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229] 리뷰 : 최대의 밤, 최악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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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229 포스터

[랭크5=유하람 기자] 7일 미국 네바다 라스베가스 T 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UFC 229가 막을 내렸다. ‘라이트급 3인방’을 앞세운 화려한 대진은 개최 전부터 큰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화끈한 경기가 속출하며 그 기대에 부응했다. 정작 문제는 경기가 모두 종료된 후에 발생했다. 챔피언과 전 챔피언이 격돌한 메인이벤트는 그에 맞는 경기력으로 꾸며졌으나, 공이 울린 후 벌어진 패싸움엔 그런 위엄따윈 없었다.

메인이벤트 : C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vs #1 코너 맥그리거

“명품 경기, 저질 마무리”
– 과열된 ‘싸움’, 업계를 망신시키다
평점 : ☆

개최 전부터 이목을 끌었던 화려한 대진 중에서도 ‘라이트급 3인방’의 격돌은 큰 기대를 모았다. 현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전 챔피언 겸 랭킹 1위 코너 맥그리거, 전 잠정 챔피언 겸 랭킹 2위 토니 퍼거슨은 한 대회에 나란히 출전했다. 세 선수는 당대 최강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서로 만나지 않으며 한 번씩 벨트를 둘렀고, 때문에 업계는 더더욱 누가 이 천하삼분지계를 끝내고 라이트급을 통일할지 주목했다.

천하통일의 위업엔 역시 하빕이 가장 근접했다. 현 챔피언이라는 명분뿐 아니라 무패라는 전적에서도 보이듯 기량에서도 가장 완성됐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번 대회에서 강력한 적수 맥그리거를 시종일관 눌러놓은 끝에 4라운드 서브미션으로 꺾었다. 잘 준비한 티가 나는 맥그리거의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집념으로 뚫어버리는, 상식 밖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당대 최강’이란 칭호를 가져갈 자격이 있다고 어필한다고 보일 정도였다.

더구나 이번 경기에서 하빕은 레슬링만 보여주지 않았다. 1라운드에 상위 압박으로 혼쭐을 내준 뒤 2라운드 눈짓만으로 테이크다운 페이크를 주고 기습 라이트로 맥그리거를 스탠딩에서 쓰러뜨리는 장면은 실로 놀라웠다. 이후에도 ‘하빕이 타격은 어설프다’는 일부의 혹평을 무색케 할 만큼 뛰어난 앞손 잽과 뒷손 훅을 수차례 선보였다. 무리하게 힘을 쓰고도 한 라운드 쉬어가며 체력을 회복하는 신체능력과 그를 제대로 이해한 운영까지 흠잡을 데 없는 경기력이었다.

하지만 경기 후 그가 보인 추태는 체급 정점에 서 있는 선수라기엔 너무나 아마추어스러웠다. 심판이 경기를 끝낸 후에도 맥그리거에게 원색적인 감정을 쏟아냈으며, 관중석에 뛰어들어 맥그리거의 주짓수 코치와 몸싸움을 벌였다. 다니엘 코미어와 루크 락홀드 등 동료들이 뜯어 말렸지만 하빕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의 코치는 코치대로 하빕 측 세컨과 싸우는 맥그리거를 뒤에서 공격하는 등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데이나 화이트 대표까지 직접 나서 그를 퇴장시킬 때야 사태는 일단락됐다.

난동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링 아나운서 브루스 버퍼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경기장에서 덩그러니 남겨져 경기 결과를 발표했고, 대회 종료 후 난동에 참여한 하빕 측 세컨들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무엇보다 경기를 직관하던 뉴욕 주지사가 사태가 벌어지자 경기장을 떠났다. UFC가 뉴욕에서 MMA를 합법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합법이 된 후엔 뉴욕 대회라면 매번 어떤 공을 들였는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개망신’이다. 세상에서 제일 주목 받는 경기를 보러온 뉴욕 주지사에게 “우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몸으로 말해준 셈이다.

물론 사태 주범인 하빕을 두둔하는 여론도 적잖게 있다. 윌 브룩스는 “맥그리거가 승리 후 저런 행동을 벌였다면 데이나 화이트는 웃으며 벨트를 감아줬을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내놓았고, 컵 스완슨은 “(도 넘는 도발을 계속한)맥그리거가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냉정히 말해 형평성과 원인제공을 떠나 스포츠맨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도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제일 중요한 대회의 제일 중요한 경기에서도 제일 중요한 주인공이 경기장 밖에서 주먹을 휘두르려 달려들었다? 이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트래시토킹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주는 격투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하빕의 변명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준 메인이벤트 : #2 토니 퍼거슨 vs #8 앤소니 페티스

“막강한 퍼거슨, 멋있는 페티스”
– 원맨쇼를 막아선 페티스의 저력
평점 : ★★★★☆

하빕이 차곡차곡 상대를 정리하고 맥그리거가 복싱으로 외도하는 사이 토니 퍼거슨은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큰 부상으로 1년을 날려버린 퍼거슨은 정규 타이틀에 도전하기 위한 제물이 간절했다. 반면 앤소니 페티스는 라이트급 챔피언에서 내려온 2015년 이후 최악의 슬럼프를 보내다 최근에야 마이클 키에사를 때려 잡으며 부활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두 선수 모두 정상으로 가려면 당장 1승이 급한 상황이었다.

경기결과 자체는 예상이 가능했다. 간절함이야 누가 우위라 하기 어렵겠지만 최근 폼 차이가 현저했기 때문이다. 정점을 눈앞에 두고 부상에 발목 잡힌 퍼거슨과 지옥까지 떨어졌다 기사회생한 페티스. 누가 이길지는 불 보듯 뻔해보였다. 하지만 페티스는 파이터였다. 퍼거슨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강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여전한 젊고 패기 넘치는 선수라는 사실을 페티스는 이번 경기로 증명해냈다.

1라운드 시작부터 두 선수는 케이지를 크게 쓰며 화려한 스위치와 스텝 싸움을 펼쳤다. 특히 퍼거슨은 특유의 변칙적인 리듬으로 복잡한 수싸움을 걸었다. 중반부터는 스텝을 정제하고 걸어들어가며 압박에 집중했다. 페티스는 페티스는 사이드 스텝을 부지런히 밟으며 거리를 벌리려 애썼지만 퍼거슨이 그 길을 잘 알고 있었다. 퍼거슨은 페티스가 마음 놓고 타격전을 벌일 거리를 점점 줄여나갔다. 페티스는 막판엔 코너에서 연타를 허용할 만큼 수세에 몰렸다.

반전은 2라운드에 일어났다. 페티스가 회심의 라이트 훅을 적중시키며 퍼거슨을 쓰러뜨렸고, 경기는 이때부터 불타기 시작했다. 다운 직전 퍼거슨이 휘두른 엘보에 안면이 찢어진 페티스는 피를 철철 쏟아냈다. 이에 흥분이라도 한 듯 페티스는 퍼거슨을 하위에 깔아놓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혀를 내밀고 괴성을 질렀다. 페티스는 그라운드에서 소득을 거두지 못한 채 체력만 소진해 불리한 싸움을 계속했지만 통칭 ‘풍차돌리기 킥’을 선보이는 등 끝까지 싸움을 즐겼다. 이후 피투성이가 된 두 선수는 환하게 웃으며 최선을 다해 싸웠다. 객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2라운드 종료 후 페티스 코너 측은 너무 큰 데미지와 부상으로 기권을 선언했다. 하지만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고 두 선수는 서로를 인정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대참사가 벌어졌던 메인이벤트와 정 반대되는 장면이었다. 퍼거슨은 부상을 딛고 챔피언 로드를 다시 걷게 됐고, 페티스 역시 여전히 저력 있는 ‘진짜 파이터’라는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 간만에 승패를 떠나 왜 종합격투기가 매력적인지 느낄 수 있었던 명품 경기였다.

3경기 : #12 도미닉 레예스 vs #7 오빈스 생 프루

“완.벽.”
– 간만에 등장한 ‘진짜 신성’ 레예스
평점 : ★★★☆

한편 3경기에서는 라이트헤비급에 정말 오랜만에 등장하는 테크니션 신예가 승전보를 울렸다. 랭킹 12위의 무패 신성 도미닉 레예스는 랭킹 7위의 ‘피지컬 괴물’ 오빈스 생 프루를 타격기로 압살했다. 스피드, 정확도, 콤비네이션, 킥 운용, 타격회피 등 어떤 부분에서도 생 프루는 레예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히 경기 종료 직전 레예스가 사이드로 빠지며 사각에서 치는 펀치로 다운을 따내는 장면은 두 선수가 얼마나 급 차이가 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워낙 레예스가 일방적이면서도 스무스하게 싸움을 주도한 덕에 경기 자체에 대해서는 할 멘트가 별로 없다. 레예스는 힘 좋고 주먹이 강하지만 단순한 생 프루를 어떻게 요리해야할지 너무 확실히 알고 있었다. 또한 전략 수행능력이 그만큼 뒷받침이 됐고, 화력 좋은 신예 타격가가 흔히 발목 잡히는 태클 방어나 체력 안배까지 완벽했다. 레예스에 대한 칭찬뿐 할 말이 없는 경기였다.

이번 승리로 레예스는 훨씬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종합격투기 데뷔 4년, UFC 입성 불과 1년 만에 그는 체급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젊은 피로 자리 잡았다. 업계 가장 정체된 체급 중 하나인 라이트헤비급에서 그가 어떤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

2경기 : #3 데릭 루이스 vs #5 알렉산더 볼코프

“헤비급은 한 방, 한 방은 헤비급”
– 루이스, 무섭지만 귀여운 승리
평점 : ★★★☆

데릭 루이스는 ‘야수’라는 별명과 달리 다소 귀여운(?) 구석이 있다. 험악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타격에 맞으면 아픈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거나, 졸전을 펼치면 인터뷰에서 자기가 잘못한 구석을 툴툴대며 털어놓고는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밝히는 등이 그렇다. 한편으론 언제나 경기를 끝낼 수 있는 한 방이 있는 헤비급다운 헤비급 파이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는 이 루이스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는 진귀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1라운드부터 루이스는 쩔쩔 맸다. 길쭉한 팔다리로 먼 거리에서 두들기는 알렉산더 볼코프에게 그는 어쩌 줄을 몰랐다. 미들킥에 이은 펀치 콤비네이션에 배를 붙잡고 케이지 바깥으로 도망가기 바빴으며, 2라운드엔 시작과 동시에 어퍼컷에 휘청였다. 3라운드 종료 직전까지도 일방적인 흐름은 이어졌다. 유효타는 이미 3배 가까이 벌어져 있었다.

남은 시간은 불과 80여 초. 판정으로 가면 무조건 지는 상황에서 루이스는 마지막 힘을 짜내 ‘묻지마 돌진’을 시전했다. 그리고 라운드 종료 20여 초 전 기가 막힌 라이트 훅을 적중시키며 단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어냈다. 턱이 돌아간 볼코프는 그대로 쓰러져 후속 파운딩을 연달아 허용하다 실신했다. 승자인터뷰에서 루이스는 그저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헤비급다운, 또 루이스다운 승리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프란시스 은가누 전을 거쳐 이번 경기까지 승리하며 루이스는 넘버원 컨텐더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 랭킹 1위 스티페 미오치치가 직전 경기에서 챔피언 다니엘 코미어에게 패한 만큼 우리의 ‘귀여운’ 루이스가 타이틀전을 치르는 모습을 기대해도 괜찮을 듯하다.

오프닝매치 : #8 미쉘 워터슨(32, 미국) vs #9 펠릭스 헤릭(34, 미국)

“워터슨, 예고된 승리”
– 기량에서 승리하다
평점 : ★★☆

대회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매치에서는 ‘어머니 파이터’로 유명한 미쉘 워터슨이 무난한 승리를 거뒀다. 펠릭스 헤릭은 신체조건의 우위를 살려 클린치 싸움으로 끌고 가려 했지만 그뿐이었다. 워터슨은 레슬링에서도 타격에서도 한 발씩 앞서나가며 낙승을 거뒀다. 경기 종료 직후 워터슨은 승리를 직감한 듯 활짝 웃어보였고, 헤릭은 고개를 푹 숙이며 수심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판정단은 3-0 만장일치 판정승(30-26, 29-28, 30-27)으로 워터슨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서 워터슨은 2연패에서 다시 2연승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고, 헤릭은 2연패에 빠졌다.

총평

“최대의 밤, 최악의 밤”
평점 : ★★

대회 종료 후 조쉬 톰슨은 “UFC 사상 최대의 밤인 동시에 사상 최악의 밤”이라고 평했다. 그 말대로 이번 대회는 화려한 대진, 뛰어난 경기력으로 채워진 반면 가장 부끄러운 결말로 막을 내렸다. 분명 UFC 229에는 신성의 등장도 옛 챔피언의 투혼도, 슈퍼스타의 복귀도 무패 챔피언의 승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감동은 이 스포츠 자체가 가지는 위상을 모두 ‘천박한 싸움’으로 끌어내리는 소동으로 먹칠됐다. UFC 229는 어쩌면 만점짜리 대회가 될 수도 있었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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