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이터] ③ 싫지만은 않은 밉상, 조쉬 코스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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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 코스첵 ©ZUFFA LLC

[랭크5=유하람 칼럼니스트] 어떤 시절을 이야기하면 꼭 떠오르는 ‘그때 그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시대의 승자, 챔피언, 흥행보증수표. 그 모든 영광과는 거리가 있다. 절대 호감형은 못 되고, 눈 밖에 날 짓만 골라서 했다. 그럼에도 되돌아보면 또 그렇게 밉지는 않다. 역사의 한 장까지는 아니고 한 줄 정도는 차지하는 ‘그 녀석’은 분야와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씩 꼭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종합격투계의 ‘그 녀석’은 조쉬 코스첵(39, 미국)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UFC 웰터급은 ‘지옥의 체급’으로 불린다. 헤비급, 플라이급 로스터가 합쳐서 60여명일 때도 웰터급 선수는 100명을 훌쩍 넘겼으며, 인원이 많은 만큼 경쟁도 살벌했다. 이렇다 할 선수층 정체 없이 꾸준하게 세대교체가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과거 새로운 물결을 주도했던 로비 라울러가 하파엘 도스 안요스라는 또 다른 물결에 밀려나는 등 웰터급은 아직도 역동하고 있다.

지금은 최전선에서 물러나 멀찍이서 이 변화를 지켜보고 있지만, 코스첵은 이 웰터급의 폭풍을 꽤나 오랜 기간 견뎌냈던 파이터다. 그는 2005년 UFC 데뷔 이래 7~8년 여간 꾸준히 컨텐더 레벨에서 활약했고, 또한 숱한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많은 팬과 더 많은 안티팬을 몰고 다녔다. 기량도 인기도 최고라기엔 모자랐지만 또 꾸준했으며, 뚜렷한 캐릭터로 웰터급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코스첵.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 레슬링 키드에서 UFC 부흥의 주역으로

코스첵의 유년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5살에 레슬링을 배우기 시작해 엘리트 레슬러 코스를 밟았다는 소소한 정보를 제외하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정도 되는 경력과 인지도가 있는 파이터 중에서 보기 드물게 사생활 에피소드 하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케이스다.

다만 그가 남긴 기록으로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200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에든버러 대학교에 체육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NCAA 디비전 1 우승 1회, PSAC 우승 4회 올아메리칸 4회, 주 최우수선수 3회, 미국 동부지구 최우수선수 2회 등 온갖 트로피를 휩쓴다. 3학년 때는 NCAA 디비전 1에서 42전 전승을 기록할 정도로 그는 독보적이었고, 졸업 후에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타 대학교에서 레슬링 조감독을 맡았다.

조쉬 코스첵의 대학 시절 ©wrestlingpod.com

대학 레슬러로 화려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흥미로운 제안을 받는다. 격투 매니지먼트 사 진킨(Zinkin) 엔터테인먼트의 밥 쿡(Bob Cook)과 드웨인 진킨(Dewayne Zinkin)은 베가스에서 US 오픈을 치르던 코스첵에게 종합격투기 도전을 제안한다. 이후 코스첵은 이들을 따라 명문 체육관 아메리칸 킥복싱 아카데미(AKA)와 계약을 맺고 조쉬 톰슨, 마이크 스윅 등과 훈련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겐 큰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지금까지도 도산 위기에 빠졌던 UFC를 부흥시켰다고 평가 받는 디 얼티밋 파이터(TUF)에 참가하라는 제안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7세, 2004년 데뷔 후 단 두 경기만을 치른 시점이었다.

– 찾을 수밖에 없는 실력 있는 악동

TUF는 젊고 강한 선수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UFC 진출권을 놓고 경쟁한다는 컨셉의 리얼리티 MMA 프로그램이다. 시즌 1 당시 UFC는 팀 수장으로 라이트헤비급 간판스타 랜디 커투어와 척 리델을 내세웠으며, 참가 선수들은 라이트헤비급과 미들급 선수들로 구성했다. 코스첵은 여기서 리델 팀 미들급 선수로 참가했다.

코스첵은 강한 육체와 레슬링으로 TUF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지만, 그보다도 주목 받았던 건 그의 살벌한 인성이었다. 가정사에 사연이 있는 크리스 리벤이 ‘패드립’을 듣고 분을 못 이길 때도 물을 뿌리며 조롱할 정도로 코스첵은 악랄한 장난기를 숨기지 못했다. 프로그램 내내 코스첵은 그 악동 기질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시청자들은 그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기대하며 화면 앞에 모여들었다.

TUF 1기 사진. 맨 왼쪽이 조쉬 코스첵

비록 준결승에서 팀메이트 디에고 산체스에게 덜미를 잡히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UFC는 코스첵이 그간 보여준 캐릭터와 실력을 인정해 옥타곤에 영입한다. 코스첵은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열심히 입을 놀리며 싸워나갔고, 2007년 옥타곤 7승 1패를 기록하며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다.

– 끝내 넘지 못한 벽, GSP

데뷔 당시만 하더라도 레슬링 밖에 모르는 바보였던 코스첵은 TUF를 거치면서 타격을 장착한다. AKA 특유의 킥복싱 스타일을 기반으로 자기 강점인 터프함을 살려 몰아치는 코스첵표 양훅은 사뭇 위협적이었다. 레슬링, 맷집, 내구도라는 믿는 구석이 있는 만큼 그는 과감히 전진할 수 있었으며, 타격 자체도 완성도가 높고 파괴력이 강해 스탠딩 싸움으로 이어지더라도 밀리지 않았다. 이 조합을 바탕으로 그는 웰터급 왕좌 코앞까지 내달린다.

하지만 왕좌에 앉아있는 건 다름 아닌 역사상 최강의 챔피언 중 하나로 꼽히는 조르주 생피에르였다. 타이틀전에서 그는 엘리트 레슬러답게 생피에르를 테이크다운 시키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레슬링, 타격 모든 영역에서 그는 생피에르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다시 먼 길을 돌아가게 됐다.

조시 코스첵이 GSP와 처음 경기를 가진 UFC 74

티아고 알베스, 존 피치 등에게 밀려나고 뜬금없는 KO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절치부심해 3년 만에 다시 도전했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생피에르는 오히려 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코스첵을 농락했다. 생피에르의 잽을 코스첵은 전혀 뚫지 못했고, 눈이 퉁퉁 부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분전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이후로 그가 다시 타이틀전에 도전하는 일은 없었다.

– 스러진 영광, 버티는 코스첵

두 번째 도전에 실패한 코스첵은 ‘그래도 생피에르만 아니면 다 이긴다’는 듯이 맷 휴즈를 때려잡고 마이크 피어스도 판정으로 제압한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웰터급 지각변동을 주도했던 조니 핸드릭스를 만나면서부터 그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떡밥’인 줄 알았던 로비 라울러에게 허무한 KO패를 당한 데 이어, 타이론 우들리를 상대로는 코너로 잘 몰아놓고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뻔히 보이는 펀치로 일관하다 세 차례 다운된 끝에 실신했다. 제이크 엘런버거에게는 테이크다운에만 집착하다 체력고갈 후 서브미션에 무너졌고, 에릭 실바에게는 완전히 농락당하며 탭을 쳤다. 강인한 턱과 영민한 경기운영으로 상대를 압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5연패. TUF 1 멤버였기에 성적부진에도 암묵적으로 UFC가 눈감아주고 있었지만 그는 더는 지켜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코스첵의 갑작스러운 몰락에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다. 애초에 데뷔할 때부터 28세였던 만큼신체 노쇠화를 숨길 수 없었다는 분석과, GSP 전 이후로 파이팅 스타일 분석이 다 됐다는 의견, 불화로 소속팀 AKA를 나간 이후 좋은 코칭을 받지 못 한 게 아니냐는 의혹 등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분명 우리가 알던 코스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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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스첵은 현역이다. 은퇴를 생각해보겠다면서도, 은퇴를 종용하는 데이나 화이트에게 멋쩍게 “UFC 고령자 리그를 만들어달라”고 농담을 던진다. UFC가 퇴출시키기 전 제 발로 벨라토르로 자리를 옮긴 선택도 아직은 승부욕이 남아있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곳에서도 1라운드 KO패를 당했지만, 아직 그는 다음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 이제 40살이 된 코스첵에게 선수로서 더 많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성기에도 무적은 아니었지만 이제 그는 별다른 강점이 없는 선수가 돼버렸다. 맷집은 약하며, 타격은 허술하고, 체력도 떨어진다. 웰터급 최고라 평가받던 레슬링마저도 이젠 그저 그런 수준이다.

벨라토르 MMA 172에 출전했던 조쉬 코스첵. 상대 마우리시오 알론소에게 패했다. 조쉬 코스첵은 현재 6연패를 기록중이다.

하지만 트래쉬 토킹으로 밤을 새던 시절에도 그랬듯, 그는 여전히 군소리 없이 진지하게 경기에 임한다. 당하지도 않은 아이포킹에 할리우드 액션을 펼치고 왜 이리 빨리 말렸냐고 심판에게 따질지언정, 그는 언제나 그랬듯 묵묵히 싸우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선뜻 관심을 끄기 어렵다. 코스첵의 앞길을 조금은 더 지켜보자. 그게 높은 이름값과 달리 생각 외로 인기가 없어 타이틀전이나 군 위문 이벤트가 아니면 메인이벤트에 서지도 못했어도, ‘땜빵’이어도 언제든 자리를 채워가며 열심히 싸웠던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유하람 칼럼니스트 droct89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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