.

2010년 포이리에는 7승 무패의 전적으로 ‘경량급 왕국’이라 불리던 WEC에 입성한다. 이후 WEC가 UFC에 인수합병됨에 따라 자연스레 옥타곤을 밟게 됐다. 그때가 2011년, 프랭키 에드가가 BJ펜을 격침하고 새 시대를 열고 있는 시점이었다. 얼마나 옛날인지 감이 안 온다면 조제 알도가 UFC 챔피언이 된 시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옥타곤 입성 후 포이리에는 4연승을 기록하며 빠르게 정상을 향해 치고 올라간다. 특히 마지막 두 경기에서는 체급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던 파블로 가르자와 UFC에 갓 들어온 영건 맥스 할로웨이를 서브미션으로 간단히 잡아버린다. 체급수준 향상으로 정석적인 주짓수가 약세를 보이는 시대였지만 포이리에는 깔끔한 트랜지션을 바탕으로 서브미션 결정력이 있는 몇 안 되는 특급 그래플러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이제 포이리에는 랭킹 5위권 문턱까지 오르며 한 번만 더 이기면 타이틀전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상황이었다. 이때 ‘갑툭튀’해 포이리에 덜미를 잡은 선수가 다름아닌 정찬성이었다. 객관적 전력에서 훨씬 앞선다고 평가 받던 포이리에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완봉을 당한 끝에 장기인 서브미션으로 패했고,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먼 길을 돌아가게 된다.

TUF 우승자를 1라운드 서브미션으로 낚아챘지만 곧바로 컨디션 난조로 컵 스완슨에게 판정패, 이후 KO머신으로 돌변했지만 이번엔 한창 주가를 올리던 코너 맥그리거에게 106초 만에 나가떨어진다. 곧바로 라이트급으로 전향해 다시 4연승을 달리지만 이번엔 전후로 5전 전패를 기록하던 마이클 존슨에게 뜬금 없이 95초 KO패를 당한다. 이때가 벌써 2016년, 이미 옥타곤에서 5년을 허비한 뒤였다.

이쯤되자 포이리에를 향한 기대는 한 풀 꺾였다. 기술과 투지가 좋은 명승부 제조기, 하지만 결국 챔피언은 되지 못하는 선수. A급은 되지만 절대 S급은 되지 못한다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다. 저스틴 게이치와 에디 알바레즈를 연달아 KO시켰을 때조차 이런 평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주최측 역시 그에게 타이틀샷을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주체급에서 기회가 없었음은 물론, 네이트 디아즈와 함께 슈퍼라이트급을 신설해 타이틀전을 치르자고 요구했지만 간단히 묵살당했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기회가 찾아온다.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잠정 챔피언 토니 퍼거슨, 랭킹 2위 코너 맥그리거가 나란히 장기간 이탈하면서 라이트급이 무주공산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주최측은 항상 랭킹 5위권에서 버티고 있는 포이리에를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정작 본인은 “내가 왜 타이틀전을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포이리에만큼 자격 있는 선수도 없었다. 그렇게 잠정 타이틀전을 발표됐고 포이리에는 맥스 할로웨이와 다시 만나게 됐다. 7년 만에 마주한 할로웨이는 그 사이 페더급 챔피언이 돼있었다.

1차전과 달리 확실한 언더독으로 평가 받는 상황. 그러나 포이리에는 초반부터 압도적인 타격스킬을 선보이며 25분 간의 혈투 끝에 승리했다. 할로웨이의 좀비 같은 회복력 때문에 위기도 있었지만 적절히 후반에 시간을 끌며 판정까지 견뎌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벨트를 차지한 포이리에는 “꿈이 이뤄졌다. 이 벨트는 이제 내 것이다”라며 승리를 자축했다.

잠시 그가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면, 그는 경쾌한 펑크(Funk) 음악과 함께 등장한다. 곡의 정체는 거의 모든 흑인음악에 영향을 끼친 거장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The Boss’다. 노래에서 브라운은 아주 간단한 문구를 집요하게 반복한다.

“나는 보스가 되기 위한 값을 치렀지
날 봐, 네가 뭘 보는지 알잖아”
“I paid the cost to be the boss
Look at me you know what you see”

포이리에가 챔피언이 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결과론적으로 ‘The Boss’는 더스틴 포이리에라는 파이터를 더할 나위 없이 잘 보여주는 곡이 됐다. ‘쾌남’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시원시원한 파이팅과 반대로, 그가 이끌어온 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WEC 시절부터 하면 장장 10여 년이 걸려 정상에 도달했고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리고 끝내 정상에 도달했다.

포이리에는 분명 비싼 값을 치렀다. 본인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오랜 시간 곁에서 기다려준 아내와 팀원에게 감사부터 표했던 것이리라. 그래도 결국 벨트를 차지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당당히 ‘Boss’로서 위용을 뽐낼 자격을 얻었다. 이제 그가 긴 공백 끝에 돌아오는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까지 꺾고 ‘최종보스’가 될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하자.

격투기 전문 웹진 RANK5, 대중음악 전문웹진 하야로비

* ‘파이트 앤 뮤직’은 종합격투기에서 이 입장곡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 새로운 각도로 대회를 즐기자는 취지에서 대중음악 전문웹진 하야로비에 자문을 받아 진행하는 콜라보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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