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Fight Night 129 리뷰 :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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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 마이아 vs 카마루 우스만

[랭크5=유하람 기자] 세계 종합격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 세 곳만 꼽는다면 단연 브라질, 일본, 미국일 것이다. 브라질에서 발생한 근대적 ‘실전무술’ 개념은 미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UFC와 PRIDE를 탄생시켰고, 2000년대 일본에 이어 2010년대 미국이 흥행의 축을 이끌며 번성했다.

하지만 종합격투기 시장의 성장은 생각만큼 낙수효과가 크지 않았다. 숱한 ‘메이저 대회’는 이 세 국가에서만 돌아가면서 탄생하고 열릴 뿐 그 주변국가로는 거의 확산되지 않았다. 심지어 바로 옆나라에서도 이벤트가 열리지 않았을 정도였다. 일례로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대륙에서는 어떤 메이저 격투 대회도 열린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에서 열린 UFC Fight Night 129는 사뭇 큰 의미를 가진다. 이번 UFN은 UFC가 창설된지 근 25년 만에 열리는 첫 非 브라질 남미 대회다. 비록 정규 넘버링도, 화려한 대진으로 채워진 이벤트도 아니었지만 남미 종합격투팬들에게 설레는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리라. 과연 뚜껑을 열어본 UFN 129는 어떤 대회였을까.

1경기 : 빈센테 루케 vs 채드 라프리스

“좋은 스토리, 좋은 결말”

– 아버지의 나라에서 거둔 호쾌한 승리

非 브라질 대회에서 브라질 대 캐나다가 오프닝이라는 데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브라질 국기를 든 루케 아버지가 칠레인이라면 충분한 설명이 될까. 많은 UFC 파이터들이 자기 반쪽짜리 국적을 강조하는 편인데, 루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는 짧았다. 라프리스가 열심히 열을 올렸지만 루케는 침착했다. 루케는 공세에 위축되지 않고 빈틈을 찾았고, 짧은 카운터 레프트 훅이 적중시키며 라프리스를 쓰러뜨렸다. 라프리스가 대자로 쓰러진 상황에 추가 파운딩이 들어가자 심판은 말릴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암살자’라는 별명답게 루케는 묵묵히 좋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2015년 이후 벌써 6승 2패를 기록하며 차근차근 올라가는 루케. 그는 앞으로 바라볼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스스로를 입증하고 있다.

2경기 : 안드레아 리 vs 베로니카 마세도

“무섭지 않았던 KGB”

– 非 브라질 파이터의 아쉬운 패배

대회가 대회인 만큼 이번 UFN에는 경기장에 유독 다양한 국기가 등장했다. 베네수엘라 깃발을 들고 온 마세도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유연하고 터프한 파이팅으로 연승가도를 달리며 UFC에 상륙했다. 옥타곤 데뷔전에서는 아쉽게 패배했지만, 자신을 응원하는 남아메리카에서 멋진 승리를 거둔다면 다시 치고 올라갈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마세도는 타격이면 타격, 서브미션이면 서브미션 모두 위협적이었다. 리는 안면을 계속 내주며 쩔쩔 맸고 상위포지션을 잡아도 질색하며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경기는 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리는 타격과 그라운드 사이의 애매한 지점을 계속 공략했다. 중심을 높게 세우며 들어오는 마세도를 계속 싸잡고 메치며, 알리 이노키 포지션에서 차곡차곡 포인트만 쌓았다.

결국 신을 낸 건 마세도였지만 승리한 건 리였다. 마세도는 UFC 데뷔부터 2연패를 기록하며 향후 출전이 불투명해졌고, 리는 호된 옥타곤 신고식을 치렀다. 마세도가 조금만 전략적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경기였다.

3경기 : 디아고 리바스 vs 구이도 카네티

“칠레 잔치에 찬물 뿌린 아르헨티나인”

– 아쉬움에 그친 고국 팬의 응원

TUF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름을 알리고 옥타곤 입성, 연승을 거뒀지만 암 투병으로 찾아온 위기. 끝내 병을 이겨내고 복귀했지만 패배, 그리고 고국에서 찾아온 재기의 기회. 상대는 TUF 시절 같은 숙소를 쓰던 동료. 디아고 리바스는 영웅이 될 만한 모든 시나리오를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현실은 꼭 영화 같지만은 않았다. 10분을 불리하게 싸우다 3라운드 투혼을 불태우며 기어코 승기를 잡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카네티가 경기 종료와 함께 환호하는 순간 리바스도 결과를 직감한듯 침묵에 빠졌다.

칠레 관중은 그래도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주며 그럭저럭 마무리가 됐지만, 사실상 간판이었던 선수의 패배는 확실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국내 팬들에게 ‘최두호에게 진 선수’ 정도로만 알려졌던 카네티가 재평가 받았다는 점은 수확이라 하겠다.

4경기 : 제라드 캐노니어 vs 도미닉 레예스

“센스는 파워를 압도한다”

– 드디어 등장한 라이트헤비급 초신성

중량급이 인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젠 라이트 팬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헤비급 톱10에는 프라이드 시절부터 정상권에서 활약한 선수가 네 명이나 있으며, 라이트헤비급도 몇 년째 코미어 구스타프손 테세이라다. 속된 말로 ‘고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와중에 시원시원한 타격으로 치고 올라오는 레예스는 반갑기 그지 없다. 9승 무패를 기록하며 빠르게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레예스는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곤 모조리 1라운드에 끝내는 화끈함까지 가졌다. 헤비급에서도 활약하며 힘과 터프함으로 이름을 날렸던 캐노니어도 불과 3분 만에 나가떨어졌다.

아직 가다듬어야 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레예스는 분명 라이트헤비급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수로 보인다. 특히 이번 경기에서 손을 감추듯 몸을 돌리고는 상대 사각으로 찔러넣는 어퍼컷 센스는 발군이었다. 감각적인 경기 운영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보자.

준 메인이벤트 : [여성 스트로급] #9 알렉사 그라소 vs #12 타티아나 수아레즈

“압도적인 힘으로”

– 또다른 엘리트 레슬러 상륙

종합격투기에서 엘리트 체육인은 언제나 기대와 의심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압도적인 신체능력과 스킬로 상대 선수를 압살해버리거나, 반대로 종합격투기에 적응하지 못해 쩔쩔 매다 몰락하는 등 행보가 크게 갈렸다. 물론 종합격투기에 적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갖춰진 요즘은 그런 격차가 줄어든 편이다.

더군다나 아직 디비전 수준이 낮은 편인 여성부에서는 엘리트 체육인은 굉장히 위협적이다. 수아레즈가 전적도 두 배 이상 많고 랭킹도 높은 그라소에게 -700이라는 압도적인 배당률을 기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기장에서 수아레즈는 그 기대치를 고스란히 입증하며 압승을 거뒀다.

이로서 수아레즈는 코미어, 세후도 뒤를 이어 엘리트 레슬러로 타이틀에 다가서는 선수로 성장했다. 너무 막강한 챔피언 나마유나스와 랭킹 1위 옌드레이칙은 과연 이 힘 센 레슬러를 감당할 수 있을까.

메인이벤트 : [웰터급] 데미안 마이아 vs 카마루 우스만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할 게 없었던 마이아, 할 생각이 없었던 우스만

주목 받는 신예가 전통 강호를 꺾고 치고 올라가는 시나리오는 언제나 즐겁다. 다만 그렇다고 그 과정이 저질이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마이아 대 우스만은 안타깝게도 세대교체란 이름으로 포장하기엔 너무나 처참한 경기였다.

사실 잃을 게 많은 마이아가 상성도 좋지 않은 우스만을 위해 대체 출전할 이유는 없었다. 오직 프로 정신으로 대진을 메꿨으나, 결과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한 선택이 됐다. 마이아는 할 게 없었고 우스만은 할 생각이 없었다. 25분 동안 관객은 마이아를 떼어놓기 급급한 우스만을 지켜봐야만 했다.

우스만은 옥타곤 8연승을 달리며 타이틀전을 향한 길을 닦는 데 성공했다. 마이아는 생애 최초 3연패를 기록하며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토록 깔끔하게 세대교체가 되며 명암이 갈렸는데 유쾌하지 못한 건, 결코 기분탓만은 아니리라.

총평

“적당한 대진, 적당한 결과, 아쉬운 마무리”

UFN 129는 주최측도 그렇게 힘을 실은 대회가 아니었다. 오직 새 시장 개척에 의의를 두고 소소하게 연 이벤트였으며, 대진도 결과도 그에 맞춰 ‘적당한’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분명 아쉬움은 남는다. 대회에 과분한 퀄리티를 원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내용에서 그렇다. 특히 메인에서 벌어진 대참사는 이벤트의 격을 낮출만큼 치명적이었다. 분명 UFC 칠레는 조금은 더 좋은 대회가 될 수 있었다.

[UFC Fight Night 129 Maia vs Usman]

[웰터급] 데미안 마이아 vs 카마루 우스만
카마루 우스만 5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여성 스트로급] 알렉사 그라소 vs 타티아나 수아레즈
타티아나 수아레즈 1라운드 2분 44초 서브미션 승(리어네이키드초크)

[라이트헤비급] 제라드 캐노니어 vs 도미닉 레예스
도미닉 레예스 1라운드 2분 55초 TKO승(펀치)

[밴텀급] 디아고 리바스 vs 구이도 카네티
구이도 카네티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여성 플라이급] #14 안드레아 리 vs 베로니카 마세도
안드레아 리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웰터급] 빈센테 루케 vs 채드 라프리스
빈센트 루케 1라운드 4분 16초 KO승(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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