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C19] 리뷰 : 승자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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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5=유하람 기자] 16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TFC19는 긴장감이 큰 대회가 아니었다. 접전이나 역전극보다는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찍어누르는 경기가 많았고, 또 그 과정이 상당히 화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TFC19는 승부보단 퍼포먼스에 중심을 두고 감상하기 좋은 대회였다. 특히 메인이벤트에서 날카로운 스트레이트 운영으로 승리한 김재웅은 한층 진화한 ‘투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경기를 마무리짓는 김재웅 © 송광빈 포토그래퍼

메인이벤트 : 김재웅 vs 김명구

“투신의 진화”
– 너무나 완벽했던 김재웅
평점 : ★★★★

압승은 이렇게. 이날 김재웅의 퍼포먼스는 아주 모범적이었다.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았으며, 훌륭한 테크닉에 임팩트까지 갖췄다. 김재웅 한 명만 놓고 보자면 만점까지 줄 수 있는 경기였다.

김재웅은 ‘투신’이라는 별명에 맞게 전쟁 같은 싸움을 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특히 지난 5월 치른 정한국과의 일전은 3라운드 종료까지 서로의 영혼을 갈아넣은 희대의 명승부로 꼽힌다. 정윤하 격투 칼럼니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TFC가 말하던 철학이 그대로 묻어난 경기”였다.

하지만 이 경기 이후 느낀 점이 있었던 것일까. 김재웅은 더 이상 상대에게 맞아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듯했다. 김명구는 싸우고 싶어했지만 김재웅은 정확한 거리에서 사각을 만들며 날카로운 잽과 뒷손 스트레이트로 그의 턱만 찝어냈다. 1라운드까진 김명구가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김재웅은 2라운드까지 그가 생존하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결국 공이 울린 지 23초 만에 김명구는 무너졌다.

김명구가 못한 게 아니었다. 그저 김재웅이 너무 강했을 뿐이었다. 직전 경기와 비교했을 때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원래 강한 선수였지만 한 차례 큰 고비를 넘기고 나서 영리하게 싸우는 법을 체득한 듯했다.

돌고 돌아 김재웅에겐 그렇게 기다리던 타이틀전만 남았다. 과연 ‘진화한 투신’ 김재웅이 TFC 정상에 설 수 있을지, 진심으로 기대가 된다.

승리한 서예담 ©송광빈 포토그래퍼

준 메인이벤트 : 서예담 vs 서지연

“먼 길을 돌아온 서지연, 더 먼 길로 돌아가다”
– 질 생각이 없었던 서예담
평점 : ★★★

모르긴 몰라도 서지연이 받는 기대감은 꽤 컸다.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맞는 패기, 그리고 빠른 성장세까지. 그런 그가 부지런히 승수를 쌓으며 URCC 챔피언 벨트까지 가져온 지금 TFC 여성 스트로급 타이틀전의 한 자리는 서지연이 되리라 예상한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이 중요한 시기에 천적관계를 형성해버렸다.

서지연의 가장 근본적인 약점은 힘이다. 신체능력 자체가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 중에서도 근력이 특히 약한 편이다. 반면 서예담은 동체급 내에서 힘과 레슬링이 꽤 좋은 편으로, 1차전에서도 이 상성을 십분 활용하며 TKO로 서지연을 제압했다.

이후 서지연은 종합격투기 4연승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고, 오히려 서예담은 2연패에 빠졌다. 입지가 역전된 상황. 서지연이 옛 패배를 돌려준다면 지금이야말로 적기였다. 그러나 상성은 기세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서예담은 시작부터 클린치 컨트롤로 상대를 묶어놨고, 서지연은 점차 무너지며 그라운드로 끌려들어갔다. 반격할 틈도 없이 서예담은 차분히 자기 포지션을 만들어나가며 결국 리어네이키드초크로 탭을 받아냈다. 서지연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서예담이라는 체급 내 굵직한 강자가 돌아온 것은 물론 반갑다. 하지만 이제 막 실력과 인기를 모두 갖춘 스타가 되려고 하는 서지연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릎 꿇은 건 너무나 아쉽다. 그런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경기였다.

황지호를 무너뜨리는 윌 초프 © 송광빈 포토그래퍼

3경기 : 황지호 vs 윌 초프

“관록의 힘”
–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윌 초프
평점 : ★★★☆

말이 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윌 초프는 정말 열심히 사는 파이터다. 어떤 운동선수가 게으르게 살겠냐만 윌 초프는 그 중에서도 부지런히 경기를 뛰며 다른 파이터보다 두 배 세 배 많은 전적을 쌓아가고 있다. 덕분에 그는 스물 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도합 백 전이 넘는 엄청난 경험치를 쌓았다.

그리고 이번 경기는 이 젊은 베테랑이 왜 무서운지 제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초반 훨씬 작은 키와 팔로도 끊임없이 파고드는 황지호에게 윌 초프는 상당히 고전했다. 2라운드 초반엔 안면이 찢어지는 부상도 당했다. 하지만 팔팔한 신체는 뎀지를 정면으로 견뎌내며 시간을 벌었고, 방대한 데이터가 쌓인 머리에서는 탈출구를 찾았다. 계산을 마친 윌 초프는 2라운드 중후반부터 맞더라도 전진하고 전진하며 진흙탕 싸움을 유도했다.

전략은 유효했다. 윌 초프는 황지호의 체력난을 포착하고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황지호가 레인지 파이팅을 원하자 긴 리치의 이점을 포기하고 클린치로 붙어 니킥과 길로틴, 더티복싱을 섞어가며 괴롭혔다. 압박에 질린 황지호는 천천히 무너져내렸고, 3라운드 가서는 거의 완전히 집중력을 잃으며 백포지션과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헌납했다.

메인카드가 모조리 일방적인 양상으로 흘러간 가운데 홀로 역전승을 거둔 원동력은 역시 경험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윌 초프는 “워낙 많이 싸웠다보니 경기를 하면서 상대 약점이 보이더라”며 여유를 보였다. 역시 큰 임팩트는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보는 사람을 즐겁게하는 윌 초프였다.

이진세를 끝내려 달려드는 유수영 © 송광빈 포토그래퍼

2경기 유수영 vs 이진세

“거만해도 좋아”
– 유수영, 입을 받쳐주는 실력
평점 : ★★★

실력이 없는데 입을 놀리면 객기지만, 잘 싸우면서 큰소리 치면 그건 스타성이다. 유수영은 이날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로블로로 감점을 받고도 2-0 판정이 나올 만큼 그저 압도적으로, 또 차분하게 상대를 굴리고 굴렸다. 곽관호 이후 TFC 최초 5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건 덤이다. 이진세는 타격을 섞어주는 척 그라운드로 데리고 가는 유수영의 전략을 알고도 당했다. 내용 자체보단 이제 벨트를 눈앞에 둔 유수영에 과연 타이틀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져서 흥미로운 경기였다.

데뷔전에서 초살승을 거둔 김영준 © 송광빈 포토그래퍼

1경기 : 여승민 vs 김영준

“괴물 레슬러 등장! 그런데…”
– 너무나 허무했던 여승민
평점 : ★★☆

국대 레슬러가 종합격투기에 나오면 당연히 테이크다운이 강력할 수밖에 없다. 때론 알고도 당할만큼. 김영준은 그 뛰어난 레슬링을 종합격투기에도 잘 녹여낸 듯 훌륭한 타격 페인트 동작과 서브미션 연계를 선보였다. 경기 종료까지 겨우 97초. 김영준은 땀도 나지 않은 채 승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강력한 뉴페이스 등장이 반가운 만큼 여승민의 손쉬운 패배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여승민은 분명 잠재력이 있는 선수다. ‘쇼군’이라는 별명처럼 브라질 타격가를 연상시키는 본능적인 타격감, 그리고 단단함은 확실히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하지만 지난 경기에서 불의의 부상으로 TKO 패하고 이번 경기에서도 허망하게 무너지며 단단히 꼬였다.

정말 그만큼 김영준이 상식을 초월할만큼 강한 것인지, 아니면 여승민이 이번에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지는 모른다. 너무 빨리 끝난 경기인 만큼 앞으로 두 선수를 지켜봐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할 경기일 듯하다.

총평

“승자독식”
평점 : ★★★☆

TFC는 지향하는 색이 상당히 분명한 단체다. 지루한 운영을 배척하고 확실한 퍼포먼스를 추구한다. 이번 대회는 이전처럼 치고 받는 격전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김재웅을 필두로 ‘확실하게 이기는’ 경기력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또 다른 의미로 TFC다웠다 하겠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승 정도의 이벤트였기에 아주 강렬하게 의미 있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경기 자체로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보게되는 깔끔한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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