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이터] ⑤ 불굴의 대명사,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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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정성욱 기자

[랭크5=유하람 칼럼니스트] ‘콩라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없이 5회 준우승을 기록한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의 별명 ‘콩’에서 착안한 용어로, 그처럼 끝내 일인자가 되지 못하고 이인자에 머무르는 이들은 으레 이 라인으로 분류되곤 한다. K-1에서 무관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제롬 르 벤너, 타이거 우즈 때문에 항상 세계 랭킹 2위에 머물렀던 필 미켈슨, 끝내 우사인 볼트를 넘어서지 못한 타이슨 게이 등이 대표적인 ‘콩라인’ 멤버다.

2000년대 종합격투계는 체급마다 독재자가 군림했던 탓에 이 ‘콩라인’이 득실득실했다. 미들급부터 페더급까지 체급을 내려도 끝내 벨트는 감지 못했던 케니 플로리안, 8년 동안 논타이틀전 무패였지만 챔피언 앞에선 번번이 무너졌던 유라이아 페이버가 그 예다. 진정한 세계 최강을 가리는 체급, 헤비급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멜리야넨코 표도르가 2000년대를 통째로 집어삼켰을 때 누군가는 묵묵히 그의 뒤를 쫓았다. 바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41, 브라질)였다.

예멜리야넨코 표도르, 미르코 크로캅, 그리고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는 2004 프라이드 FC 헤비급 타이틀을 놓고 겨뤘다. 이들의 강력함을 표현하기 위해 프라이드 FC에선 ’60억분의 1’이란 표현을 썼다. ⓒ유튜브 영상 캡쳐

다만 노게이라는 ‘콩라인’으로 이름 날린 여러 파이터 중 유독 많은 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로 꼽힌다. 왕좌에 도전하고 무너지는 패턴이야 그도 숱하게 겪었지만, 그 과정이 특히 드라마틱했을뿐더러 어딘가 아까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는 단순한 이인자로 소개하기엔 이야깃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 익숙한 경쟁, 학습된 투쟁

노게이라는 생활고 탈출을 위해 늦은 나이로 링에 뛰어드는 뭇 브라질 파이터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몸이 허약했던 그는 스스로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 익숙한 환경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5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해 14살엔 복싱을, 18살엔 주짓수를 접해 수련했다. 1999년엔 주짓수와 유도에서 모두 검은 띠를 땄으며, 종합격투기에 전념하기 전엔 각종 주짓수 선수권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하며 활약한다.

1999년 CBJJ에 출전한 노게이라는 갈띠 100kg급과 무제한급에서 모두 우승했다. ⓒIBJJF 홈페이지 캡쳐

애초에 강해지는 데 목적이 있었던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계기는 다름 아닌 사고였다. 10살 때 그는 트럭에 깔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갈비뼈와 간 일부를 잃고 8차례 대수술을 거쳤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던 그는 깨어난 후에도 11개월 동안 병원살이를 해야 했다. 그의 오른쪽 등에는 깊은 흉터가 하나 있는데 이는 교통사고의 흔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선수로 성장한 이후 노게이라는 이때의 경험 때문에 경기장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련해온 유술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그는 종합격투기에 발을 딛는다. 1999년 데뷔 후 그는 WEF와 링스(Rings)를 오가며 제레미 혼‧댄 핸더슨 같은 강자들과 부딪히며 성장했다. 10승 1무 1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둔 끝에 2001년엔 발렌타인 오브레임을 꺾고 링스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서브미션 승률은 무려 80%, ‘주짓수 매지션’의 등장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 헤비급의 제왕에서 영원한 2인자로

링스에서 우승한 그는 톱파이터가 으레 그랬듯 당시 최고 메이저 단체로 거듭나던 프라이드 FC(PRIDE FC)로 이적한다. 레슬링이면 레슬링, 킥복싱이면 킥복싱이었던 이종격투기 세대에 복싱과 주짓수 모두 뛰어났던 노게이라는 메이저 무대에서도 센세이션한 존재였다. 당시 그는 격투기의 발전을 10년은 앞당겼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그로부터 16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파이팅은 종목 대 종목으로 싸우던 이종격투기에서 현대적 의미의 종합격투기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했다 평가받는다. 이런 그가 연승가도를 달리며 프라이드 FC 헤비급을 휘어잡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예멜리야넨코 표도르만 없었다면 말이다.

2002년 히스 헤링을 꺾고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 세미 슐트·댄 핸더슨을 연파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게이라의 독주는 당연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많이 두드려 맞더라도 복싱에서 주고받으며 그라운드로 끌고 가서는 결국 경기를 뒤집어버리는 마술 같은 경기력은 팬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인간이 아닌 듯한 피지컬로 악명을 떨쳤던 밥 샙에게 파워밤을 당하고도 끝내 암바를 따낸 경기는 역대급 명승부로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타격-테이크다운 연계로 대표되는 표도르식 웰라운딩에 노게이라는 속수무책이었고,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노게이라는 표도르와 타이틀을 놓고 두 번을 겨뤘으나 모두 패배했다.

미르코 크로캅을 대역전 암바로 잡아내고 잠정 챔피언에 오른 뒤 다시 도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표도르는 더욱 완벽한 경기력으로 노게이라를 제압했고, 그는 또다시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2001년 프라이드 FC 데뷔 이후 2008년까지 노게이라는 표도르 전을 제외하면 19승 1패라는 경이로운 전적을 남긴다. 유일한 패배는 조쉬 바넷에게 당한 논란의 판정패였으며, 그마저도 곧바로 리벤지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표도르에게 마지막으로 도전하는 일뿐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가 표도르를 만나는 일은 다시 없었다. 프라이드 FC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 절치부심,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르다

세계 최고 격투기 무대였던 프라이드 FC가 도산하면서 소속 파이터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일부는 프라이드 FC의 후신 격이었던 드림(DREAM)에 남았고, 일부는 WEC나 스트라이크포스(Strikeforce)로, 또 일부는 UFC로 넘어갔다. 이름 있는 선수들 대부분은 최고 메이저 단체 타이틀을 이어받은 UFC 옥타곤행을 선택했다. 크로캅·반다레이 실바 등이 그랬고, 노게이라 역시 이 무리에 끼어 있었다. 당시 프라이드 FC 출신 파이터들은 대부분 링에서 옥타곤으로 바뀐 무대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노화까지 겹치며 큰 폭으로 몰락했다.

노게이라가 옥타곤 데뷔전을치른 UFC 73 포스터. 노게이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노게이라 역시 ‘밥’이었던 히스 헤링에게 KO 당할 뻔하며 큰 위기를 겪었다. 그에게 크게 데였던 헤링이 파운딩 치기를 망설이는 덕에 기사회생했지만,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그리 말끔하지는 못한 옥타곤 데뷔전이었다. 아직 패배가 쌓이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예전 같지 않은 이때, 그는 UFC 잠정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하게 된다. 상대는 강제로 경기를 뛰어 황당하게 벨트를 뺏긴 UFC의 독재자 팀 실비아였다.

2m가 넘는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적인 타격과 뛰어난 테이크다운 디펜스로 유명했던 실비아는 노게이라에게 최악의 상대라는 평가가 많았다. 실비아가 원거리에서 쏟아내는 타격을 버티기엔 강철 같던 맷집도 예전 같지 않고, 넘어뜨려 서브미션을 걸기엔 실비아가 그라운드 상황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리라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팬이 예상한 대로 노게이라는 수도 없이 많은 타격을 허용했다. 실비아는 압도적인 힘으로 그를 깔아뭉갰고, 노게이라는 그저 버티기 급급해 보였다. 그러나 3라운드 중반, 실비아가 집중력이 떨어진 틈을 타 노게이라는 스윕에 성공했고 끝내 길로틴 초크로 대역전극을 만들어낸다. 비록 잠정일지라도 다시 한번 챔피언 벨트를 감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노게이라는 마우리시오 쇼군과 더불어 UFC·프라이드 FC 두 단체에서 모두 정상에 오른 유일한 선수로 남게 됐다.

UFC 81 포스터. 노게이라는 팀 실비아를 꺾고 헤비급 잠정 챔피언에 올랐다.

– 너무 슬프지만은 않았던 마무리

그리고 이는 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랜디 커투어와 통합 타이틀전을 남겨놓았을 때, 그는 뜬금없이 등장한 WWE 스타 브록 레스너에게 타이틀 도전권을 빼앗겼다. 잠정타이틀을 방어하고 다시 타이틀전에 가려 했으나 이번엔 그래플러 프랭크 미어에게 커리어 첫 KO패를 헌납했고, 커투어를 잡고 재기했을 땐 신성 케인 벨라스케즈에게 허무하게 실신했다. 또 다른 젊은 피 브랜든 샤웁을 KO로 잡으며 고향에서 승전보를 울렸지만 한순간의 방심으로 미어에게 이번엔 커리어 첫 서브미션 패까지 내줬다. 이후 그는 1년에 한 번 옥타곤에 올라 패하고 내려가는 패턴을 반복했으며,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2015년 은퇴를 선언한다.

노게이라의 은퇴전인 UFC 190. 포스터에는 동생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의 모습이 보인다.

뭇 올드 파이터들이 그렇듯, 그의 마지막은 마냥 아름답지는 않았다. 커리어 내내 당하지 않았던 모든 굴욕을 말년에 겪었고, 은퇴전마저 지지부진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패배로 마무리했다. 끝내 왕좌 탈환에 실패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가 세계 최강이었던 시절에 비해 초라하다는 뜻일 뿐, 그를 깎아내릴 수 있는 요소가 되진 못한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업적이 워낙 크기도 하지만, 첫 연패에 깔끔하게 은퇴해 커리어를 더럽히지 않는 파이터는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015년 UFC 서울 대회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노게이라. 현재 그는 브라질에서 UFC 선수담당사절로 활동하고 있다. ⓒ정성욱 기자

잠정 타이틀을 포함해 총 세 번이나 메이저 단체 챔피언을 지냈음에도 따라다니는 이인자 이미지는 그 방증과도 같다. 잠시 반짝했던 일인자가 아닌, 일인자 자리에서도 내려왔음에도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오랜 시간 이인자 자리를 지켰기에 그는 ‘콩라인’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그는 경기장에서도 커리어에서도 결코 쉽게 이기거나 쉽게 포기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힘겹고 어렵게 이겨냈고, 그로 인해 기억되는 파이터였다. 뒤집어 말하자면 노게이라를 따라다녔던 이인자 이미지 뒤편엔 불굴의 의지가 있었던 셈이다. 그가 최강자를 극복하지 못한 ‘시대의 패자’가 아닌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유하람 칼럼니스트 droct89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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