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이터] ④ ‘브라질의 최종병기’ 조제 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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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알도 ⓒ 조제 알도 페이스북

[랭크5=유하람 칼럼니스트] ‘브라질 대 미국’은 이종격투기 시절부터 내려온, 종합격투기를 읽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다. 그레이시 가문의 미국 침공이 UFC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며, 이후에도 브라질과 미국의 무력충돌은 페드로 히조 대 랜디 커투어·반다레이 실바 대 퀸튼 잭슨·앤더슨 실바 대 차엘 소넨 등 숱한 슈퍼매치로 계승됐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인과 미국인은 서로의 무기를 꺾으며 종합격투기 트렌드를 이끌었다. 등장 당시 무적에 가까웠던 브라질리안주짓수를 깨뜨리기 위해 아메리칸 레슬러들은 그라운드 앤 파운드*·더티복싱*을 내세웠고, 브라질리언 주짓떼로들은 이에 맞서 무에타이-주짓수 이지선다를 강요했다. 타격-그래플링 연계가 등장한 뒤로 이 수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현대 종합격투기의 정석은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됐다.

하지만 브라질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현재 잠정 타이틀을 포함한 UFC의 벨트 13개 중 브라질이 보유한 벨트는 비교적 수준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여성부에서만 2개에 불과하며, 라이벌로 꼽히던 미국은 9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유에 대해서는 종합격투기 전반에 걸쳐 수준 상향 평준화로 수비가 쉬워지며 브라질인이 자랑하던 주짓수와 특유의 감각적이고 폭발적인 타격이 잘 통하지 않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드미트리우스 존슨, 도미닉 크루즈 같은 무결점 파이터가 나오지 않은 데서 보이듯 브라질이 훈련 체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수난 시대에서도, 브라질 최고의 아웃풋이자 두 번째 브라질리언 전성기를 이끌었던 조제 알도는 여전히 항전 중이다.

– 빈민가의 축구선수 지망생, 체육관에 들어서다

소년 만화 주인공이 으레 그렇듯 조제 알도는 불우한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 빈민가에서 지독한 가난과 ‘주폭’이었던 부친에게 시달린 그의 유년은 행복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7살부터 막노동판을 전전했을 만큼 그는 홀로서기를 강요받았고, 그는 이 시절을 ‘생존’이라 표현했다. 재능을 보였던 축구로 탈출구를 찾았지만 이내 생활고로 포기했고, 14살에는 부모가 이혼했다.

알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그는 입에 풀칠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었고, 그가 가진 재산이라곤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여기서 어린 알도가 선택한 길은 격투기였다. 마나우스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상경한 그는 친구 집에 얹혀살다 이후 체육관에서 먹고 자며 주짓수를 수련했다. 관비를 내는 대신 청소를 했다.

조제 알도의 인생을 담은 영화 ‘세상보다 더 강한(Stronger Than The World)’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영화에 표현되어 있다. ⓒ넷플릭스

오로지 이 길밖에 없었던 알도는 자신의 전부를 격투기에 쏟아부었다. 술, 담배는 물론 파티도 즐기지 않으며 싸움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기 위한 철저한 자기관리에 몰두했다. 일상과도 같았던 극한의 상황이 그를 단단하게 만든 셈이다. 그렇게 그는 2004년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른다. 그의 나이 불과 18세였다.

– 정상을 향한 질주, 끝없는 독재

알도는 데뷔할 때부터 거침이 없었다. 비록 블랙벨트 대회는 아니었지만 주짓수 월드컵‧브라질 챔피언십 등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탄탄한 주짓수 실력, 사람을 패는 듯한 폭발적인 타격 앞에 상대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알도는 데뷔전부터 7연속 1라운드 피니시 승리를 거두며 질주했다. 루시아노 아제베노에게 잠시 발목을 잡히기도 했지만 이내 털어내고 3연승을 추가했다. 2008년 경량급 넘버원 단체였던 WEC는 이 활약을 눈여겨보고 그에게 손을 내민다. 본격적인 알도의 메이저 정복기가 시작된 것이다.

WEC에서도 그를 막을 선수는 없었다. 무려 다섯 선수가 줄줄이 KO로 알도에게 무릎 꿇었고, 특히 아직도 UFC 페더급 랭커로 군림하고 있는 컵 스완슨은 불과 8초 만에 무너졌다. 그렇게 그가 마주한 상대는 마이크 브라운, 유라이아 페이버의 페더급 점령기를 끝내고 새롭게 독재를 시작하려는 선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결과는 알도의 1라운드 KO 승이었다. 데뷔 후 5년 동안 16승 1패로 고속질주한 끝내 알도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유라이아 페이버가 왕좌를 되찾기 위해 돌아왔지만, 판정까지 버틴 데 의의를 둘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알도는 주특기인 로우킥으로 페이버의 허벅지 전체를 피멍 들게 두드려댔고, 페이버는 그걸 알고도 막지 못할 만큼 무기력했다. 그 다음 도전자였던 매니 감부리안은 아예 2라운드를 넘기지도 못하고 KO 당했다. 그야말로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력이었다.

– 끝없는 독재, 그러나…

WEC가 UFC에 완전 합병돼 활동 무대가 옥타곤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알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예전 같은 폭발력은 많이 사라졌지만 대신 훨씬 노련해졌고, 여섯 도전자가 일곱 차례에 걸쳐 도전했지만 정말 잘해야 한 라운드 따내는데 그칠 뿐 모두 속절없이 운영에서 말리고 말았다. 명승부는 있었지만 위기는 없었고, 난적은 있었지만 패배는 없었다. 알도는 UFC의 모든 체급을 통틀어 선정하는 P4P 랭킹에서도 1위였으며, 미들급에서 10차 방어를 달성한 앤더슨 실바마저 “내가 알도와 같은 체급이었다면 은퇴했다”고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알도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90%가 넘는 테이크다운 디펜스율, 70%를 웃도는 테이크다운 성공률과 타격 회피율은 그가 어떤 괴물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알도의 매서운 타격을 견디기도 어렵지만, 이 방어를 뚫고 들어가는 게 더욱 어려웠던 셈이다. 어느덧 그는 도전자에게 있어 ‘상대하기 무서운 선수’가 아닌 ‘이길 수 없는 선수’가 돼 있었다.

UFC 179 채드 멘데즈와의 대결. 이 경기마저 승리한 알도는 18연승을 기록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알도가 무너질 때가 됐다는 의견은 꾸준히 있었다. 알도 스타일상 폭발력, 동체 시력, 동물적인 감각 등 신체 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30대를 눈앞에 두면서부터 노화 진행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분석이었다. 4라운드부터 지치는 체력, 단신이라는 신체적 약점 등이 결국 발목 잡으리라는 예상 역시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도가 당분간은 적수가 없으리라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페더급 역대 최강 레슬러 채드 멘데스, 미들급에서부터 내려온 케니 플로리안, 전 라이트급 챔피언 프랭키 에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보너스 사냥꾼 정찬성 등 온갖 이력을 가진 도전자를 꺾은 알도에게 적수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코너 맥그리거라는 ‘조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첫 KO패, 그리고…

코너 맥그리거가 처음 등장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팬 대다수는 그를 ‘광대’ 정도로 생각했다. 맥그리거가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흥미를 유발하는 선수라는 점은 분명했지만, 그게 ‘감히’ 알도 앞에서도 먹히리라 예상하긴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는 맥그리거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그에 상응하는 경기력으로 설득력을 얻었다. 이에 라이트 팬, 마니아 팬뿐만 아니라 도박사마저도 ‘광대’의 기세에 손을 들어줬다. 12개의 베팅 사이트 배당률의 종합데이터를 알 수 있는 ‘BestFightOdds’는 당시 알도의 승리 가능성 44.82%로‧맥그리거의 승리 가능성 55.18%로 책정했다. 7년 동안 체급을 지배한 챔피언을 꽤나 큰 배당 차이로 언더독에 선정한 것이다.

UFC 194 조제 알도와 코너 맥그리거. 조제 알도는 여기서 연승행진을 멈춰야 했다.

2015년 12월 12일 마침내 알도는 맥그리거를 마주했다. 수년에 걸친 악연을 끝내고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전 세계 팬이 주목하는 가운데, 알도는 일찌감치 기세를 가지고 오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길고 빠른 맥그리거의 카운터에 알도는 커리어 사상 첫 KO패를 당하고 만다. 그가 8년간 지켜온 벨트를 잃는데 걸린 시간, 불과 13초였다.

이후 절치부심한 알도는 맥그리거가 외도하는 사이 숙적 프랭키 에드가를 다시 한번 꺾고 잠정 챔피언에 오른다. 이후 맥그리거가 영영 페더급을 떠나면서 정식 챔피언에 등극하지만, 알도에게 이전과 같은 포스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번엔 단 한 차례의 타이틀 방어도 성공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장신 타격가 맥스 할러웨이에게만 2연패를 당하며 벨트를 빼앗기고 만다. 알도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는 순간이었다.

– 갈림길에 서서

많은 이들이 알도의 연패를 ‘몰락’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랭킹 1위에, 자신이 이겼던 상대가 자기 아래로 줄이어 랭킹을 차지하고 있는 선수에게 ‘몰락’이란 말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2010년대 페더급을 독식하던 알도를 떠올린다면 현재 모습과 간극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 언론사에서 ‘육상 황제’라 불리던 우사인 볼트가 동메달에 그쳤다고 ‘몰락’이라 표현했듯이 말이다.

물론 알도는 여전히 강하다. 앞서 언급한 랭킹뿐만 아니라, 현재 기량 자체부터 알도는 앞으로도 몇 년은 최정상권에서 경쟁할 수준이 된다. 이전과 같이 상대를 압도하는 포스, 무서울 만큼의 침착함, 감당할 수 없는 폭발력 등은 사라졌지만, 알도는 차‧포를 떼고도 웬만큼은 지지 않을 선수다. 그렇지만 이게 알도가 커리어 연장이 꼭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점에 서 있던 선수가 한 번 기세가 꺾이면 밑도 끝도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여럿 보아왔다. ‘황제’ 예멜리야넨코 표도르가 그랬고, ‘경량급 표도르’라 불리던 미구엘 토레스가 그랬으며, 미들급에서 ‘신’이라고까지 불리던 앤더슨 실바만 하더라도 그렇다. 보통 패배를 모르던 선수들은 그 무시무시한 아우라가 사라지는 순간 자신은 동기부여가 약해지고 상대는 더는 위축되지 않아 쉽게 망가지곤 한다. 알도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 셈이다.

UFC 218 맥스 할로웨이와 조제 알도. 알도는 같은 선수에게 2연패하며 벨트를 넘겨줘야 했다.

또한 알도 본인 입장에서도 지금은 선택할 여지가 많은 시점이다. 알도는 현재 UFC와 단 두 경기만 계약돼있다. 해외 매체 ‘MMA Mania’에서는 알도의 향후 행보에 대해 “이 체급에 남아있을지, 계약 종료 후 UFC에 남아있을지 불분명하다”며 “이전부터 말해왔던 라이트급 또는 복싱으로 전향하는데 적기”라고 평했다. UFC가 주최하려 애쓰는 복싱 이벤트가 현실화된다면 알도가 첫 타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셈이다.

앞으로 알도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조제 알도 자신부터 아직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으며, 주변에서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미 페더급 역대 최강, 브라질 역대 최고인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건 위대한 챔피언의 도전으로 남으리라는 점이다.

유하람 칼럼니스트 droct89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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