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이터] ⑦ ‘게임 체인저’ 사쿠라바 가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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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바 가즈시

[랭크5=유하람 칼럼니스트] 종합격투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이터는 누구일까. ‘역대 최강은 누구인가’와 더불어 이 질문은 오랜 시간 팬들에게 좋은 안줏거리였다. 이종격투기 시절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선수가 가장 위대한지 의견이 분분하며, 아마 앞으로도 의견이 모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름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 실력과 달리, 위대함이란 실력은 물론 업계 판도에 미친 영향력 등을 아우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종합격투기판 러시모어 산(앤더슨 실바, 사쿠라바 가즈시, 호이스 그레이시, 예멜리야넨코 표도르, 좌로부터)

하지만 그럼에도 ‘역대 최고’ 후보에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은 있다. 2012년 미국 종합격투기 전문 매체 셔독(Sherdog)은 이들을 추려 종합격투기판 러시모어 산 (MMA’S MOUNT RUSHMORE)이라는 기사를 발표한다. 격투기라는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흥행을 이끌었던 네 사람으로 셔독은 예멜리야넨코 표도르·앤더슨 실바·호이스 그레이시 그리고 사쿠라바 가즈시(48, 일본)를 선정했다.

이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사쿠라바 가즈시였다. 그를 잘 모르는 팬이라면 의아할지도 모른다. 동양인 약세가 뚜렷한 종합격투기에서 굵직한 챔피언 경력도 그리 없는 사쿠라바. 그가 몇 년 이상 체급을 지배한 다른 세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데뷔 초부터 각광받은 선수이긴 하지만 ‘그레이시 헌터’로 이름 날리던 최전성기는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이후 커리어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전설로 꼽히는 이유는 달리 없었다. 그는 전례가 없는 ‘게임 체인저’였다.

– 프로레슬러 전멸의 시대, 마지막 희망이 되다

종합격투기의 근원은 크게 두 갈래로 분류한다. 실전 지향 프로레슬링 기반으로 80년대부터 태동한 일본 이종격투기와, 주짓수 명가 그레이시 가문을 필두로 90년대에 등장한 북미 이종격투기다. (단, 여기서 말하는 이종격투기는 이전에도 흔히 이뤄지던 종목과 종목 간 길거리 싸움이 아닌, ‘프로’ 경기로 인증된 대회를 말한다) 그리고 이 두 세력이 처음 만난 사건은 흔히 1994년 일본 프로레슬러 안조 요지의 ‘그레이시 도장 깨기’ 사건이었다.

다카다 노부히코가 이끌던 UWF 인터내셔널 사단은 실전 지향 프로레슬링을 표방하고 있었고, 그만큼 격투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단체였다. 호이스 그레이시가 UFC에서 우승을 거두며 그레이시 주짓수 세계 최강을 자처하자 이에 자극받은 UWF 소속 레슬러 안조 요지는 그레이시 체육관을 찾아가 대장 격이었던 힉슨 그레이시와 맞붙는다.* 비공개로 진행된 대결에서 요지는 얼굴을 피 칠갑한 채 체육관에서 나왔고, 이 사진이 공개되자 일본 이종격투기 팬들은 술렁이게 된다.
* 호이스 그레이시가 UFC에서 우승한 후에 “나의 형 힉슨은 나보다 몇 배나 강하다”라고 말해 더욱 이슈가 됐다.(편집자 주)

다카다 노부히코와 힉슨 그레이시가 맞붙었던 프라이드 1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UWF 수장 다카다는 그레이시와 제대로 맞붙기 위해 1997년 DSE(Dream Stage Entertainment)와 손잡고 ‘프라이드 1(PRIDE 1)’*라는 대회를 연다. 메인이벤트는 힉슨 대 다카다. 그레이시와 UWF의 두목끼리 맞붙는, 나아가 주짓수와 일본 프로레슬링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대결이었다. 결과는 힉슨의 1라운드 암바 승. 다카다는 4분 만에 무기력하게 패했을 뿐만 아니라 암바가 끝까지 들어가기도 전에 탭을 치며 ‘광속 탭’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향후 몇 년간 계속되는 그레이시 강점기의 시작이었다.
* 프라이드 FC의 첫 대회명은 ‘PRIDE 1’. 최고를 가린다는 의미로 들어간 숫자 1은 2회부터 대회 넘버링으로 의미가 바뀐다.(편집자 주)

일회성 이벤트로 기획됐지만 대회가 예상보다 크게 흥하면서 프라이드 시리즈가 이어져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DSE*는 ‘프로레슬러 대 그레이시’ 구도를 꾸준히 내세웠지만 이는 대결이라기보단 학살에 가까웠다. 그레이시 가문은 월등한 그래플링으로 일본 프로레슬러들을 제압해나갔고, UWF 인터네셔널 사단은 전패로 무너졌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사쿠라바 가즈시였다.
* 프라이드는 원래 KRS라는 회사에서 만들고 진행했으나 1999년 1월 설립된 드림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DSE가 넘겨받아 프라이드 5부터 마지막까지 담당하게 됐다.(편집자 주)

사쿠라바가 승리를 거둔 UFC 15.5 Japan 경기 영상

– “여러분, 프로레슬러는 정말로 강합니다!”

다카다가 힉슨에게 참패한 후 2달 뒤인 1997년 12월 21일, 일본에서는 ‘UFC 15.5 Japan 토너먼트’가 열린다. 이미 체급별 디비전 체제가 잡히며 이전만큼 큰 의미를 갖지는 못했지만, 그레이시 신화가 탄생한 UFC 토너먼트는 여전히 권위 있는 대회였다. 놀랍게도 이 토너먼트 우승자는 UWF 소속 무명 프로레슬러, 사쿠라바 가즈시였다. 그는 기존 프로레슬러들에게선 볼 수 없던 뛰어난 그라운드 이해도와 창의적인 플레이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각종 무술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했으며, 프로레슬러는 그 자체로 강함을 상징하는 남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레이시 강점기에 격투팬들이 느낀 박탈감은 더욱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사쿠라바가 올린 승전보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열도 최강이라 불리던 프로레슬러들이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실망감만 안길 때, 무명 프로레슬러가 갑자기 튀어나와 ‘그레이시 본진’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일본 팬들은 모두 그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우승 소감은 그 관심을 열광과 기대로 바꿔놓았다.

“여러분, 프로레슬러는 정말로 강합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쿠라바는 전 UFC 웰터급 챔피언 카를로스 뉴턴을 서브미션으로, 12대 UFC 토너먼트 챔피언을 지낸 비토 벨포트를 판정으로 제압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11월 21일, 사쿠라바는 테크닉만큼은 호이스보다 낫다고까지 평가받던 호일러 그레이시를 기무라 록으로 제압한다.* 1951년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가 이 기술로 엘리오 그레이시를 제압한 이후 48년 동안 이어지던 그레이시 무패신화를 사쿠라바가 같은 방식으로 끊어낸 것이다.
* 이 경기에서 호일러는 오른팔이 한계치 이상 꺾였으나 탭아웃하지 않았다. 심판의 판단하에 경기는 중단되었고 사쿠라바 가즈시의 승리가 선언됐다. (편집자 주)

사쿠라바 가즈시와 호일러 그레이시의 경기

2000년 5월 1일에는 프라이드 무제한급 그랑프리에서 그레이시 가문 끝판왕 호이스 그레이시를 맞아 90분에 걸친 초장기전 끝에 기권으로 TKO 승을 거둔다. 단일 종목으로 격투판을 지배하던 그레이시 가문과 이종격투기의 시대를 종결하고, 나아가 일본 종합격투기 무대가 북미 종합격투기에게서 한 세대의 주도권을 빼앗아오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짧은 영광, 거대한 유산

사쿠라바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였다. 대학교 재학 당시 레슬링팀 주장을 맡고 전일본 대회 레슬링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출중한 베이스가 있었으며, 프로레슬러로 흥하지 못했음에도 다카다가 전폭적으로 밀어줬을 만큼 재능 있는 선수였다. 실제로 그는 술 담배를 즐기고 웨이트·유산소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세계 정상에 올라봤고, 도복과 띠를 이용해 상대를 묶어놓는 등 생각지도 못한 전술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능했다.

하지만 기막힌 센스와 기술 이해도로 정상에 올라선 사쿠라바는 이윽고 기술에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신예들에게 밀려나며 빠르게 몰락한다. 이후 프라이드 미들급 최강자로 군림하는 반더레이 실바에게는 3번 붙어 3번 모두 1라운드 KO를 당하고, 미들급 이인자로 불리는 히카르도 아로나에게는 잔인하게 농락당하는 등 그는 정상권에서의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K-1 히어로즈 이적 후 무명 선수에게도 실신 직전까지 몇 번을 간 끝에 간신히 승리하는 패턴을 반복하며 망가진 모습을 보인다. 신체단련에 소홀했던 그에겐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쿠라바 가즈시는 비록 UFC에서 두 경기만을 치렀으나 U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는 그가 종합격투기 역사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사쿠라바의 전성기는 너무도 짧았다. 그가 활약한 기간은 고작 4년 남짓으로, 그중에서도 ‘그레이시 헌터’로 이름 날리던 최전성기는 1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는 파급력에 비해 선수로서 쌓은 커리어는 상당히 부족하다. 극복이 불가능처럼 보였던 그레이시를 넘어서고 종합격투기 2세대를 견인하는 프라이드를 홀로 일으켜 세웠지만, 그가 디비전 챔피언이 되는 일은 없었다. 가진 재능을 생각했을 때, 자기 관리라도 잘 했다면 롱런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물론  짧은 전성기로 그가 남긴 유산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그로 인해 종합격투기가 인기 스포츠 대열에 들어가고, 이종격투기에서 종합격투기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점은 업계 전문가·선수들 역시 입을 모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일례로 UFC는 지난해 6월 4일 사쿠라바 가즈시를 개척자(PIONEER ERA) 부문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UFC에서 단 두 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종합격투기에서 남긴 그의 업적을 인정해 헌액한 것이다. 지금도 은퇴를 선언하기 미루고 있는 그이기에 과거형으로 말하기 머쓱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는 종합격투기에 다시없을 ‘게임 체인저’로 기억되고 있다.

유하람 칼럼니스트 droct89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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