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이터] ⑥ ‘비운의 제왕’ 다니엘 코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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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코미어 ©페이스북

[랭크5=유하람 칼럼니스트] 지난달 23일 현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다니엘 코미어가 은퇴계획을 밝혔다. 미국 종합격투기 전문 매체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만 40세가 되는 2019년에 은퇴하고, 이후엔 가족에게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아마추어 레슬링부터 30여년 동안 전장에 몸담은 그를 떠날 채비를 하는 그는 어딘가 홀가분해보였다. 많은 팬 역시 정점에서 은퇴하는 선수를 보내는 것 치곤 꽤나 ‘쿨’한 반응이다.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쉽다기보다는 ‘코미어는 할 만큼 했다’고 이해하는 분위기다.

다니엘 코미어란 파이터는 결코 쉬운 길을 걸은 선수가 아니었다. 비단 종합격투기에서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로 살아온 모든 커리어, 나아가 인생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의 과거는 고난으로 점철돼있었다. 운동선수로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지금도 그는 마냥 웃지 못한다. 혹자는 그래도 챔피언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나름 해피엔딩이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코미어가 은퇴한다는 소식에 팬마저 고개를 끄덕인다는 데서 보이듯 이는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 수난이대

코미어의 불운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됐다. 1986년 그의 외할아버지는 말다툼 끝에 사위를 총으로 살해한다. 온 가족이 모인 추수감사절 행사에서 가족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했을 당시 코미어의 나이, 불과 7세였다. 이어 학창 시절엔 친구와 사촌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대학교 때는 절친을 비행기 추락사고로 떠나보냈다. 2003년에는 교통사고로 3개월 된 딸 카에딘을 잃었다. 딸이 탄 차에 대형트럭이 추돌했고, 카에딘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마추어 레슬러 시절의 다니엘 코미어

사랑하는 이들을 연이어 잃자 그는 승부에 집착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에 매번 우승후보로 거론됐지만, 매번 그는 엉뚱한 데서 미끄러졌다. 그 시작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자유형 레슬링 –96kg급 3·4위 결정전이었다. 코미어는 2-0으로 앞서다가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연이어 3점을 내주며 메달을 거머쥐는데 실패했다. 절치부심해 국가대표 주장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지만, 8강을 하루 앞두고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가며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무리한 감량으로 신장에 이상이 온 탓이었다. 2008년 8월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그를 ‘가장 불운한 선수’라고 보도했다.

다시 말하지만 결코 코미어는 실력이 없는 선수가 아니었다. 고교시절부터 총 전적 101승 9패·대회 최우수 선수상 2회 수상을 기록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고, 1995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부문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유형으로 전향한 이후에도 세계선수권 동메달·전미레슬링선수권 6연패· 팬암 게임 금메달 2회·동메달1회 등 화려한 전적을 쌓았다. 유독 꿈의 무대였던 올림픽에서만큼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 반전의 서막

만으로 서른을 눈앞에 둔 코미어는 레슬링계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경쟁을 포기한 게 아니라, 다른 데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2009년 그는 당시 종합격투기 시장 제2 메이저 단체였던 스트라이크포스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2011년까지 그는 KOTC·XMMA 등 중소단체에서도 경기를 뛰며 7승 무패의 깔끔한 전적을 쌓았고, 단체 내에서도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리고 그해 중순 그에겐 갑작스럽게 큰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스트라이크포스 그랑프리 참전이었다.

스트라이크포스는 길버트 멜렌데즈를 비롯해 숱한 좋은 선수들을 배출했지만 끝내 이인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때문에 큰 한 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스트라이크포스 수뇌부가 기획한 이벤트가 바로 그랑프리였다. 적어도 헤비급만큼은 UFC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게 평가 받기도 하는 점을 이용한 기획으로, 세계 최강을 가리는 성대한 토너먼트라면 분명 크게 흥행하리라는 계획이었다. 1회전부터 흥행의 축이었던 예멜리야넨코 표도르와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각각 패배와 졸전으로 찬물을 끼얹었지만, 이러나저러나 그랑프리는 스트라이크포스 입장에서 이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이벤트였다.

스트라이크포스 그랑프리 파이널. 다니엘 코미어는 우승를 거둬 마지막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선수 입장에서도 스트라이크포스 그랑프리는 ‘숟가락 얹고 싶은’ 대회였고 이는 코미어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선수로서 이름값이 높지 않았던 그에게 그랑프리는 유명 선수들을 잡고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였다. 마침 스트라이크포스는 조용히 승수를 쌓고 있던 코미어를 기용했고, 제프 몬슨과 함께 토너먼트에서 이탈자가 생기면 대신 들어갈 선수를 결정하는 리저버 매치에 세운다. 몬슨을 무난히 제압하고 리저버가 된 코미어는 불과 한 달 만에 정식 토너먼트 참가자가 된다. 부상으로 이탈한 오브레임 대신 출전한 그는 표도르를 잡고 올라온 안토니오 실바를 1라운드에 KO로 때려눕히며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고, 기세를 이어 결승전에서도 조쉬 바넷을 격파하며 리저버가 우승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성한다. 무명 파이터 다니엘 코미어가 스트라이크포스 마지막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 인생에 드리운 그림자, 존 존스

UFC의 스트라이크포스 합병으로 성적 좋은 스트라이크포스 선수들은 대부분 UFC로 건너가게 됐다. 코미어는 그중에서 가장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로 꼽혔다. 스트라이크포스에는 길버트 멜렌데즈·조쉬 톰슨 등 경량급부터 쉐인 델 로사리오로 대표되는 헤비급에 이르기까지 숱한 강자들이 있었지만, 코미어처럼 빠르고 확실하게 실력을 입증하며 치고 올라온 선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의 과거사가 재조명되며 고진감래의 대명사, 신데렐라의 화신 정도로 추앙 받았다. 단연컨대 2012년 초 가장 ‘핫’했던 선수는 다니엘 코미어였다.

헤비급 연승을 이어가면서도 팀 동료이자 당시 챔피언이었던 케인 벨라스케즈와 싸울 생각이 없다고 할 때만 하더라도 좋은 분위기는 이어졌다. 케인의 헤비급 집권이 길어지자 그는 라이트헤비급 행을 선택했고, 기분 좋은 2연승 후 라이트헤비급에 도전하자 팬들은 ‘드디어 코미어의 수난기가 끝나는 구나’ 싶어 설레했다. 그리고 코미어는 그곳에서 인생 최대이자 최악의 적수 존 존스를 만난다.

존 존스와 다니엘 코미어의 1차전이 벌어진 UFC 182

종합격투기 사상 가장 재능 있는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존스는 당시 타이틀 7차 방어까지 성공한 상태였다. 워낙 동체급에 적수가 없어 헤비급 출신 코미어를 빠르게 타이틀전으로 올려보낸 것이지만, 그조차도 존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극소수 도전자가 그랬듯 초반 라운드에 선방했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뿐 장기인 레슬링에서조차 압도당하며 코미어는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한다. 이후 존스가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여파로 공백이 길어지자 그가 박탈당한 타이틀을 코미어가 차지했지만, 결국 존스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딱지는 그를 계속 따라다녔다. 코미어 역시 이를 알고 있었고, 때문에 존스와 다시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존스의 금지약물 복용 적발로 UFC 200에 예정됐던 2차전이 무산되자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에게 “그냥 싸우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할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돌고 돌아 UFC 214에서 치러진 2차전은 그의 자존심에 더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번엔 3라운드 KO패로 확실하게 무릎 꿇었기 때문이었다. 존스가 경기 종료 후 또 다시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며 이 패배는 무효가 되고 그는 다시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됐지만, 그는 결국 ‘승자’보단 더러운 약쟁이에게 당한 ‘희생자’로 기억되고 말았다. 존스가 자기관리 실패와 약물 적발로 자멸한 것과 별개로 코미어가 입은 손해는 복구되지 않았다. 결국 라이트헤비급의 진정한 승자는 코미어가 됐지만, 너무나 찝찝한 상처뿐인 승리였다.

– 어둡기에 더욱 빛나는 별

그렇게 2018년, 코미어는 타이틀 3차 방어에 성공한 현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다. 희대의 사기꾼 존스가 종합격투기 세계에서 삭제된 지금, 그가 동체급 최강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이 벨트를 고스란히 들고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며, 만일 오는 6월 열리는 헤비급 타이틀전에서도 승리한다면 두 체급 챔피언으로 커리어를 마무리 지을 수도 있어 보인다. 정상을 앞두고 번번이 무너졌던 코미어가 결국 마지막엔 빛나는 승리를 거둔 셈이다.

UFC 214에서 벌어진 다니엘 코미어와 존 존스의 2차전. 경기에선 존 존스가 승리했지만 약물 적발로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물론 존스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역사가 그를 시대의 승자로 기록할지언정 상처 입은 자존심이 복구될 일은 없으며, 존스가 영영 삭제된 이상 명예회복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선수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더욱 존중 받을 자격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난은 그를 승부의 세계로 몰아넣었고, 그 세계 속에서도 그를 끊임없이 쫓아다녔다. 그가 은퇴하는 순간까지 여러 악몽이 남긴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을 다스리는 데만 집중했고 결국 조금 때가 묻었을지언정 빛나는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뤄낸 성과에 약간 흠이 났을지언정 그는 언제나 그랬듯 최선을 다했고, 결국 팬들이 기억하는 ‘위대한 챔피언’은 그이기 때문이다. 한낱 약쟁이 따위가 더럽힐 수 없을 만큼, 그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이유다.

유하람 칼럼니스트 droct89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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