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짓수 발전의 큰 걸림돌, 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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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미야오 ⓒ미야오 인스타그램

[랭크5=송광빈 칼럼니스트] 2016년 문디알 라이트-페더웨이트급 검은 띠 우승자 파울로 미야오가 금지약물 복용 사실을 인정했다. 파울로는 5월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전미반도핑기구(USADA)의 검사에 실패한 사실을 알렸다. 작고 마른 체구의 연습광으로 (체력단련도 열심히 하지만) 세밀한 기술의 주짓수를 보여주던 파울로여서 주짓수팬들의 충격은 다른 적발 사례보다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2년간 출전 정지라는 징계는 타 스포츠에 비하면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금지약물 복용 단속에 소극적이었던 IBJJF

그동안 국제브라질주짓수연맹(IBJJF)에서는 금지약물 단속을 하지 않았다. 하루에 네다섯 경기를 치러야 하는 토너먼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몇몇 선수에게 약물 복용 의혹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주짓수팬들 사이에선 정상급 선수들은 전부 약물을 하지만 서로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IBJJF는 2013년이 되어서야 약물검사를 도입했다. 대회의 권위와 규모에 비해 상당히 늦은 결정이었다. 도입 후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가비 가르시아와 브라울리오 에스티마가 적발되고, 징계를 받았으나 큰 파장은 없어 일벌백계의 효과를 낳지 못했다. 팬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직 주짓수계에서는 금지약물 복용에 대해 경각심이 없거나, 해악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국내 주짓수계는 도핑 선수의 무주공산

국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도핑 선수가 마음껏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이다. 생활체육 주짓수 대회에 1,000명이 넘게 참가하여도. 한 대회에 억 단위의 예산을 쓰는 프로 대회에서도.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제도권에 진입하려는 단체에서도 약물검사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약물검사 비용은 1회 30만원으로 제대로 적용하려면 큰 비용이 든다. 소요되는 시간도 길다. 평균적으로 건당 30분에서 90분 정도 걸리며, 조사원 수도 한정되어 있어 주어진 시간내에 많은 선수를 검사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현실속에서 영세한 국내 대회사가 약물검사를 도입하려면 대승적인 결단이 있지 않고서야 선뜻 나서기 어렵다.

약물, 무엇이 문제인가?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 WADA)는 약물 사용 금지의 근거를 아래와 같이 들었다.

어떤 약물이 경기력을 향상시키거나 경기력을 향상 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의학적 또는 과학적 증거 및 양리적 효과 또는 경험이 있는 경우.
어떤 약물 사용시 선수의 건강에 실제적 또는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의학적 증거 또는 경험이 있을 경우.
어떤 약물 사용이 스포츠 정신에 위배될 경우.

스포츠에서 약물검사의 기원이 ‘경기중 선수의 사망’이었던 만큼 금지 약물이 건강과 생명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장기 복용시 발생하는 부작용에는 죽음에 이르는 심장마비는 물론 간 기능 장애, 성 기능 장애, 정신질환까지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약물 사용은 스포츠 정신인 ‘공정성’을 위배한다. 국가대표 상비군 소속이었던 안철웅(와이어 주짓수) 선수에게 유도 선수 시절 그가 경험한 일반 선수와 도핑 선수의 차이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내 도복 깃을 잡은 상대 선수의 악력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유지된다는 설명이었다. 회복력이 정상이상인 상태가 되어 경기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흔히 말하는 ‘스테로이드’의 효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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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권하는 사회, ‘고도화된 경쟁위주의 주짓수’

김민규 체크 매트 코리아 대표는 브라질 유학시절 현지 주짓수 선수들의 90%가 스테로이드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유를 묻자 ‘상대도 하니까 나도 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사연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남겼다. ‘카더라’지만 여기서 몇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스포츠 정신을 위배하는 부정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질 만큼, 주짓수계에선 감시가 소홀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면 얻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주짓수 최고 권위의 대회 ‘문디알’은 선수가 참가비를 내고 출전하고 포상이 없는 아마추어 대회지만, 우승하거나 입상권에 들어 빼어난 활약을 하면 많은 기회가 열린다. 챔피언은 명성에 힘입어 1년 내내 빼곡한 일정으로 고액의 강사료를 받는 세미나에 초청된다. 스폰서십도 경쟁적으로 들어와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고, 여러 사업 제의를 받기도 해 ‘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부’와 ‘명예’ 앞에서 금지 약물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하고 있고, 들켜도 별 탈이 없다면.

주짓수를 잘하면 자본주의 세계에서 신분상승의 기회가 된다. 이렇다 보니 주짓수계는 ‘고도화된 경쟁사회’가 되어, ‘영달을 위해서 부정도 서슴치 않는 불공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 중심엔 ‘약물’이 있고, 이를 방치하는 ‘분위기’가 있다.

현대문명이 비판받는 지점과 같다. 경쟁사회에서 ‘올바른 노력에 대한 보상’이 있을 때 ‘문명’이라 하고, ‘우승열패’만 있다면 ‘야만’이라 한다. 문명은 ‘공정함’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 주짓수계는 지금 경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공정함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한 번쯤 성찰해보아야 한다.

주짓수의 정체성은 ‘공정함’

‘주짓수의 정체성’, 그리고 ‘주짓수를 수련하는 의의’는 가장 ‘신뢰할 수 있고 공정한’ 무술이라는데 있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신체적으로 열세여도, 주짓수는 수련 시간을 배반하지 않고 노력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야성’이 아닌 ‘이성’으로 작동하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무술이기에, 우리는 주짓수를 믿고 수련하며, 노력의 결실인 띠 색깔을 존중하며 존경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검은 띠를 맬 수 있고, 나도 강해질 것이다’라는 믿음이 바로 주짓수다.

주짓수가 힘과 무게 같은 신체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무술이라면 존재의의를 찾을 수 없다. 약물의 도움으로 강해진 주짓수를 우리가 정말 주짓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약물 복용은 주짓수에 대한 믿음을 떨어트리고, 정체성을 흔들어 주짓수 미래를 파멸시킬 것이다.

“과거에 사로잡힌다면, 현재가 마비되고 미래를 파멸시킨다”

파울로 미야오가 금지약물 복용을 인정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말이다. 달콤한 독은 몸과 정신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파멸로 이끈다. 눈앞의 영광을 위해서 미래를 끌어다 쓰지 말자. 본인의 생명도, 주짓수의 미래도.

송광빈 칼럼리스트(전 블랙 벨트 코리아 발행인)
song.kwangb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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