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FC 15] 리뷰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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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FC 15 포스터

[랭크5=유하람 기자] 냉정히 말해, ‘한국 입식격투기’가 흥한 적은 없다. 최홍만 덕분에 한국에서도 K-1이 흥하던 시절조차 그랬다. 마땅히 화제를 일으킬 ‘세계 레벨’ 선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국내 단체가 흥해 한국 선수들을 먹여살릴 인프라를 갖추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 싸우고 누군가는 계속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지난 2일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열린 맥스FC15는 그렇게 끈질기게 버텨온 한국 입식격투기의 현재를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메인이벤트 : C 김효선 VS 박성희

“근래 최고의 여성부 경기”
– 싸움다웠던 싸움
평점 : ★★★★

메인이벤트에서는 근래, 아니 근 몇 년 간 이만한 여성부 경기를 본 적이 있나 싶을만큼 화끈하고도 속도감 있는 수준 높은 경기가 펼쳐졌다. 보통 시청자가 여성부 경기를 기피하는 이유는 약한 피지컬과 그에 따른 무조건 판정으로 가는 포인트 따기 운영, 낮은 기술적 수준 때문이다. 이번 경기에도 남성부 같은 파워나 한 방 KO는 없었다. 그러나 김효선과 박성희는 경량급 특유의 속도전과 쉴 새 없는 공방, 그리고 공격성으로 명승부를 펼쳤다.

박성희의 전략은 분명했다. 우월한 신장과 리치를 살린 잽과 스트레이트를 쉴 새 없이 쏟아부어 상대가 반격할 여지 자체를 주지 않는 것.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거리감과 체력을 요하는 전략임에도 그는 확실하게 실행했다. 김효선은 김효선대로 어떻게든 클린치로 붙어 시간을 벌고 체력을 갉아먹었고,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맞불을 놓으며 판정까지 경기를 끌고 갔다.

경기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사각을 만들어 때리는 간결한 박성희의 콤비네이션, 꾸역꾸역 추격하는 김효선의 투지, 초 하이페이스로 싸우면서도 5라운드까지 똑같이 움직이는 체력과 정신력 등 매 순간이 기대를 한참 넘어있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4라운드 들어오는 김효선을 깔끔한 라이트 스트레이트로 다운시키는 장면이었다. 남성부 경기에서 잘 나오지 않는 이 정교한 카운터는 ‘이게 타이틀전’이라고 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관객이 여성 선수에게 경기력으로 환호하는 일은 많지 않다. 홈팬의 응원을 등에 업지 않는 여성부 대결은 한 틈새상품 취급받기 일쑤다. 그럼에도 주최측은 여성부, 심지어 경량급 경기를 메인이벤트로 세우는 대담한 뚝심을 보였으며, 김효선과 박성희는 그 푸시에 부합하는 경기력으로 보답했다. ‘여성부 경기’라는 꼬리표를 떼고 봐도 대회의 격을 올릴 만큼 훌륭한 승부였다.

 

준메인이벤트 : 황호명 VS 장태원

“중년의, 아니 황호명의 저력”
– 분루 삼킨 장태원, 승리할만 했던 황호명
평점 : ★★☆

노장의 분전은 언제나 보는 맛이 있다. 굳이 백전을 치른 베테랑이 아니라도 상관 없다. 나이 좀 있는 선수가 패기 넘치는 젊은이를 제압하려면 근력으로든 경험으로든 상대 순발력을 따라잡아야 하고, 그 과정이 상당히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약자를 응원하는 언더도그마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럼 어떤가. 멋있는 건 멋있는 건데. 랜디 커투어가 그렇게 전적이 엉망이었는데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가 미국 국적의 백인 레슬러였기 때문은은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서 맥스FC 슈퍼미들급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보험왕’ 황호명 역시 그랬다. 이미 자신을 꺾은 적도 있는 젋고 강한 장태원을 그는 야금야금 추격했다. 자신감 넘치고 빠른데다 회복력까지 뛰어난 장태원이었지만 황호명은 우직하게 전진하며 라운드를 주고 받았다.

비록 불의의 버팅으로 장태원이 4라운드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황호명의 승리는 ‘부상으로 인한 운 좋은 승리’ 정도로 폄하할 수 없었다. 링에 오른 이상 부상과 운도 실력일 뿐더러, 황호명은 그 전까지 5:5 싸움을 벌이며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승자 인터뷰에서 한 “이길 자신이 무조건 있었다”는 말이 결코 허세로 들리지 않는 이유였다.

다만 “장태원에게 당한 1패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그에게도 이 1패가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며 상대를 두 번 죽이는 독려사는 살짝 민망했다. 경기 자체도 클린치에서 신경질적으로 벌이는 클린치가 많아 팽팽한 양상에 비해 그렇게 박진감 넘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럼에도 황호명은 이날 빛났다.

4경기 : 명현만 VS 안석희

“명현만은 명현만”
– 알고도 못 막는다
평점 : ★★☆

열악한 한국 입식격투기 시장에서도 특히 빈약한 부분은 중량급 선수층이었다. 일본에서는 그나마 무사시와 교타로 등이 꾸준히 활약해줬지만, 한국에서는 잠시 반짝했던 최홍만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뇌수술 이후로는 평범한 거인으로 전락했다. 이는 지금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래도 상당히 선수 수준이 상향평준화된 경량급과 달리 디비전을 유지하는 게 힘겨울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도 수준급 기술을 가진 명현만의 복귀는 많이 반가웠다.

하지만 경기는 기대 이하였다. 본인 말대로 명현만은 아직 감을 찾지 못한 상태였고, 안석희는 그 명현만의 전진하며 던지는 훅 하나에 무릎 꿇었다. 전략 자체는 예상한 듯 안석희가 다양한 각도에서 타격을 시도하며 전진을 저지하려 했지만 명현만이 기량 자체가 몇 수는 위였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어도 안석희를 제압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다음 상대이자 현 챔피언 권장원을 위협할 막강한 적수가 등장했다는 점, 그리고 나름의 스토리라인이 갖춰졌다는 점에서는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챔피언이라는 사람이 상대 선수가 잠시 달라는 대로 순순히 벨트를 넘겨주는 등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여 앞으로 대립각이 제대로 세워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경기력을 기대할 수는 있을 듯하다.

3경기 : C 김진혁 VS 유키 키타가와

“일격필살”
– 챔피언다운 챔피언, 김진혁
평점 : ★★★☆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번 맥스FC에서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를 뽑는다면 단연 메인이벤트겠지만 MVP를 꼽자면 의심할 여지 없이 김진혁이었다. 그는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일격이면 충분했다. 2라운드 내내 견제성 타격만 보여주다 빈틈이 보이자마자 오버핸드 라이트 몇 번으로 끝내는 모습은 상대를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는 인상까지 줬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챔피언’의 모습이었다. 김진혁의 퍼포먼스가 너무 완벽하면서도 짧고 일방적이었던 탓에 이 이상 할 말이 없다.

2경기 : 최훈 VS 김준현

“불완전연소”
– 그냥 이길만 했던 최훈
평점 : ★★☆

최훈은 100점짜리 강함도 100점짜리 영리함도 없었지만 둘 다 90점은 갖추고 있었다. 상대를 끝낼만큼은 아니어도 초반 라운드를 가져갈 화력이 있었고, 상대를 농락할만큼 전략적이지는 않았지만 자기 체력이 떨어져도 점수를 딸 수 있는 노련한 후반 운영이 있었다. 정말 딱 이길만 해서 이긴 경기였다. 반면 김준현은 별다른 인상 깊은 장면은 만들지 못한 채 링을 내려왔다. 화끈한 플레이로 이름난 최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경기였다.

오프닝매치 : 김수훈 VS 이재선

“입식격투기의 벽”
– 김수훈, 완벽하게 입식 자존심을 세우다
평점 : ★★★☆

해외에서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K-1 그랑프리 챔피언에 오른 여파가 아직도 있어서인지, 아니면 입식을 한참 앞지른 종합격투기의 위상 때문인지는 모른다. 언젠가부터 종합격투기 팬 사이에서 입식 대회가 묘하게 ‘순수 타격 실력을 점검할 무대’ 정도로 여겨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됐다. 당연한 일이지만 평생 타격기만 연마한 파이터에게 종합격투가가 스탠딩 싸움에서 상대가 되긴 어렵다. 김수훈 역시 사전 인터뷰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입식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불편함을 내비쳤고, 경기장에선 그에 걸맞는 실력으로 ‘참교육’을 시전했다.

이재선도 잘 싸웠다. 결국 투지 밖에 남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종합격투가의 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그가 완전한 입식타격가를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거의 없었고, 이는 곧 결과로 드러났다. 킥 운용, 콤비네이션, 경기 운영 무엇 하나 김수훈에 비교 가능한 부분이 없었다. 김수훈은 2라운드 후반부터 대놓고 로킥을 뻥뻥 차고 노가드 도발을 하는 등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3라운드에 연달아 다운을 따내며 KO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 종료 후 김수훈은 “이기는 건 기분이 좋다. 언제나 기분 좋게 하려고 하지만 역시 이길 때가 제일”이라며 웃었다. 한편 도발로 인한 건방진 이미지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라며 “그냥 싸가지 없다고 생각해달라”는 쿨한 태도를 보였다. 한참 위상이 낮아진 입식격투기의 자존심을 실력과 언변으로 모두 세우는 시원시원함이었다.

총평

“B+++”
– 여전히 그들은 뜨겁다
평점 : ★★★

객관적으로 맥스FC 15가 아주 훌륭한 대회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준메인이벤트는 부상으로 끝났고 가장 이름값 있는 명현만은 기대 이하였다. 2경기는 또 지극히 평범했다. 다른 경기들도 K-1과 글로리를 통해 높아진 눈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그럼에도 모든 대진이 경기 내외로 스토리를 가지고 준수한 결과물을 냈다는 점, 그리고 퀄리티에 있어 현재 한국 입식에서 낼 수 있는 최선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대회였다. 비록 A급이라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B+++ 정도는 충분히 줄 수 있는 이벤트였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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