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비스핑! 포인트로 보는 영국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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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비스핑 페이스북

[랭크5=유하람 기자] 지난 달 5월 29일 마이클 비스핑(39, 잉글랜드)이 은퇴를 선언했다. 한참을 ‘옥타곤 대표 밉상’, ‘영국 양아치’로 불렸던 그였지만 가는 길은 따듯했다. 미운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언젠가부터 그는 종합격투기 팬에게 ‘그래도 참 대단했던 사람’이 돼있었다. 15년이라는 긴 세월, 서른아홉 번을 싸우면서 그는 경력 그 자체로 존경 받는 자리에 올라섰다.

◆ 풍운아 비스핑

모르긴 몰라도 비스핑을 수식하는 데 ‘풍운아’만큼 좋은 단어는 없을 듯하다. 그는 타고나기를 싸움꾼으로 태어났다. 챔피언이든 돈이든 어떤 목표의식이 생기기 전부터 그는 경쟁과 승부를 즐겼다. 종합격투기라는 개념이 잡히지도 않아 정말 싸움꾼들이 모이던 시절, 비스핑은 하루에도 네 번 싸워 네 번 이기던 천하무적이었다.

하지만 비스핑이 프로파이터가 된 이유는 단순한 자기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내 레베카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그는 어깨가 무거워졌다. 스스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할 만큼 여기저기서 돈을 벌었지만, 자신은 가슴이 뛰지 않고 가족에겐 많은 선물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그는 은퇴하는 순간까지 영국 무대에서 무패를 기록했고, 기어코 세계 정상에까지 올랐다.

◆ 영국의 남자 비스핑

당연한 말이겠지만 비스핑은 대체 불가능한 영국 넘버원 슈퍼스타였다. 그는 종합격투기를 넘어 섬나라 전체의 우상이었다. 영국 언론 메트로 지가 ‘2008년 영국에서 가장 멋진 남자 100선’에서 제이슨 스타뎀, 오아시스 갤러거 형제, 데이비드 베컴을 제쳐놓고 그를 1위로 선정할 정도였다.

UFC 최다승, 영국 최초 UFC 챔피언 등 그가 세운 기록은 모두 고국의 영광이 됐다. 최근 대런 틸(25, 잉글랜드)이 영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지만 아직 비스핑이 일으킨 신드롬에는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 칠전팔기의 대명사 비스핑

그러나 비스핑이 단순히 ‘좀 잘 싸웠던 영국 스타’ 정도였다면 종합격투기 팬에게 지금 같은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으리라. 비스핑의 진가는 다름 아닌 꾸준함에 있었다. 그는 초창기에 반짝하고 근근이 커리어를 이어가는 뭇 선수들과는 달랐다. 그는 UFC 커리어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컨텐더로 꼽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도중 승패를 반복할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랭킹 안이었다.

고비마다 ‘약물러’에게 처참하게 무너졌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은퇴를 종용하는 목소리가 가장 컸던 2015년 비스핑은 다시 연승가도에 올랐다. ‘버킷리스트에 적힌 매치’라던 앤더슨 실바(43, 브라질)을 잡아냈을 때도 “자기 전성기 내내 챔피언이던 선수를 이겼으니 됐다”는 반응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기어코 자신을 압살했던 루크 락홀드(33, 미국)에게 리벤지에 성공하며 벨트를 들어올렸다.

◆ 졸렬한, 영웅 비스핑

물론 비스핑이 마냥 멋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커리어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지만 호르헤 리베라(46, 미국)을 KO 시키고 상대 세컨 측에 침을 뱉는 등 진심으로 상대선수를 싫어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챔피언에 오른 후 상대를 가리며 체급 분위기를 망쳐놓은 일은 큰 지탄을 받았다. “그릇이 크진 않다”는 비아냥을 흘려 들을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비스핑이 떠나갈 때, 팬들은 박수를 쳤다. 누가 그러지 않는가. 간웅도 영웅이라고. 그가 아무리 악당이고 밉상이었다 해도 그는 경력으로 자기 가치를 입증했다. 숱하게 구설수에 올랐지만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부상이탈 한 번 없이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수차례 무릎 꿇을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10년을 돌고 돌아 정상에 올랐고, 돈이 없어 선수생활을 못하게 된 동료에게 훈련비를 대주는 등 정작 자기 사람에게는 따듯했다.

그가 아마 ‘역대 최강’, ‘최고의 챔피언’따위로 기억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혹자에겐 강자였음에도 어딘가 ‘찌질’했던 모습이 더 많이 회자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곱씹어본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는 패배나 몸 상태로 변명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던 우직한 선수였다는 점을 말이다. 비스핑, 그는 그가 이기고 지던 시절을 직접 본 사람들이라면 언젠가 문득 그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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