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이터] ‘옥타곤 마지막 로맨티스트’ 데미안 마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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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마이아

[랭크5=유하람 기자] 종합격투기라는 종목이 형성되는 데 주짓수가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주짓수의 아버지 격인 마에다 미츠요부터가 실전 지향주의자였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레이시 가문 역시 ‘발리투도’라는 형태로 길거리 바닥을 구르며 기술을 연마했다. 종합격투기 태동에 한 축을 차지했던 UFC 역시 그레이시 주짓수가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그렇게 옥타곤이 세상에 등장한지 어언 25년, UFC에 주짓떼로는 정말 찾기 어려워졌다. 주짓수는 종합격투기 선수라면 누구나 익혀야 하는 기본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작 주짓수 자체를 정체성으로 삼으며 서브미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선수는 거의 멸종했다. 지나친 그라운드 이해도 상향평준화로 설 자리가 없어진 탓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데미안 마이아는 여전히 올드팬의 감성을 자극하는 ‘마지막 로맨티스트’다. 2007년 UFC 데뷔 이후 그는 “나도 다치지 않으며 상대를 다치지 않게 제압한다”는 철학에 입각해 19승(9서브미션)을 올렸다. 지난 해 1월 스포티비와의 뉴스에서 그는 “내 철학대로 꽤 잘 싸우고 있는 것 같다”며 웃는 그는 ‘요즘 사람’과는 다른 아우라가 있었다.

마이아는 “패배를 두려워하는 순간 더 좋은 유술가가 될 수 없다”며 초심을 강조한다

– 주짓수 신동, 옥타곤에 입성하다

1999년 CBJJ 세계 주짓수 선수권 대회 블루벨트 –82kg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후 마이아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CBJJO 주짓수 월드컵에서는 세 차례 금메달을 들어 올렸으며, 2007년에는 주짓수 최고 권위 대회인 ADCC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2001년부터 병행한 종합격투기에서도 6승 무패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UFC 입성 이후 종합격투기에만 전념하며 마이아는 더욱 강해졌다. 5연속 서브미션 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 타이틀전을 향해 내달렸다, 16승 무패를 달리며 미들급 최강이라 불리던 파울로 필리오를 꺾고 옥타곤에 금의환향한 차엘 소넨도 3분을 넘기지 못하고 탭을 쳐야 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과한 탓이었을까. 타격으로도 재미를 보던 마이아는 네이트 마쿼트에게 21초 KO패, 그것도 일명 ‘공중세배 관광’을 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다음 경기에서 댄 밀러를 잡고 타이틀전에 도전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이때부터 마이아에겐 ‘고급 조연’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중소단체에서 뛰던 시절 마이아는 적수가 없는 서브미션 마술사였다

– A급 조연, 혹은 B급 주연

생애 첫 종합격투기 메이저 타이틀전에서 마주한 상대는 다름 아닌 앤더슨 실바였다. 지금은 비록 ‘한물 간 약쟁이’ 정도로 전락했지만 당시 실바는 상위 체급 전 챔피언도 농락할 만큼 강한 선수였다. 마이아는 타격으로라도 싸워보려고 했지만 실바는 닿지 않는 거리에서 그를 저격했다. 이어지는 욕설과 태업을 마이아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종료 후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를 비롯해 수많은 선수‧관계자‧팬들이 실바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마이아는 안중에 없었다.

이후에도 마이아는 강하지만 어딘가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있는 선수로 기억됐다. 기세 좋게 치고 올라오는 마크 무뇨즈에게는 연승의 제물이 됐고, 크리스 와이드먼이 왕좌로 가는 데 좋은 조연으로 활약했다. 웰터급으로 내려온 후 돌풍을 일으키는가 싶었으나 제이크 쉴즈와 로리 맥도날드가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는 ‘전투력 측정기’ 역할만 하고 말았다.

이후 7연승을 질주할 때만큼은 웰터급에서 가장 ‘핫’한 선수로 꼽히기도 했으나, 이내 타이론 우들리‧코비 콜빙턴‧카마루 우스만에게 연달아 패하며 주저앉았다. 정말 오랜 시간 강자로 군림하며 인상 깊은 승리도 여러 차례 거둔 마이아도 이쯤 되자 ‘명품 조연이 아니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게 됐다.

마이아를 꺾은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면 ‘명품 조연설’은 더욱 짙어진다. 선수들은 마이아을 잡아냄으로서 가장 화려한 순간을 장식하거나 치고 올라갈 계기를 만들었고, 또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만큼 마이아는 커리어에 값진 존재였다. 반면 마이아 본인은 분명 좋은 성적을 내면서도 끝끝내 ‘한 방’을 터뜨리지 못하며 주연이라기엔 아쉽고 조연이라기엔 과분한 입지를 유지했다.

– 옥타곤 마지막 로맨티스트

몸에 데미지를 적게 받는 스타일로 롱런한 마이아였지만, 40대에 들어서자 그도 나이를 속이지는 못했다. 그래플링에 집중하는 만큼 그는 라운드마다 체력소모가 큰 편인데, 여기에 노화까지 겹치며 마이아는 2라운드부터 체력난과 사투를 벌이는 선수가 됐다. 특히 그라운드 이해도가 높은데다 무지막지하게 힘 센 레슬러들이 속속 등장하며 마이아는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아는 아직 물러설 생각이 없다. 19승으로 옥타곤 최다승리 기록에 한 경기 차이로 따라붙은 그는 신기록을 갱신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UFN 129 경기 후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그는 “계약서에 남은 세 경기를 모두 소화하며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언제나 초심을 강조했던 그였기에, 이미 선수로서 이룰 만큼 이루고 부딪힐 만큼 벽에 부딪혔음에도 욕심이 남아있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UFC 최다승 타이 기록에 1승만을 남겨둔 마이아

3,8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이아는 묵묵히 한 길만을 걸어왔다. 주최측이 연달아 신성과 붙여주자 그는 디딤돌이 아닌 함정이 돼서 그들을 잡아먹었고,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먼 길을 돌아갈 때도 군소리 않고 강행군에 나섰다. 비록 벨트를 두르진 못했지만 그가 남긴 모든 기록은 무도가가 걸어야 할 정도로 남았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평화롭게 상대를 제압한다는 거의 주짓수 철학에 입각해 실행됐다.

마이아는 특정 시기를 제외하고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격투기에 대한 애정 하나로 일관했고, 그 결과 외도나 꼼수 없이 당당히 옥타곤 레전드 대열에 들어섰다. 성과와 생존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며 트위터로 타이틀전을 따는 일이 대수롭지 않아진 지금, 경쟁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외치는 그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그를 감히 ‘옥타곤 마지막 로맨티스트’라 부를만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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