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비자-세난, 그리고 정찬성을 위한 변명

0
입장하는 정찬성 (Photo by Josh Hedges/Zuffa LLC/Zuffa LLC via Getty Images)

[랭크5=정성욱 편집장] 1년 9개월 만에 돌아온 정찬성(31, 코리안좀비MMA)이 야이르 로드리게스(26, 맥시코)에게 패배했다. 경기 종료 1초 전에 야이르의 팔꿈치가 정찬성의 턱에 적중하면서 KO 패했다. 그전까지 판정은 정찬성의 승리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코리안 좀비는 야이르의 공격을 견뎌내며 정확한 잽과 스트레이트를 적중시켰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라는 책이 있다.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 등으로 나뉘어 있고 열전은 여러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비(흔히 한비자로 알려진)의 열전에는 그의 저서 한비자의 세난-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의 한 부분이 실려 있다.

“예전에 미자하(彌子瑕)가 위(衛)나라 군주의 사랑을 받았다. 위나라 법에 군주가 타는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을 자르는 월형(刖刑)에 처했다. 한 번은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났다. 누군가 이를 듣고는 밤에 미자하에게 알렸다. 미자하는 군주의 명이라 속이고 군주의 마차를 타고 나갔다.

군주가 이를 듣고도 ‘효성스럽구나! 어머니를 위해 월형을 감수하다니’라며 미자하를 어질다고 했다. 군주와 과수원을 거닐다가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고는 달아서 다 먹지 않고 군주에게 바쳤다. 군주는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기 입은 생각하지 않고 나를 생각하다니’라고 했다.

미자하의 미모가 시들어 사랑도 식었을 때 군주에게 죄를 지었다. 군주는 ‘전에 속이고 내 마차를 몰고 나갔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지’라고 했다.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 달라진 것이 없는데 전에는 어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죄를 얻었다. 이는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비자 [韓非子]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기사 댓글을 확인해봤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를 했을 만큼 관심을 받았던 경기이기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응원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지만 의미 없는 악플이 더 눈에 띄었다. 슬펐다. 정찬성의 경기가 끝이 나고 SNS에서 본 어느 프로 선수의 한 마디는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프로는 정말 힘든 듯… 평가받고 조롱당하고 그것 때문에 큰돈 버는 것이겠지만 역시나 그딴 건 가면 갈수록 정 떨어 진다.”

한국만 유독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은 패배한 사람에게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다. 온갖 단어를 동원해 악플을 단다. 선수들의 피와 땀이 어린 노력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기에서 지면 그저 대역죄인이다.

프로 격투기 선수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먹는 것, 입는 것, 행동하는 것, 훈련하는 것을 일일이 체크하고 조심하고 노력하여 케이지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려 힘쓴다.

오늘 정찬성도 그랬다. 코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눈 주위가 빨갛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전진했다. 그리곤 야이르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1초가 남은 마지막 순간까지 야이르의 얼굴에 펀치를 꽂기 위해 돌격했다. 야이르의 퍼포먼스에도 응해줬다. 그깟 퍼포먼스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해서 공격해도 된다. 허나 그는 UFC 25주년 메인이벤트를 메인답게 만들기 위해 퍼포먼스에 응했다. 프로 파이터로서 몫을 한 셈이다.

그런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냥 쉽게 키보드 몇 번 두드리면 쓸 수 있다고 쉽게 내지르고 있다.

앞서 프로 파이터가 이야기한 것처럼 ‘평가받고 조롱당하는 비용’이 파이트머니에 포함되었다고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이렇게 패배한 선수에 대한 조롱과 질시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선수들은 위축된다. 다음 경기를 꿈꾸고 재기하려는 선수의 의지를 꺾는다.

댓글을 읽으면서 속으로 기원했다. 설마 이 악플 가운데 격투기를 즐겨보는, 즉 ‘격투기 팬’들은 없겠지? 아니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저 격투기를 모르는 사람들의 ‘배설’이었으면 하는 기원.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만약 격투기 팬이라면 오늘 하루 좋은 경기를 펼친 ‘코리안 좀비’에게 큰 박수를 보내줬으면 좋겠다. 칭찬, 찬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1년 9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하여 훌륭한 경기 펼친 선수에게 응원 한마디라도 남겨줬으면 한다.

글쓴이의 작은 소망이다.

정성욱 RANK5 편집장 mr.sungchong@gmail.com

댓글 남기기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세요
이름을 적어주세요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