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Best & Worst] ③ 옥타곤 역대 최고의 이변 TOP 5

0
현 세대와 마주한 ‘세기말 최강자’ 마크 콜먼 © 마크 콜먼 페이스북

[랭크5=유하람 기자] 종합격투기에 ‘절대’는 없다. 어떤 분야에서도 100%란 없다지만 종합격투기는 그 중에서도 유독 변수가 많은 세계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링 위에서는 결국 한 사람일 뿐이며, 정말 최소한의 제한을 제외하곤 어떤 방식으로든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합격투기는 언더독의 반란, 즉 업셋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편이다. 그 중에서도 UFC엔 유독 믿기지 않는 업셋이 주기적으로 나오곤 했다.

5위. 피트 윌리엄스 vs 마크 콜먼
UFC 17(1998.05.15)
– 피트 윌리엄스 1라운드 12분 38초 KO승(헤드킥)

워낙 오래된 경기라 존재감이 희박한 편이지만, 초기 UFC의 업셋을 꼽자면 이 경기가 빠질 수 없다. 물론 파급력만 놓고 보면 UFC 1의 호이스 그레이시 우승도 있다. 하지만 당시엔 너무 격투기와 디비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잡혀있지 않았던 터라 업셋이라기보단 이종격투기의 기원 같은 의의가 더 큰 편이다. 정말 옥타곤에서 충격을 안긴 최초의(?) 경기는 단연 헤비급 최강 레슬러 마크 콜먼(53, 미국)의 실신이었다.

‘요즘 팬’에게 콜먼은 거의 없는 사람이고, 그 전세대에도 ‘두드려 맞는 아저씨’ 같은 인상이 강한 게 사실이다. 생계형 파이터라 너무 늦게 은퇴했고, 그래서 험한 모습도 많이 보였던 탓이다. 실제로 콜먼이 마지막 불꽃을 태워 프라이드 그랑프리 2000에서 우승할 당시 그는 이미 서른 다섯이었다. 5년 전 은퇴를 선언할 때는 무려 마흔 여덟이었다.

하지만 전성기 콜먼은 ‘저걸 어떻게 이겨’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괴물이었다. 근력과 스피드는 말이 안 될 정도로 뛰어났고, 레슬링 스킬 역시 세계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할 만큼 훌륭했다. 옥타곤에서 그를 마주하는 선수들은 콜먼이 테이크다운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빛의 속도로 들어오는 ‘총알 태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넘겨놓고 팬다’는 그의 단순하지만 강한 격투철학은 ‘그라운드 앤 파운드’라는 하나의 스타일로 정립돼 후대 레슬러에게 정석으로 전수됐다.

그런 콜먼도 97년부터 99년까지 2년에 걸쳐 길고 긴 연패의 늪에 빠지는데, 그 신호탄이 바로 피트 윌리엄스(43, 미국)였다. 직전 경기에서 패하며 UFC 헤비급 타이틀을 빼앗기긴 했지만, 직전까지 6전 전승을 거두며 토너먼트 2회 우승과 정규 디비전 챔피언까지 달성한 콜먼의 실력을 의심하는 선수는 없었다. 재기를 노리는 그의 앞에 선 건 판크라스, 링스 등을 떠돌다 이제 옥타곤에 입성한 피트 윌리엄스였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관객은 UFC에서 본 적도 없는 스물 셋의 어린 선수에게 콜먼이 실신하는 장면에 경악했다. 콜먼은 윌리엄스를 테이크다운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오히려 눌러놓고도 끝내지 못하며 체력만 소진했다. 12분이 지나고 경기가 재개될 때쯤 콜먼은 가드를 올리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었다. 윌리엄스는 콜먼을 과감히 코너로 몰며 압박했고, 서있기도 힘들어하는 콜먼의 턱을 신발 신은 발로 걷어차며 그대로 고꾸라뜨렸다.

이후 두 선수의 행보는 완전히 갈렸다. 콜먼은 일본무대 이적 후 연패를 끊고 6연승을 달리며 다시 한 번 세계 챔피언에 오른 반면, 윌리엄스는 직후 경기부터 패한 끝에 UFC 전적 2승 5패를 추가하고 조용히 은퇴했다. 결국 ‘보통 선수’였던 윌리엄스가 어떻게 전후로 세계 정상에 오른 콜먼을 이렇게 잡아낼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 여담으로 대표사진은 승자의 것을 사용하나, 피트 윌리엄스는 너무 무명에 옛날 사람인 탓에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부득이하게 콜먼 사진으로 대체했다.

32917706_10216098932884787_3701954641680924672_n.jpg
© 티토 오티즈 페이스북

4위. 티토 오티즈 vs 라이언 베이더
UFC 132(2011.07.02)
– 티토 오티즈 1라운드 1분 56초 서브미션 승(길로틴 초크)

‘안진마’라는 말이 있다. 무슨 짓을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아마 라이언 베이더(35, 미국)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12승 1패의 막강한 신성인데 장장 5년 동안 단 1승도 하지 못한 ‘퇴물’에게 질까. 실제로 티토 오티즈(43, 미국)는 2006년 이후 1승 1무 7패를 기록하고 UFC에서 퇴출된다. 이쯤되면 예상하겠지만, 그 단 1승의 제물이 바로 베이더였다.

한때 라이트헤비급의 절대군주로 군림한 티토는 2003년 기점으로 척 리델과 랜디 커투어라는 양대산맥에 밀려난다. 이후 절치부심해 5연승을 기록, 챔피언 리델에게 다시 도전하지만 역시 TKO로 박살이 난다. 체격을 앞세운 그라운드 앤 파운드 밖에 없던 티토는 이후 스타일이 파훼돼며 급격히 내리막을 탄다. 그게 바로 2006년이었고,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겹치며 추락은 더욱 속도가 붙는다.

반면 베이더는 무패의 전적으로 키스 자르딘을 때려잡고 호제리오 노게이라마저 제압하며 주가가 상한선을 달리고 있었다. 당대 최고 신성 자리를 놓고 맞붙은 존 존스에게 길로틴으로 무릎 꿇으며 자존심을 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다음 세대를 짊어질 기둥으로 평가받았다. 존스에게 패하고 복귀전 상대로 오티즈가 확정됐을 때만 해도 “UFC가 베이더 기를 살려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너무 안일했다. 그는 상대를 너무 얕잡아본 나머지 펀치를 낼 때마다 가드를 완전히 내리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아무리 기량이 떨어져도 산전수전 다 겪어본 티토가 그를 놓칠 리가 만무했다. 티토는 때를 노려 달려들었고 베이더가 당황해 손이 엉키는 순간 강력한 라이트 훅을 꽂아넣었다. 나동그라진 베이더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리를 잡으려 몸을 기울이자 티토는 그대로 길로틴 초크를 잡아 탭을 받아냈다. 5년 만의 승리, 그리고 무려 11년 만의 서브미션 승리였다.

어찌 됐든 ‘대세’에 따라 티토는 몰락하고 베이더는 이후에도 상위권에서 경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케이지에 올라선 이상 방심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통쾌한 경기였다.

39810791_10157575286087506_3387177480694530048_n.jpg
© 가브리엘 곤자가 페이스북

3위. 가브리엘 곤자가 vs 미르코 크로캅
UFC 70(2007.04.27)
– 가브리엘 곤자가 1라운드 4분 51초 KO승(헤드킥)

2007년은 격투 세계에 마가 낀 해라고 불린다. 그만큼 이변에 이변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사례를 늘어놓기만 해도 경이로울 정도다.

K-1에서는 제롬 르 벤너가 무명의 사와야시키 준이치에게 다운만 두 번 당하며 판정패했고, 최홍만이 마이티모에게 실신했다. 무사시가 후지모토 유스케에게 하이킥 한 방에 KO되고 수를란 카라예프가 멜빈 맨호프에게 30초 만에 나가떨어졌다.

종합격투기도 다르지 않았다. 프라이드에서는 소쿠주가 대회 데뷔전에서 -2500 대 +1350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배당 차이를 뚫고 세계 랭커 호제리오 노게이라를 23초만에 쓰러뜨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라이트급 랭킹 1위 고미 다카노리가 닉 디아즈에게 뜬금패를 당했으며, 댄 핸더슨은 자격 논란을 딛고 미들급의 절대강자 반다레이 실바를 KO로 꺾는다.  UFC 역시 랜디 커투어가 독재자 팀 실비아에게 완봉승을 거두고 43세에 챔피언에 올랐고, 19승 무패의 디아고 산체스가 갑자기 연패에 빠진다.

이 혼란의 도가니에서도 유독 큰 피해를 본 파이터가 몇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미르코 크로캅(44, 크로아티아)이었다. ‘영원한 2인자’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프라이드 무제한급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크로캅은 돌연 UFC로 이적을 선언한다. 당시 ‘프라이드에는 못 미치는 2부리그’ 정도로 평가 받았던 UFC였기에 헤비급 넘버원 타격가 크로캅이라면 당연히 챔피언에 오르리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다. 데뷔전에서도 무패 신성 에디 산체스를 무난히 제압하며 이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이어 대망의 옥타곤 2차전. 상대 가브리엘 곤자가(39, 브라질)는 UFC 3연승 중이었지만 아직 눈에 띌만큼 대단한 성과를 낸 선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최측은 승자에게 헤비급 타이틀전 직행을 약속했고, 일부에선 “크로캅을 챔피언으로 만들려고 애쓴다”는 원성까지 나왔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크로캅은 거대한 곤자가의 케이지 컨트롤과 그래플링에 힘도 쓰지 못했다. 링에선 레슬러 킬러라 불릴만큼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강한 크로캅이었지만, 케이지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크로캅의 주요 이스케이프 수단이었던 업킥은 UFC에서 금지였고, 대신 그가 겪어본 적 없는 엘보가 상위포지션에서 마구 쏟아졌다. 간신히 간신히 라운드 종료 직전에 일어선 그를 기다리는 건 하이킥이었다. 곤자가는 체력난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크로캅을, 그의 상징과도 같은 하이킥으로 실신시키곤 챔피언 랜디 커투어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이 경기는 앞으로 한참 이어질 프라이드 출신 파이터의 수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우리시오 쇼군, 호드리고 노게이라가 UFC 벨트를 들어올리며 체면을 살리긴 했지만, 프라이드 파이터들은 케이지에서 적응하지 못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다.

1098294_10151822434758729_1048170959_n.jpg
© 맷 세라 페이스북

2위. 맷 세라 vs 조르주 생 피에르
UFC 69(2007.04.07)
– 맷 세라 1라운드 3분 25초 TKO승(펀치)

하지만 옥타곤에서 2007년의 저주를 가장 정통으로 맞은 선수는 다름 아닌 조르주 생 피에르(37, 캐나다)였다. 생 피에르는 가라데 베이스의 화끈한 파이팅에 잘생긴 백인이라는 출신성분으로 주최측의 아낌 없는 사랑을 받았다.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1차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안긴 맷 휴즈를 펀치로 1라운드에 잠재우며 타이틀을 들어올린다. 너무나 압도적인 경기력에 향후 10년은 적수가 없으리라는 극찬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첫 번째 도전자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는 옥타곤 전적 5승 4패로 승률 50%를 간신히 넘기는데다, TUF 베테랑 특집 우승 하나로 타이틀전에 직행해 명분 논란이 들끓었던 맷 세라(44, 미국)였다. 더구나 해당 TUF에서 세라는 팀 생 피에르 소속, 즉 생 피에르의 제자였다. 그러면서 나이는 생피에르보다 7살 많았으니 세라는 신선하지도 않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미운 오리 도전자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지 않았던가. 실력도 체격도 체력도 모두 우위였던 생 피에르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허술한 운영으로 자충수를 둔다. 큰 킥을 남발해 밸런스와 집중력 모두 흐트러진 생 피에르는 돌주먹 한 방 밖에 없는 세라에게 그 한 방을 허용하고 나가떨어진다. 다운된 후에도 그 뛰어난 그래플링으로 그라운드에서 버티며 회복한다면 다음을 노릴 수도 있었으나, 생 피에르는 굳이 꾸역꾸역 일어나다 더 큰 후속타를 허용하고 쓰러진다. UFC 사상 최약체 챔피언은 그렇게 탄생했다.

모두가 아는 대로, 생 피에르는 곧바로 돌아와 벨트를 되찾았다. 전설적인 ‘GSP표 수면제’ 신화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생 피에르는 2017년 두 번째 은퇴까지 13승 무패, 웰터급 타이틀 9차 방어, 사상 네 번째 UFC 두 체급 정복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는다.

반면 세라는 이후에도 승과 패가 비슷한 전적을 유지하다 은퇴, 코치로 전향해 또다른 이변을 주도한다. 그의 제자가 바로 크리스 와이드먼, 앤더슨 실바를 끌어내린 사나이다.

1077092_639365462740134_707902176_o-1024x628.jpg
© 마이클 비스핑 페이스북

1위. 마이클 비스핑 vs 루크 락홀드
UFC 199(2016.06.04)
– 마이클 비스핑 1라운드 3분 36초 KO승

맷 세라가 갱신한 ‘최약체 챔피언’ 타이틀은 무려 9년이 지난 후에야 다른 이가 차지한다. 동시대부터 활약하며 끈질기게 랭킹 10위권에 버티던 마이클 비스핑(39, 잉글랜드)이 그 주인공이다.

비스핑은 커리어 내내 참 많은 수난을 겪은 선수다. 30승 9패라는 훌륭한 전적에도 워낙 질 때 중요한 고비에서 화려하게 나가떨어져 ‘양민학살 전문’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했다. 그를 꺾은 선수 절반은 약물이 적발되거나 TRT 복용자였고, 특히 비토 벨포트는 한창 약물로 몸 상태가 물이 올랐을 때 비스핑을 상대해 그의 각막을 날려버리기까지 한다. 단 한 번의 부상이탈도 없이 매년 두 세경기는 꼬박꼬박 치른 성실한 선수지만 밉상 이미지가 너무 강해 저평가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나.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2006년 옥타곤 데뷔 후 꼬박 10년을 버티고 버틴 그는 끝내 인생목표였던 타이틀샷을 받아낸다. 물론 여론은 비관적이었다. 일단 마지막 경기였던 앤더슨 실바 전은 판정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챔피언 루크 락홀드(34, 미국)는 이미 비스핑을 농락에 가깝게 압살해버린 적이 있었다. 더구나 비스핑은 원래 타이틀 도전자 호날도 자카레가 부상이탈하자 2주 준비하고 급하게 들어온 상황. 챔피언 락홀드는 “비스핑은 내 수준도 아니다”라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그러나 락홀드는 비스핑을 너무 우습게 본 나머지 압도적인 리치를 전혀 살리지 않고 상대의 펀칭거리에 걸어들어갔다. 반면 벨트 하나만을 위해 10년을 기다린 비스핑은 날이 바짝 서있었고, 거리가 무너진 틈을 타 그대로 락홀드의 턱을 돌려버린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락홀드는 결과 발표 순간까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비스핑은 오래 가지 못했고 아랫 체급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에게 벨트를 뺐기는 굴욕을 당했지만, 최전성기에 한 번 꺾인 락홀드 역시 다시는 타이틀 근처에 가기 어려운 처지가 돼버렸다.

덤으로…

이변은 이뿐만이 아니다. BJ 펜 vs 맷 휴즈 1차전, TJ 딜라쇼 vs 헤난 바라오 1차전, 론다 로우지 vs 홀리 홈 등 기라성 같은 업셋은 충분히 많다. 그러나 이 리스트에 선정된 경기들은 그중에서도, 객관적 기량과 세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린 케이스였다. 이길만한 사람을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당신이 도박사라면 업셋은 지극히 혐오스러우리라. 하지만 이런 이변이 있기에 종합격투기가 더 재밌는 것 아닐까.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댓글 남기기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세요
이름을 적어주세요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