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이터] ① ‘컴플리트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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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생 피에르 ⓒ UFC 홈페이지 캡쳐

[랭크5=유하람 칼럼니스트] 1980년대 태동한 이종격투기 세대부터 2017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합격투계에는 숱한 천재들이 있었다. 웨이트·유산소 훈련도 없이 술·담배를 즐기며 세계 정상에 올랐던 사쿠라바 가즈시, 페더급부터 헤비급까지 오가며 싸우던 BJ 펜, 다른 선수의 동작을 눈으로만 보고 따라 했다는 존 존스 등. 그들은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기며 평범한 선수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재라 불렸던 선수 중 끝이 좋은 선수는 보기 드물다. 사쿠라바와 펜은 경쟁력을 잃고 처참하게 망가졌으며, 존스는 거듭된 약물 적발로 명성에 먹칠했다. 이 밖에도 파울로 필리오, 예멜리야넨코 표도르, 미구엘 토레스 등 화려한 전성기 끝에 추락한 선수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보통 자기관리가 엉망이었거나, 화려한 전성기를 잊지 못해 은퇴 시기를 놓친 탓에 망가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 UFC 미들급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36, 캐나다)는 희귀종으로 꼽힌다. 두말할 나위 없는 천재가 완벽하게 스스로를 통제하며, 동시에 자기 기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4년 만에 메이저 무대로 복귀해 곧바로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증명한다. 그는 올해 만 서른여섯, 웬만한 선수들이 은퇴를 고려하는 나이다. 전례 없이 긴 공백기도 있었으며, 상대는 그가 밟아보지도 못한 상위체급의 챔피언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생 피에르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냉철한 판단으로 복귀를 선택했다.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공백, 신체 노화를 모두 극복하고 가장 화려하게 왕좌로 돌아온 생 피에르. 그는 UFC 사상 네 번째로 두 체급 정상에 올랐으며 10년 무패, 타이틀전 1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 기록은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살아있는 전설에서 더 높은 곳으로 달려가는 그의 복귀를 환영하는 차원에서, 그의 커리어를 되짚어보도록 하자.

– ‘가라데 보이’에서 종합격투기 선수까지

본인이 공공연히 말한 대로 생 피에르는 가라데(극진 공수도) 베이스다. 아들이 왕따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인지 생 피에르는 가라데 동작뿐만 아니라 ‘무도가 정신’을 많이 내세우는 편이다. 경기장에 항상 가라데 도복을 입고 등장했으며, UFC 129 오픈 워크아웃에서 카타 시범을 보이는 등 ‘가라데가’ 정체성을 강조한다.

‘가라데 보이’ 시절 생 피에르

‘가라데 보이’가 종합격투기 선수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바로 UFC 1이었다. 도복을 입고 홀연히 등장해 거구들을 줄줄이 제압하는 호이스 그레이시는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생 피에르 역시 그에 매료된 청년 중 하나였다. 그레이시가 등장한 지 9년 뒤인 2002년, 주짓수를 연마한 생 피에르는 UCC(현 TKO)라는 캐나다 단체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이 단체에서 그는 5연승을 달리며 웰터급 챔피언까지 차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UFC에 진출하게 된다.

– 패배로 완벽을 배우다

UFC에 진출한 생 피에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틀 경쟁에 뛰어든다. 가라데카 출신답게 시원시원한 타격과 공격적인 경기운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그는 단번에 백사장-데이나 화이트의 눈에 들었고, 단 2경기 만에 공석인 챔피언 자리에 오를 기회를 얻는다. 상대는 이미 웰터급 챔피언으로 5차 방어까지 치렀던 맷 휴즈였다. UFC 50에서 맞 붙은 두 선수. 41전의 베테랑이었던 휴즈는 노련하게 생 피에르의 약점을 찾았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그라운드 공방전 끝에 1라운드 종료 1초 전 암바로 탭을 받아낸다.

종합격투기 데뷔 후 첫 패배를 안긴 UFC 50

절치부심한 생 피에르는 그라운드 보강에 매진하며 UFC 5연승을 달린다. 최강의 이인자 프랭크 트리그를 비롯한 강자들이 그를 상대했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 UFC 58 BJ 펜 1차전에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판정승을 거뒀다. 2006년 11월 UFC 65에서 불과 2년 전에 자신을 꺾었던 맷 휴즈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며 챔피언에 등극한다. 1차전과 확연히 달라진 그라운드로 공략할 여지 자체를 주지 않은 결과였다.

챔피언에 오른 후 당연히 열릴 줄 알았던 생 피에르의 독주는 뜬금없는 인물에 의해 잠시 미뤄진다. TUF에서 생 피에르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맷 세라였다. 세라는 묵직한 한 방이 있는 터프가이지만 그밖에 별다른 강점은 없는 선수로, 당시 UFC에서 5승 4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타이틀 도전권을 받은 명분조차 애매했던 세라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UFC 69, 예상과 달리 세라는 한 방을 터뜨리고 만다. 상대가 약체라는 점을 의식했는지 유난히 불필요한 킥을 남발하던 생 피에르는 90%가 넘는 배당승률을 엎고 1라운드 KO패로 무너졌다. 또다시 정점에서 무너진 것이다.

누구나 맥 빠질만한 상황이었지만 생 피에르는 달랐다. 휴즈에게 패하고 그라운드 귀신이 되었듯, 세라 전 패배는 생 피에르를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선수로 만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강해도 방심하면 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빈틈을 아예 주지 않는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 그저 ‘강한 선수’였던 생 피에르는 두 차례 패배를 겪으며 마침내 종합격투기 역사상 가장 완벽한 중량급 파이터로 재탄생한다. 멧 세라에게 패한 2007년 이후 생 피에르는 아직도 전승을 달리고 있다.

– 바셀린, 부상, 판정 논란… 그리고 은퇴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카를로스 콘딧의 하이킥처럼 경기 내적인 위기도 있었지만, 사실 생 피에르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실력과는 상관없는 일이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바셀린 도포 사건이었다. 생 피에르는 UFC 94에서 3년 만에 다시 만난 비제이 펜을 4라운드 TKO로 꺾는다. 그런데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생 피에르 측 코너맨이 휴식시간 중 생 피에르의 등에 바셀린을 바르다 적발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며 잡음이 일었다. 성실하고 건전한 이미지인 그에게 본격적으로 안티가 늘어나게 된 계기였다.

천재 BJ 펜에게 승리를 거둔 UFC 94. 하지만 경기 후 바셀린 도포 논란이 인다.

쉴 새 없이 달려왔던 육체 역시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친 전방십자인대 파열은 그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전방십자인대 파열은 선수 생명까지 위협하는 가장 큰 부상 중 하나로, 실제로 이 부상 이후 제 기량을 찾지 못하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 생 피에르 본인도 은퇴를 고려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펀치드렁크로 의심되는 증상과 타이틀 방어에 대한 심각한 스트레스를 수차례 털어놓는 모습을 보였다. 향간에서는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심하게 피폐해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다.

결국 그는 UFC 167에서 조니 핸드릭스를 상대로 마지막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나 워낙 치열한 접전이었던 탓에 이 경기는 판정 논란에 얼룩지고 말았으며, 생 피에르는 ‘핸드릭스가 무서워 도망간다’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분명히 끝까지 패하지 않고 은퇴했지만, 어쩐지 박수칠 때 떠난다고 하기엔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던 셈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마무리 탓이었을까. 생 피에르는 그가 체급을 떠난 뒤에도 꾸준히 팬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공석이 된 챔피언 자리를 두고 웰터급에서는 군웅할거시대가 열렸으며, 이에 따라 ‘만약 생 피에르였다면’이라는 가정문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하지만 웰터급 타이틀전이 8번 치러질 동안 그는 슈퍼파이트에 대한 관심만 표할 뿐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팬들은 과거 표도르의 UFC 진출이 그랬듯 ‘쉰 떡밥’일수록 성사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연스레 GSP는 점차 관심사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다. 생 피에르는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다.

생 피에르의 은퇴전이었던 UFC 167.

– 왕좌에 돌아오다

2016년부터 UFC는 대혼돈에 빠졌다. 코너 맥그리거가 페더급 벨트를 들고 라이트급으로 ‘튄’ 데 이어 라이트급 벨트까지 가지고 복싱으로 떠나버렸고, 미들급은 루크 락홀드가 마이클 비스핑에게 희대의 업셋을 당하며 족보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타이틀 방어전 치를 계획이 전혀 없는 두 챔피언 때문에 체급은 난장판이 됐고, 자연스레 명분 없는 슈퍼파이트 추진으로 이어지게 됐다.

재밌게도 맥그리거와 비스핑은 같은 사람을 원했다. 바로 잠들어있던 챔피언 생 피에르였다. 웰터급이지만 라이트급도 미들급도 가능하며, 누구보다 인기는 많지만 지더라도 손해 볼 일은 없는 선수라는 판단이었을까. 그리고 생 피에르는 돌아오지 않는 맥그리거 대신 어쨌든 경기는 뛰는 비스핑을 선택했다. 올해 2월부터 추진됐던 생 피에르 대 비스핑은 우여곡절 끝에 11월 UFC 217에서 성사됐다.

옥타곤에 오른 생 피에르는 4년을 쉰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아무리 치즈 챔피언 소리를 들어도 아웃복싱과 그라운드 방어에는 도가 튼 비스핑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을지 몰라도 칼 같은 잽과 힘 낭비 없는 테이크다운은 전과 다름없었다. 단, 움직임만큼은 지킬 게 많았고, ‘수면제’라 조롱받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신체 능력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상위체급 선수인 만큼 그는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하려 달려들었고, 결국 펀치에 이은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8년 만에 피니시 승리를 거둔다. 전례가 없는 화려한 복귀전이었다.

UFC 217에서 4년만에 복귀전을 가진 조르주 생 피에르. 복귀전에서 그는 미들급 챔피언이 됐다.

– ‘컴플리트 챔피언’ 생 피에르

복귀 전부터 화려한 업적보다는 의미 있는 매치에 더 관심을 보였던 생 피에르인 만큼 그가 미들급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며 현역으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장 다음 상대로 코너 맥그리거가 언급되고 있고, 이미 타이틀 방어에 피로함을 호소했던 생 피에르가 굳이 로버트 휘태커라는 부담스러운 상대와 싸울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여러모로 그의 앞날은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생 피에르는 단순히 재능이 뛰어났던 한 선수를 넘어 그 재능을 100% 이상 활용한 ‘완벽한 챔피언’으로 남았다는 점 말이다. 남들이 반짝 타오르고 꺼질 때 그는 여전히 세계 정상에 서 있었고, 선수로서 지켜야 할 모든 덕목에 충실했다. 그는 언제나 챔피언이 될 준비가 돼 있었고, 그 사실을 모든 팬 앞에서 증명해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숱한 강자들이 나오겠지만, 종합격투기 역사에 있어 그는 보기 드문 진정한 승자로 남을 듯하다.

유하람 칼럼니스트 droct89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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